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EPA]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EPA]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이탈리아 정부가 해외로 이주하는 부유층에 자산 가치 상승분의 26%를 세금으로 물리는 이른바 ‘출국세(Exit Tax)’ 도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세금 혜택을 앞세워 세계 부유층을 끌어들여 온 이탈리아가 정책 방향을 틀면서, 오히려 부유층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내년부터 출국세를 부과하면 지난 10년간 밀라노 등 주요 도시로 이주해 온 외국인 부유층의 발길이 끊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12억원 넘으면 대상…‘미실현 이익’에 26% 과세

[12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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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3당 연립정부는 지난 주말 의회에 제출한 2027년 예산안에 80만유로(약 12억원) 이상 자산가가 해외로 이주할 때 미실현 평가이익에 26%를 과세하는 방안을 담았다.

미실현 평가이익은 주식이나 채권 등의 가치가 매입 때보다 올랐지만 아직 팔지 않아 확정되지 않은 이익을 말한다. 자산을 팔아 현금을 쥐지 않았더라도 거주지를 옮기는 시점에 세금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초부유층’을 겨냥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해외 이주 직전 10년 중 최소 6년 동안 이탈리아 세법상 거주자였던 사람이 대상이다. 이탈리아를 떠난 뒤 일정 기간 금융자산을 팔지 않으면 낸 세금을 돌려받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탈리아는 고질적인 인재 유출을 해결하려고 지난 10년간 세제 혜택을 적극 활용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정액 과세’다. 이주한 부유층은 해외 자산과 소득을 따로 계산하는 대신 매년 정해진 금액만 내면 최대 15년간 혜택을 받는다. 제도가 도입된 2017년 연간 납부액은 10만유로였다.

외국에서 돌아온 자국민을 포함한 신규 전문직에게도 이주 후 5년간 급여 일부에만 소득세를 매기는 감면 혜택을 줬다.

그러나 최근 2년 사이 밀라노에 세계 초부유층이 몰려드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멜로니 정부는 정액 과세액을 두 차례 올렸다. 최근 이주한 부유층의 연간 정액 세금은 현재 30만유로까지 높아졌다.

“이탈리아 정부 말 바꾸기에 부유층 고객 불안”

[12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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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관리 전문 변호사들은 법안이 통과되면 초부유층과 고소득 전문직에게 이탈리아의 매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주를 계획하던 사람은 재검토하고, 이미 사는 사람도 장기 체류를 꺼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법률회사 미슈콘 드 레야의 찰리 소스나 자산관리·세무 부문 책임자는 “이는 매우 중대한 변화이며, 이미 이탈리아로 이주했거나 거주 기반을 마련한 많은 고객을 상당히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들은 이전부터 이탈리아의 세제환경이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이주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며 “최근 정액 과세 제도가 잇따라 변경된 데 이어 출국세 도입까지 거론되면서 고객들이 이탈리아 이주 여부를 매우 신중하게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회계·세무법인 무어 킹스턴 스미스의 팀 소토볼드 세무책임자는 출국세가 오히려 조기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세 기준인 거주 6년을 채우기 전에 떠나려는 사람이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조치는 이탈리아를 장기적인 정착지로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의 매력을 크게 떨어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로마 국회에서 하원의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로이터]
이탈리아 로마 국회에서 하원의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로이터]

법안에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있었다. 법률회사 키오멘티의 미우리치오 프레스카 선임 세무 변호사는 “출국세가 기존 정액 과세나 다른 세금 감면 제도와 어떤 관계를 갖게 될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내 자산에만 과세하는지, 해외 자산까지 포함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도 없다고 했다.

법률회사 마이스토 에 아소치아티의 마르코 체라토 파트너 변호사는 “현재 법안 초안을 보면 정액 과세 제도를 적용받는 사람들의 해외 자산은 출국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면서도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해 이탈리아 이주를 고려했던 사람들은 이번 조치로 다소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각국 정부와 지자체가 부유층 과세 방식을 재검토하는 흐름 속에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억만장자에게 일회성 5% 부유세를 물리는 방안의 승인 여부를 가리는 투표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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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