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승완 기자] ‘한국이 수출한 역대 최고의 상품.’
지난해 연말 일본의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NHN의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인 라인(LINE)에 대해 한 전문가가 내린 평가다.
지난 2000년 일본에 진출해 고전하던 NHN은 라인 하나로 일본에서 가장 각광받는 IT서비스 기업이 됐다. “라인시테(ラインしてㆍ라인해)”라는 표현은 관용구가 됐고, 골든타임대 방송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라인을 하는 장면이 서슴없이 등장한다. 지난 8월 NHN재팬이 라인을 통해 모바일 커머스 사업에 진출한다고 했을땐, 각종 경제정보 프로그램들이 특집 코너를 내보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라인의 성공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디자인을 꼽는다. 서양 기업들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메신저들이 무료통화 등의 ‘기능’에만 집착했던 반면, 라인은 귀엽고 섬세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감각적이고 깐깐한 일본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스티커를 통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성공의 밑거름이됐다.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에게 ‘다양한 스티커를 통한 섬세한 감정표현’을 제공해내면서 글자만 오고가던 메신저 시장에 ‘새로운 구조’를 디자인 해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요즘도 하루에 10억건의 라인 스티커가 송수신되고, 스티커로만 월간 10억엔 넘는 매출이 발생한다.
디자인에 성공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이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전에 볼 수 없던 제품, 새로운 서비스 구조, 새로운 생태계를 디자인해 내느냐가 기업들의 성공 열쇠가 되고 있다.
스마트 시장의 개척자인 애플이나, 날개없는 선풍기로 단번에 세계 생활가전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영국의 다이슨(Dyson), 캐쥬얼 슈즈의 대명사 톰스(TOMS) 등 21세기의 셀 수 없이 많은 기업 성공의 배경에는 새로운 시장과 제품구조, 철학을 그려낸 디자인이 자리잡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 디자인의 의미는 나날이 넓어지고 확장되는 추세다. 이제는 단순히 ‘더 예쁜 물건을 만들어 얼마나 더 비싸게 팔 것인가를’를 넘어 ‘제품ㆍ서비스의 생산과 판매의 전 과정에서 어떻게 가치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환경적ㆍ사회적ㆍ경제적으로 의미있는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가 디자인의 성패를 가르는 새 포인트가 되고 있다. 좋은 디자인(Good Dedign)을 넘어 옳은 디자인(Right Design)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더 가치있는 디자인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더 많은 비용을 기꺼이 지출한다. 버려진 콘크리트 배수 파이프를 재활용해 객실을 꾸민 오스트리아의 다스파크호텔(Dasparkhotel)은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반드시 가볼 만한 곳이 됐다. 어찌 보면 볼품없고 건조해보이는 콘크리트풍의 호텔이지만, 이곳에서 고객들은 다른 호텔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경험과 지구와 환경을 위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동시에 얻게 된다.
물론 우리 기업들도 이같은 흐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우리기업 활동의 곳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디자인하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세계 테크 산업의 거인 삼성전자는 ‘친환경 냉장고 포장재’, 폐지와 대두유를 이용한 ‘스마트폰 박스케이스’, 재활용 골판지를 이용한 미래의 컨셉트 프린터 등을 통해 ‘공존과 상생의 심미안’을 소비자들에게 전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디자인연구소 6곳, LRL(Lifestyle Research Lab) 등을 통해 세계 곳곳의 소비자들의 생활문화를 연구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디자인하기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이같은 노력은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인터브랜드가 발표하는 세계 기업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올해 삼성전자는 396억 달러로 8위를 차지했다. 지난 2009년 처음으로 브랜드 가치 순위 세계 20위안에 진입하고 지난해 9위를 기록한 데 이어, 한해 만에 브랜드가치를 20% 이상 늘렸다.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디자인과 가치철학을 더많은 세계인들이 인지하고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기아자동차는 지난 2009년 쏘울(Soul)의 영국 론칭때 현지의 ‘커브미디어’와 손잡고 새로운 방식의 광고를 선보였다. 광고판이나 종이 위에 광고를 인쇄하는 대신, 길거리 바닥의 쌓인 먼지를 닦아 내거나 모래조각을 만들어 로고를 새기는 방식의 친환경 광고를 디자인해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4만명이 넘는 사람이 웹사이트를 다녀갔고, 5000명 이상이 온라인으로 소울의 테스트 드라이브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새로운 광고 디자인이 소비자들의 호의를 이끌어낸 좋은 사례다.
정재훈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비자들의 지속가능한 제품ㆍ서비스에 대한 관심의 강도와 확산 속도는 아직 불명확하지만 이를 바꿀 수 있는 요인으로 인식하고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시도해 적극적으로 바꾸어간다면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