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은 가히 ‘역사적’이라 할 만하다. “71년 전 어느 맑게 갠 아침,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졌고 세상이 바뀌었다” 오바마는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찾은 피폭지 히로시마에서 이 같은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결정은 국내외 안팎에서 제2차 세계대전 가해국인 일본에 대한 ‘사과’로 읽힐 수 있다는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날 연설에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핵 없는 세상’에 대한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오바마는 이번 방문의 목적이 ‘한국인 포함, 모든 무고한 희생자(all innocents) 추모’가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그간 미측은 다양한 계기에 추모 희생자에는 한국인도 포함됨을 분명히 언급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일본 원폭 피해자 중에는 한국인 희생자도 2만여 명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추모도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때문에 국내 일각에서 주장하듯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위령탑에 헌화하면서 한국인 위령비를 찾지 않은 것을 두고 한국외교의 실패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이를 두고 한ㆍ일간 대미외교 경쟁에서의 패배 또는 한국 대미외교 실패라고 평가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두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오바마의 연설이 지니는 대북 비핵화 메시지이다. 5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핵무기를 둘러싼 가장 큰 과제는 북한 핵개발 계획의 위협이며, 북한은 핵 기술을 확산시킨 과거가 있어 우려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4차 핵실험과 북한 노동당 7차 당대회 이후 갈수록 핵문제 해결 가능성이 희미해지고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이 우려되는 가운데 오바마의 발언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라 할 수 있다. 북한은 7차 당대회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핵비확산ㆍ세계의 비핵화’ 입장을 유지하는 한편, 북한의 전통적 대외정책 이념인 ‘자주ㆍ평화ㆍ친선’을 강조하고 있어 사실상 핵포기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핵무기 없는 세상으로 가는 도정에 가장 심각한 장애는 이란과 북한 핵문제였다. 이란과의 핵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되면서 오바마의 비확산 레거시에는 중요한 업적이 하나 추가됐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뿐이다.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인 북한 비핵화 협상을 어떻게 재개할지 관련국들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둘째,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과 상관없이 한일 간에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있고, 한일 양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히로시마 방문이 전범국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원폭 피해자 ‘코스프레’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미국도 역사를 직시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재확인하면서 히로시마 방문이 원폭투하결정에 대한 사죄를 의미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미일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차원을 넘어서 아시아에서 발생했던 불행한 역사적 과거에 대한 포괄적 화해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아시아 국가들에게 일본으로 인한 과거사는 ‘역사적 정체성’의 일부이며, 여전히 진행 중인 사안이다. 그로 인한 상처는 오바마가 히로시마 한번 방문했다고 해서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