[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박 대통령이 29일 제3자 대국민담화에서 ‘진퇴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헌법학자들과 일부 법조인들은 국회가 헌법 테두리 내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탄핵뿐이라고 지적한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임기단축’과 ‘법절차’를 강조했다. 개헌을 통한 임기단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담화 직후 친박계는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을 통해 퇴진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임기단축 개헌·질서있는 퇴진 현실성 떨어져”···“하야.탄핵뿐”

그러나 헌법학자들은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개헌을 위한 요건이 탄핵보다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헌법은 탄핵소추와 개헌을 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표가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개헌을 하려면 국회의결 후 30일 이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가 투표에 참여하고, 투표자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만 비로소 개헌이 가능해진다.

개헌 논의가 장기화돼 신속한 퇴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0년 동안 유지된 헌법을 개정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여야ㆍ친박ㆍ비박 별로 입장이 갈리면 더욱 시간이 지체될 것“이라며 “국민들이 즉각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개헌을 통한 사임은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임기단축 개헌을 하더라도 박 대통령에게 효력이 미칠지는 미지수다. 헌법 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제안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학자는 “헌법 128조는 대통령의 임기와 관련해 개헌했을 때 당시 대통령에는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며 “개헌을 통해 현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논의는 헌법에 근거도 논거도 없는 이야기”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장영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간을 늘리는 것도 아니고 단축시키는 것이라 위헌소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반박했다.

박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지난 27일 정치권 원로들이 건의한 이른바 ’질서있는 퇴진론‘을 받아들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질서있는 퇴진’이란 대통령 퇴진 시점을 내년 4월로 못박고 그 전까지 국회가 책임총리를 추천해 국정을 맡기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질서있는 퇴진론’이 현행 헌법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두고 법조계의 의견은 갈렸다. 자유와 통일을 향한 변호사 연대는 “국회가 합헌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두 개의 방도는 탄핵소추 결의 또는 임기 단축 조항을 포함한 개헌 절차 진행 둘 뿐”이라며 “단계적인 퇴진이나 임의적인 권한 이양 등은 모두 반헌법적인 발상일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헌재 사정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그자체로 위헌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민심이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고 짚었다.

결국 헌법 테두리 안에서 박 대통령의 하야나 국회의 탄핵안 의결이 최선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정연순)은 29일 성명을 내고 “국회가 탄핵 소추에 박차를 가하는 정국에서 이뤄진 애매한 입장 표명은 탄핵을 불발시키거나 시간을 끌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며 “국회는 예정됐던 탄핵 절차를 이행하고, 박 대통령은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 말고 어떠한 경우에도 사퇴한다는 입장을 분명히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