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APR1000 첫적용 따른 총액확정방식 위험” 공감대
한수원, 이집트 엘바다 원전 총액확정계약 책임자 중징계
[헤럴드경제=배문숙·서정은·홍승희 기자]‘팀코리아’로 수주한 약 27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사업이 시공계약 협상 결렬로 새 국면을 맞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내년 7월까지 새 시공사를 선정한다는 계획이지만, 건설업계에서는 계약 방식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계 최초로 건설되는 APR1000 노형의 설계와 물량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사비를 미리 고정하는 총액확정계약(Lump-Sum)을 적용하면 시공사가 감당해야 할 위험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산업통상부는 2일 박동일 차관 주재로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체코 원전 프로젝트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한수원의 신규 시공사 선정 절차와 소요 일정, 기존 협상 종료에 따른 주요 임무 수행 방안 등을 논의했다. 내년 4월 건설허가 신청, 2029년 1월 부지 정지 착수, 같은 해 11월 착공 등 주요 일정의 차질 없는 이행 대책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수원은 두코바니 원전 5·6호기 건설사업의 새 시공사를 내년 7월까지 선정할 계획이다. 한수원은 사업비 관리를 위해 총액확정 방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체코 원전의 사업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액확정계약은 공사 시작 전에 전체 공사비를 정하고, 이후 자재비 상승이나 공사 물량 증가 등으로 비용이 늘어나더라도 원칙적으로 시공사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사업비를 사전에 관리할 수 있지만, 설계 변경이나 물량 변동 가능성이 큰 사업에서는 시공사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체코 원전에 적용되는 APR1000은 실제 건설 사례가 없는 초도 노형이다. 설계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공사 범위와 물량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입찰 단계에서 정확한 공사비를 산출하기 어렵다는 게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시공사가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설계 변경이나 현지 여건에 따른 비용 증가까지 부담해야 한다면 수익성을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이는 시공사 재공모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수원과 대우건설의 협상 결렬도 이 같은 위험 분담을 둘러싼 이견에서 비롯됐다. 한수원은 2022년 최초 입찰 당시 시공단이 총액확정계약을 제안해 합의했으며, 국제건설계약 표준(FIDIC)은 물론 국내 원전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서도 모두 해당 방식을 적용했다고 설명한다.
반면 대우건설은 APR1000과 기존 수출 원전의 사업 여건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내외에 참조 발전소가 있는 APR1400 기반 바라카 원전과 달리 체코 원전은 기본설계조차 완료되지 않아 공사 물량의 변동성이 크다는 것이다. 설계 권한이 없는 시공 하도급사에 설계 변경에 따른 위험까지 부담시키는 것은 FIDIC 레드북의 계약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우건설은 “APR1400이라면 총액확정계약이 타당할 수 있지만, 체코 원전은 설계가 진행 중이어서 정확한 물량을 산출하기 어렵다”며 “2024년 입찰 당시에도 시공금액 8조2000억원을 전제로 하되 물량정산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시공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맞춰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설계변경을 직접 결정할 수 없는 시공사에 추가비용까지 부담시키면 계약 당시 예상한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공사과정에서 늘어난 비용을 시공사가 먼저 부담한 뒤 협의나 소송으로 정산하더라도 자금부담과 회수 불확실성이 남는다.
한수원도 총액확정방식으로 수주한 이집트 엘바다 사업으로 1조2000억원가량의 손실을 보고 있다. 한수원 감사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한수원의 공사손실 충당부채는 약 1조 2000억 원 규모로, 대부분은 이집트 엘바다 사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손실 충당부채는 계약한 공사에서 앞으로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될 때, 그 손실을 미리 비용과 부채로 반영한 금액이다. 한수원은 해당 사업 책임자인 실장급 인사는 정직 1개월, 처장급 인사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체코원전 수주당시와 현재 물가가 오른 상황인데 총액확정방식만 강요하는 것이 맞지 않다”면서 “앞으로 원전 수출에서는 공사비를 고정하기보다 물가 상승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수원은 재입찰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위험분담 조건을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한다면 새로운 시공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A 건설사 임원은 “해외 원전 건설은 국내 사업과 달리 현지 제도·법률·조세 환경 등 다양한 변수를 사전에 완벽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며 특히 체코 원전은 국내 기업의 첫 진출 사례인 만큼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가 제한적이고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확실성이 큰 해외사업의 모든 위험을 시공사에 전가하는 방식이라면 누가 뛰어들겠느냐”고 강조했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 또한 “2014년 유가 급락 이후 건설사들이 중동과 동남아시아 등 해외사업에서 막대한 손실을 경험하면서 소규모 해외공사라도 수차례 수주심의위원회를 거쳐 수익성을 철저히 검증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이번 사업의 경우 시공사 입장에서는 기본설계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물량, 가격 변동 리스크를 다 져야한다는 맹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공사 물량과 비용이 불확실할 경우 유닛계약을 활용해 실제 수행한 물량에 따라 비용을 정산하고, 상세설계가 구체화된 이후 총공사비를 확정하는 방식도 사용했다”며 “이번엔 공사 물량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액부터 정하도록 요구했다는 점에서 계약 순서도 거꾸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체코 원전사업은 정부 간 협력(G2G) 사업이고, 체코 테믈린 원전 등 후속 수주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번 갈등이 대외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세계 원전 발주처들이 사업진행상황을 지켜보는만큼 계약방식과 위험 분담 구조 자체를 다시 살펴보고, 기존 시공사와의 협상 가능성도 열어야한다”고 말했다.
oskymoo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