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주는 섬광 같은 행복 더 느낄 수 있게 도와야” -“아이 키우는데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달라져야” -“당장 결혼하는데도 비용이 많이 드는데 아이는 언제 낳나요”
[헤럴드경제=정세희ㆍ김성우 기자]우려한대로 출산율이 ‘0’인 시대가 왔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동향조사 결과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98로 사상처음으로 1점대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전세계 최초다. 정부 입장에선 빨간불이 켜졌다. 지금부터라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인구절벽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국민들에게 왜 통하지 않을까. 본지는 지난 6일 오후 약 2시간가량 서울 마포구의 한 가정집에서 좌담회를 열어 그 실마리를 찾아봤다. 이미 출산을 경험한 30대 기혼 여성, 아이를 낳고 싶은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 그리고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는 20대 등이 모였다. 각각 사연은 달랐지만 이들은 “좋은 환경만 있다면 아이를 낳을 사람은 많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간단한 자기 소개와 출산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
▶김신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이하 김)= 5세, 6세 아들 딸을 키우고 있는 주부다. 수차례 임신 실패를 반복하다가 기적처럼 첫째가, 그리고 둘째가 생겼다. 아이는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섬광처럼 찾아온다. 아이를 키우는 건 분명 힘들지만 만약 셋째가 생긴다면 그래도 낳고 싶다.
▶하정우(30ㆍ남) 씨&이지나(30ㆍ여) 커플 (이하 하 혹은 이) = 결혼을 앞두고 있는 30대 커플이다. 남자친구는 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고 여자친구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경제적인 여건으로 결혼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학자금 대출, 내 집 마련 등 결혼의 벽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닮은 아이를 키우면서 외롭지 않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유연지(가명ㆍ여) 씨=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지만 출산과 육아는 자신이 없다는 27세 취업 준비생.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출산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준다고 생각한다.
-출산율이 이렇게까지 낮아진 이유가 무엇일까?
▶김=결혼과 출산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능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살고 싶고 아이를 낳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환경이 좋지 않으니 본능을 거스르고 있는 게 아닐까.
▶유= 옛날에는 여성착취를 통해서 육아가 공짜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여성은 사회의 중요한 인적자원이 됐다. 특히 지금 사회는 물리적 차원이 아니라 인사이트와 콘텐츠로 노동력이 쓰이고 있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어렵게 쌓은 커리어는 순식간에 망가진다. 애를 낳는 행복보다는 비용이 너무 커서 애를 못낳는 것이다.
▶하=굉장히 복합적인 문제인 것 같다. 우리는 아이를 낳고 싶지만 당장 결혼의 걸림돌이 있다. 결혼하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특히 남자는 내집 마련의 선과제가 있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울 곳이 없는데 어떻게 낳겠나.
▶이=쉽게 기업문화를 바꾸기 어려운 문제도 있는 것 같다. 회사에서 남성 육아휴직이 얼마나 어려운지 많이 목격했다. 내가 더 뛰어나고 학력이 좋은데, 더 일을 잘하고 있는데 애를 낳고 나면 경력이 단절되니 망설여지는 면도 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왜 그동안 실패했다고 보는가?
▶유=그동안 1000조 넘게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순히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사람들이 애를 낳지 않을 것 같다. 보통 저출산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은 육아휴직, 경력단절 문제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이들이다.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엉뚱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김=제도를 만드는 사람이 평균 나이가 55.5세 남성이고 50억 이상의 부자들이다. 서민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이 당사자들의 실질적인 고민을 제대로 듣고 정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울 때 실제로 돈이 많이 드니까 그래도 현금 지원이라도 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김=다행히 나는 국공립유치원을 보내고 있어서 부담이 적지만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게 맞다. 하지만 유치원 보내는 데만 돈이 드는 게 아니다. 책 전집 사는 데만 해도 수백만원이 든다. 대학까지 보내려면 ‘억’소리가 난다. 하지만 단순히 돈문제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많다. 사회가 애 자체를 안좋아한다. 애 낳고 ‘죄인’이 되면서 살았다.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차갑게 쳐다보고 노키즈존은 계속해서 생긴다. 그러면서 어떻게 애를 낳으라고 하는가?
▶이=사회가 각박해지는 것 같다. 나는 밤늦게 옆집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도 그러려니 넘긴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 아닌가.
▶유=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아이가 다리를 다쳐 크게 울었다. 그런데 손님이 아이가 운다고 매우 크게 욕설을 하고 항의를 했다. 당시 알바생이라 적극적으로 나설 순 었었지만, 그때에도 ‘아 우리 사회는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예전에는 잘 이해 못한 것들이 출산을 하고 나서 달라졌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약자 입장을 더 이해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 아빠도 함께 성장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김=국가의 미래 경쟁력의 차원에서 출산율이 중요하다는 것은 오로지 정부의 관점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 출산은 지구상에서 가장 귀한 경험이라고 했다. 이 행복은 너무 오묘하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모른다. 너무 힘들지만 그 행복은 로또에 당첨돼도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이는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보편적인 감정이다.
▶이=나중에 덕을 보자고 애를 낳겠다는 게 아니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핏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운 일이다.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은 동화같지 않을까. 나중에 늙었을 때도 아이가 있는 가족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유=나도 개인적으로 아이를 무척 좋아한다. 국가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입장도 이해가 간다. 인구절벽으로 인한 국가 경쟁력 상실은 결국 우리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조건 낳아야 한다는 식은 매우 폭력적이다.
-그렇다면 저출산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가?
▶김=임신과 출산은 남녀의 본능인데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건 키울 환경이 안된다는 의미다. 맞벌이 부부는 당장 내 아이를 돌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겠는가. 육아휴직도 중요하지만 ‘칼퇴근법’도 필요하다. 이건 어쩌면 휴직보다도 더 쉬울 수도 있다. 누구라도 저녁에 내 아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사실 아이를 돌볼 기관만 있다면 더 낳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희망은 있단 얘기다. 중요한 건 ‘아이는 개인이 알아서 키우라’는 오래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를 사회가 키워야 하는 시대다.
▶이=지금 드는 돈을 국공립유치원 확충에 썼으면 좋겠다. 여성들이 맘 놓고 일할 수 있게 직장 어린이집 함께 늘릴 필요가 있다. 단순 현금 지원보다도 이렇게 실질적인 걱정거리를 줄여줘야 할 것 같다. 해외 사례를 잘 참조했으면 좋겠다. 유럽은 싱글맘, 싱글 대디 모두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 부모님이 봐주는 문화가 아닌데도 말이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없애지고 지원을 늘린 덕분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도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유=임신과 출산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오로지 여성의 것인 게 안타깝다. 남성들도 이를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어떤 차별과 고통을 겪는지 함께 느끼는 감수성이 생겨야 임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질 것 같다. 그래야 문화도 달라진다.
▶하= 남성으로서 주택 마련 문제가 너무 부담이 크다. 가장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집값을 안정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