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 자금조달계획서 분석 결과
서초는 개인 차입 8.7%·주담대의2배 넘어
“사적 자금 동원력 따라 양극화 우려”
[헤럴드경제=김희량·윤성현 기자] # 지난달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리체 84㎡(전용면적)는 40억원에 매매됐다. 집을 팔면서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채권최고액 6억원의 근저당권 설정을 했다. 실제 빌려준 돈의 120% 정도를 채권최고액으로 설정하는 것을 보면, 이른바 ‘셀러 파이낸싱(매도인 대출)’으로 4억원 가량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고가주택이 밀집한 서울 강남· 서초 지역에서 주택 매수 시 조달한 자금 가운데, 이처럼 집을 파는 집주인이나 가족 등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마련한 비중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비중보다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 성남시 분당 아파트를 매도하며 셀러 파이낸싱이 알려진 가운데, 금융권 대출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개인 간 차입이 주택 매수자금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27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주택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계획서(6일 기준)’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주택 자금조달서 제출 금액 중 ‘그 밖의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6%로 집계됐다. ‘그 밖의 차입금’은 부부나 부모 등 가족은 물론 집을 매도한 집주인 등 개인 관계를 통해 빌린 자금을 뜻한다.
이 같은 개인간 대출로 인한 자금조달 비중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한 6·27 대책 직후인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높다. 공교롭게도 강남3구에서 집을 산 이들이 주택담보대출로 자금을 조달한 비중은 같은 기간 22.8%에서 5.3%로 쪼그라들었다. 숫자만 비교하면 은행보다 ‘사적 네트워크’로 빌린 돈의 비중이 주택담보대출 비중보다 높아졌다.
구별로 살펴보면 강남구는 9월 ‘그 밖의 차입금’ 비중이 9.2%(244억원)로 두 달 전인 7월(3.9%, 263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자금조달액이 6743억원(268건)에서 2645억원(135건)으로 60.8% 급감하면서 ‘그 밖의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서초구에서도 같은 기간 3.3%였던 ‘그 밖의 차입금’의 비중이 8.7%로 크게 증가했다. 서초구에서도 전체 자금조달액이 지난달 2579억원(133건)으로 7월 3979억원(224건) 대비 급감했지만 그 밖의 차입금은 오히려 130억원에서 225억원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송파구도 ‘그 밖의 차입금’ 비중이 ▷7월3.8% ▷8월 4.7% ▷9월4.9%로 소폭 높아지며 이 흐름에 동참했다.
시장에선 이 대통령 부부의 분당 아파트 거래로 ‘집주인 대출’이란 방식이 대중에 알려진 가운데 대출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사적 차입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대통령 부부는 집을 팔면서 매수자의 잔금 지급을 일정 기간 유예해 주고 해당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이후 강남 일대 고가 아파트 시장을 중심으로 잔금을 매도인이 빌려주는 ‘집주인 대출’이나 ‘매도인 근저당’ 조건의 매물이 잇따라 등장하며 새로운 자금 조달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대출 한도를 낮추는 규제가 적용되면서 강남구 주택 자금조달총액 중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은 주담대 한도를 제한한 6·27 대책 직후인 지난해 7월 23.2%에서 올해 9월 5.4% 수준으로 급감했다. 서초구와 송파구 역시 같은 기간 각각 22.1%, 22.8% 수준이던 해당 비중이 3.6%, 6.8%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25억원 초과 주택의 주택담보대출 가능액이 2억원으로 축소된 10·15대책 이후로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자금조달 총액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쪼그라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대출 상환 능력이 있는 고액연봉자 등 강남 실수요자들도 금융기관을 통한 정상적인 자금 조달길이 막히면서, 가족·친지 혹은 매도인 등 개인에게 돈을 빌리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집주인 대출은 금융권의 자금 조달 통로가 막히면서 나타난 일종의 ‘규제의 역설’로 볼 수 있다”며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거래인 만큼 단순히 규제를 우회한다는 이유로 거래 당사자들을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집주인이 자금을 빌려주는 ‘셀러 파이낸싱’은 매수자와 매도자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키는 거래 방식이라고 칭한다. 매수자 입장에서는 금융권의 대출 한도를 넘어설 수 있고 매도자는 거래 성사와 정기적인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부동산 자산을 정리해 얻는 절세도 이점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가격 조정기에는 매도자가 무리한 가격 할인 대신 ‘집주인 대출’을 역제안해 시세 차익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남의 돈을 빌려 집을 사는 방식이 강남권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고가아파트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해 가족 등 가까운 관계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때 증여세 부담이 크다. 개인 간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부모 입장에서도 보유자산을 당장 처분하지 않고도 매수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등 선택지가 늘어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강남권은 거래 당사자들의 자산 규모가 큰 만큼 다양한 자금조달 방식이 활용되는 편”이라면서 “고가주택은 증여 금액이 크기 때문에 절세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갚는 돈(차입)’을 넣어 자금 계획을 짜는 분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토지거래허가제로 실거주 의무가 생기면서 갭투자도 어려워졌기 때문에 자금을 메울 통로가 가족이나 셀러파이낸싱으로 좁혀졌을 것”이라며 “특히 강남구는 거래 당사자들의 자금 규모가 크고 가족 간 차입이 가능한 이들이 많다는 점, 차입이 절세에도 유리한 점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사적 네트워크로 금융권 밖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주택 매수 기회가 달라지면서 오히려 주택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금융권 대출은 소득, 담보가치 등 일정한 기준에 따라 공급되지만 사적 차입은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자산과 사적 신용관계에 따라 접근성이 달라진다”면서 “고가주택 시장에서는 이 자금조달의 유연성이 수요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지만 대출의존도가 높은 시장은 그러지 못해, 장기적으로는 주택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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