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스터 비토(Mr. Veto·거부권)’가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패배할 경우를 묻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거부권 행사를 노골화한 것이다.
11·3 미국 중간선거의 막이 올랐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향후 2년간 미국 정치의 권력 지형을 좌우할 분수령이다. 민주당이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탈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잃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약화하고 의회의 조사와 청문회, 예산 통제 등 견제 장치는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의회의 견제가 강해진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이 자동으로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회의 제동을 피할 수 있는 대통령 거부권이나 행정 권한에 더욱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의회가 대통령 거부권을 무효화하려면 상·하원 모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해 현실적으로 힘들다.
가장 우려되는 분야는 관세다. 헌법상 관세 부과 권한은 의회에 있지만, 의회는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 등을 통해 대통령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위임했다. 이미 위임된 권한을 의회가 회수하거나 입법으로 관세정책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의회의 견제가 심해질수록 트럼프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휘두를 수 있는 관세에 더욱 의존할 공산이 크다. 그는 이미 로봇과 산업용 기계, 핵심광물, 풍력터빈 등에 대한 신규 관세를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관세는 단순한 통상 카드가 아니다. 상대국의 양보를 끌어내는 협상 카드이자 안보·외교·국내 정치를 관통하는 압박 수단이다. 의회와 충돌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위임된 권한으로 관세를 확대한다면 글로벌 교역 질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란 전쟁도 변수다. 의회의 견제가 강화되더라도 대통령의 군사·외교적 선택지가 모두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권한법과 예산 심의가 제동 장치가 될 수 있지만,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시킬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 국내 정치적 압박이 커질수록 외부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유혹도 커질 수 있다. 이란전쟁의 확전이 중간선거 이후 단행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 역시 안심할 수 없다. 트럼프는 이란 전쟁으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을 낮추겠다며 러시아산 디젤 공급을 추진했다. 미국 내 물가상승의 원인이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이란 공격에 있음에도, 분쟁을 조속히 수습하기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에 책임을 돌렸다. 우크라이나 ‘침략국’인 러시아에 대한 제재 기조마저 흔들며 거래를 시도하는 양상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기존 외교·안보 질서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은 중간선거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미국 의회의 권력구도가 바뀐다고 한미 통상·안보 현안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세와 대미투자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 이란전쟁은 국제유가와 에너지 수급을 흔들고, 미국과 러시아의 거래는 대북제재와 한반도 안보에도 파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의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해킹 연루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선거 이후 북미관계 역시 새로운 변수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진짜 불확실성은 트럼프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이 아니다. 오히려 견제와 충돌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정책의 급격한 방향 전환이다. 한국은 남은 임기 2년 동안 거세질 ‘트럼프의 폭주’를 경계해야 한다. 민주당의 승리가 트럼프의 폭주를 막는다는 보장은 없다.
천예선 국제부장
cheo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