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슈퍼컬렉터들이 인정한 작가 카를로스 르롱 첫 서울전

바이크 · 트로피에 파격적 작업 평범한 물건이 독특한 예술로 재탄생 비주류 삶 · 문화 녹여 ‘커스텀컬처’구현

샹들리에 등 대형작품 10여점 소개 “관람객들 내면 돌아보는 시간됐으면”

에릭 클랩튼도 나이키 회장도 반한 그 ‘디자인(Dzine · 작가명)’

푸에리토리코에서 태어나 시카고를 무대로 활동하는 카를로스 르롱(Carlos Rolonㆍ44)을 스타작가로 만들어 준 이는 팝가수 에릭 클랩튼(69)이다. 또 한 사람을 꼽으라면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58)이 있다. 클랩튼은 르롱의 작품을 구입(2007년)한 첫 유명인사이고, 코헨 또한 화려하게 개조된 커스텀 바이크(Custom lowrider bicycle)를 구입해 화제를 모았다.

시카고 거리를 떠돌며 그래피티 작업을 하던 르롱은 저명한 전시기획자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ㆍ미국 LA현대미술관장 역임)에게 발탁돼 뉴욕 소호의 ‘다이치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작품전을 열며 미국 주류 미술계에 데뷔했다. 당시 그는 히스패닉계 미국시민들이 1950~60년대에 즐겨 타던 요란스런 장식이 달린 빈티지 모터사이클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바꿔 놓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무렵 그는 자신의 작가명을 ‘디자인’이라 발음되는 ‘Dzine’으로 바꿨다.

주로 갱스터들이 타던 낡은 모터사이클에 순금의 커빙 장식과 크리스털, 가죽을 덧댄 Dzin의 섬세하면서도 파격적인 작업은 고급문화와 하위문화가 하나로 녹아들며 매혹적인 아우라를 뿜어낸다. 도심의 골칫거리였던 굉음 울리던 운송수단이, 이토록 아름답고 럭셔리한 예술로 재탄생됐다는 사실에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나이키 회장 등 수많은 슈퍼컬렉터들이 그의 팬이 됐다.

커스텀 메이드 조각으로 명성을 얻은 Dzine은 이후로도 커스텀 컬처(Custom Culture)에 예술적 근간을 두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에게 ‘커스텀 컬처’란 서로 다른 문화의 융합이자, 순수미술과 디자인적 요소가 충돌 또는 어우러지며 독특한 시각예술로 구현되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흔적,스토리가 켜켜이..미국 수퍼컬렉터들이 점찍은 작가 Dzine 첫 서울전-copy(o)2-copy(o)1

이렇듯 그의 핏속에 흐르는 것은 푸에르토리칸으로서의 끈끈한 정서다. 가난한 이민가정 출신으로 어디를 가든 환영받지 못했던 비주류로서의 삶과 서로 다른 이중문화를 Dzine은 ‘예술’이란 언어로 뒤바꿔냈다. 놀랍고 비범한 솜씨로 회화, 조각, 퍼포먼스 등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 중인 것.

Dzine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2009년 대구)했던 대구의 리안갤러리(대표 안혜령)가 서울 통의동의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Thinking of Forever’라는 타이틀로 작품전을 연다. Dzine의 작업이 서울팬들에게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전시에는 우아한 미러 페인팅과 트로피 설치작품, 주얼리 조각 등 대형 신작 10여점을 출품했다.

인간의 기억,흔적,스토리가 켜켜이..미국 수퍼컬렉터들이 점찍은 작가 Dzine 첫 서울전-copy(o)2-copy(o)1

전시장에 들어서면 크리스털과 메탈, 순금으로 제작한 빈티지 트로피시리즈 ‘이민자들(Emigrants_Immigrants)’이 방문객을 맞는다. 뉴요리칸(Newyorican: 뉴욕 심장부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칸)에게 바치는 이 작품은 주변 친지들에게 받은 트로피를 금실과 크리스털, 벨벳으로 장식한 것이다. 트로피란 저마다의 투혼과 노력에 대한 영광스런 대가로, Dzine의 트로피는 이민자로서 미국 사회에 힘들게 정착하며 고유한 문화를 지켜간 이들에게 바치는 ‘승리’를 상징한다.

신작 중에는 ‘집’ ‘기억’ 등 자전적 요소에 기반한 작업이 많다. 더욱 정교해진 수공이 돋보이는 미러 페인팅과 샹들리에는 자신만의 내밀한 스토리를 환기시키고 있다. 작가는 “푸에르토리칸 가정에서 거울은 매우 중요했다. 우리 부모 또한 좁은 집을 넓게 보이게 하기 위해 거울을 곳곳에 부착했다. 거울은 착시현상과 함께 이민자들의 현실도피적 심리를 대변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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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지하전시장 3개 벽면에 내걸린 Dzine의 미러 페인팅은 주변 풍경을 끊임없이 투영하며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 게다가 정중앙에는 엄청난 크기의 샹들리에까지 매달려 있다.

미러 페인팅 위로, 샹들리에의 거울조각 위로 언뜻언뜻 투영되는 ‘나'의 모습과 주변 풍경은 인간 삶의 이중성과 복잡다단함을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그 공간 안에 관람객들이 오래 머물며 스스로를 조용히 돌아보길 원하고 있다. “자고로 거울은 나르시즘을 유발하는 오브제 아닌가요? 거울에 비친 나를 칭찬하고, 꿈을 독려했으면 좋겠어요.” 열정과 에너지로 똘똘 뭉친 이 재주 많은 아티스트의 소망이다. 전시는 4월 26일까지.

이영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