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월드컵의 계절이다. 12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월드컵 4강 신화의 기억은 강렬하다. 돌아보면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를 2002 월드컵 이전과 이후로 바꾼 인물이다. 히딩크의 한국축구 개조는 기존 통념을 깨는 진단에서 시작됐다. “한국 선수들은 개인기에서 크게 뒤지지 않지만 체력이 부족하다”. 당시만 해도 한국축구는 체력과 정신력은 뛰어나지만 개인기가 부족하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던 때였다. 기초체력을 높이기 위한 처방도 생경했다. 한국 선수들이 통상 하는 체력훈련은 400m 운동장을 반복해 도는 구보 였다. 히딩크는 달랐다. 20m를 전력으로 뛰고, 5초 쉬었다가 또 20m를 뛰는 ‘셔틀런’을 120회 반복했다.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축구 선수에게 적당한 체력을 연마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축구 맞춤형 체력’을 기른 우리 선수들은 90분 동안 쉼없이 움직이는 ‘압박축구’로 당초 목표 였던 월드컵 첫승과 16강을 넘어 4강 신화를 창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전 대한민국의 안전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국가개조 계획을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도 제안했다. 히딩크가 그랬듯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따라 한국의 재난대처 능력이 4·16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된다.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론이 이런 역사적 평가를 받으려면 한국의 재난 안전시스템에 내린 처방에 특효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해경이 무능했으니 아예 없애고, 컨트롤타워 부재가 지적되니 국가안전처를 새로 만들고, 민관 유착이 원흉 이라니 공무원 입·출구를 잔뜩 조이는 처방을 내놨다. 이런 것들을 하려니 행정조직을 대수술해야 하고 정부조직법, 공직자윤리법도 바꿔 국회에 보내야 한다. 안전 이라는 이름을 단 법·제도는 모두 손댈 요량이고 관련 조직은 이리 저리 떼고 붙였다 해야 할 참이다. 정부가 됐든 민간이 됐든 우리나라의 재난 대처 능력과 의식은 구제불능이니 아예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자학적 태도도 보인다. 관료들 끼리 탁상에서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셀프개혁’의 밑천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론을 한국축구에 비유하면 체력, 정신력, 개인기 모두 문제이니 처음부터 다시 만들겠다며 덤비는 식이다. 히딩크 이전 한국축구 감독들이 이같은 욕심을 내다 본선 16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히딩크는 한국축구의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축구 맞춤형 체력을 기르는데 우선순위를 뒀다. 체력이 강화되자 우리 선수들은 멀티플레이어가 됐고 자연히 어느 포지션에서든 수비 가담이 이뤄지는 압박축구가 완성돼 결국 강팀으로 거듭났다.
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국가개조도 이런 선순환의 사이클이 일어나도록 해야한다. 세월호 참사의 인명 피해가 컸던 원인을 극히 단순화하면 해경의 초동대처 부재다. 다른 모든 원인은 세월호에 국한되지 않는다. 천재든, 인재든 사고는 일어나고, 악덕 기업주, 민관유착, 안전불감증은 한 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세월호 사태 수습후 당장 해야할 일은 해상 골든타임 구조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다. 이 능력이 고도화되면 응용력이 생겨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 대처 능력도 덩달아 높아지게 되고 결국 대한민국의 안전시스템이 진화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정작 중요한 것은 안전시스템 정비인데 한국인들은 참사의 원인을 캐려다가 너무 그물을 넓게 던졌다”고 꼬집었다. 박 대통령이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다.
문호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