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예산 집행률 0.7%…내년 2.5배 증액
급유선 장비 설치비 4.5억…영세업체 부담 커
[헤럴드경제=김선국 기자] 선박에 기름을 공급할 때 양을 속이거나 연료를 불법으로 유통하는 일을 막기 위한 정부 사업이 법 개정 지연과 높은 장비 설치비에 발목이 잡혔다. 올해 8월까지 실제 집행된 예산은 전체의 0.7%에 불과했다. 정부가 내년 예산을 111억5000만원으로 2.5배 늘린 가운데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과 영세업체의 비용 부담 완화가 사업 확대의 관건으로 꼽힌다.
4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27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내년도 ‘선박연료 정량공급 운영지원’ 사업에 111억5000만원을 편성했다. 올해 예산 44억5000만원보다 67억원(150.6%) 늘어난 규모다.

이 사업은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는 급유선에 질량유량계(MFM)를 설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질량유량계는 선박에 실제로 공급한 기름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장비다. 연료를 공급한 업체와 공급받은 선박 사이에서 발생하는 급유량 분쟁을 줄이고 면세유 부정유통을 막기 위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관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5년부터 선박연료 공급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해수부도 국내 항만에서 이 같은 장비를 활용해 선박연료 거래의 신뢰도를 높이고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예산 가운데 108억원은 급유선 48척에 질량유량계를 설치하는 데 쓰인다. 선박 한 척당 설치비는 4억5000만원이다. 정부가 절반인 2억250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선박 소유주가 부담한다. 사업 운영비로는 3억5000만원을 편성했다.
문제는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 작성 당시 국회에는 선박연료 공급업체가 연료 공급량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관련 장비를 설치하도록 하는 항만운송사업법 개정안 2건이 계류 중이었다.
현행법에도 항만운송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조항은 있다. 해수부는 이를 근거로 장비 설치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업체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설치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더라도 선박 소유주는 한 척당 2억2500만원을 내야 한다. 소규모 급유선 업체로서는 장비 설치가 의무도 아닌 상황에서 수억원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장비 설치비는 올해보다 더 비싸졌다. 올해 한 척당 3억5000만원이던 설치비는 내년 4억5000만원으로 28.6% 올랐다. 해수부는 해외에서 제작한 장비의 운송비와 환율 상승, 조선소 이용료와 인건비 증가 등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예산 집행도 부진하다. 올해 예산 44억5000만원 가운데 8월까지 실제 사용된 금액은 3000만원에 불과했다. 전체 예산의 0.7%다. 해수부가 10월까지 추가로 집행하겠다고 제시한 계획을 반영해도 예상 집행률은 26.5% 수준이다.
지원 대상도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었다. 정부는 2024년 사업 평가 당시 2025년부터 2027년까지 급유선 284척에 장비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후 지원 규모는 2025년 4척, 2026년 24척, 2027년 48척 등 모두 76척으로 축소됐다. 처음 계획한 물량의 26.8% 수준이다.
지원 대상이 줄어든 만큼 향후 장비 설치가 의무화되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업체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예산안 분석에서 일부 업체만 지원받을 경우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지원 예산을 늘리거나 사업기간을 연장하는 방안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올해 보고서에서는 법 개정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예산만 늘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장비 설치를 신청한 업체가 얼마나 되는지, 설치를 마친 선박은 몇 척인지 등을 확인한 뒤 내년도 지원 규모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질량유량계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을 서두르는 동시에 올해 최종 집행 실적과 업체들의 신청 현황을 분석해 내년도 지원 물량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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