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과거 반도체 사이클을 대입하면 지금은 7부 능선 정도에 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상황이 다릅니다. 설비투자 사이클이 2~3년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소부장 기업들의 상승 여력도 과거보다 1.5~2배 이상 높아졌다고 봅니다.”
곽찬 KB자산운용 액티브ETF운용실장은 20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종의 성장 가능성을 이같이 평가했다. 과거 반도체 호황기와 달리 인공지능(AI) 산업을 중심으로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면서 소부장 기업들의 실적 성장세도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곽 실장은 반도체 업계에서 약 17년간 경력을 쌓아온 전문가다. KB자산운용이 이날 선보인 ‘RISE 반도체소부장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의 운용을 이끌고 있다. 최근 반도체 업종의 주가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소부장 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 아래 상품 출시를 준비했다.
그가 이번 반도체 호황기를 과거와 다르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수요 구조의 변화다. 과거에는 PC와 스마트폰이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주도했다면 현재는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서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곽 실장은 “2018년에는 모바일과 PC가 메모리 수요의 약 6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서버 비중이 70%에 달한다”며 “과거에는 메모리 공급량이 늘어나면 수요가 빠르게 충족되면서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지만, 현재는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 기업들이 많아 공급이 확대되더라도 이를 흡수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사들의 설비투자도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메모리 업황의 상승·하강 사이클이 통상 1년 6개월~2년가량 지속됐다면 이번에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2~3년간 이어지는 ‘멀티이어(Multi-year) 슈퍼사이클’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평택과 용인 등에서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향후 투자 지역이 추가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며 “과거에는 단기간의 설비투자 확대로 공급 과잉이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투자 규모와 기간 모두 크게 늘어나 소부장 기업들의 실적 성장 폭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소부장 기업들의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과거에는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25~30배 수준에 도달하면 고평가 부담이 부각됐지만, 이번에는 이익 성장의 지속성이 높아진 만큼 30배 이상의 평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곽 실장은 “이번 사이클에서는 소부장 기업들의 실적뿐 아니라 밸류에이션도 과거보다 높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소부장 업종 내에서도 투자 유망 분야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설비투자를 확대하는 초기에는 장비 업체들의 수주가 먼저 늘어나지만, 신규 공장의 가동률이 높아지는 시점에는 소재·부품 업체들의 실적이 본격적으로 개선되기 때문이다.
곽 실장은 “설비투자 확대 초기에는 장비주를 우선순위에 두고, 이후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는 구간에서는 소재·부품주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 유효하다”며 “현재는 소재·부품보다 장비 업체들의 비중을 높게 가져가고 있지만 올해 4분기부터 내년 1분기 사이에는 점차 소재·부품으로 투자 무게중심을 옮겨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산업 내 주도주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점도 액티브 ETF를 출시한 배경으로 꼽았다. 특정 업종이나 종목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패시브 ETF와 달리 액티브 ETF는 시장 상황에 맞춰 투자 종목과 비중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대형 메모리 기업들의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동안 전공정 장비주들이 재평가받았다면, 이후에는 후공정 장비와 반도체 패키징·테스트(OSAT)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강한 주가 흐름을 보였다.
그는 “기존 반도체 ETF는 전공정이나 후공정 등 특정 분야에 집중된 상품이 많다”며 “반도체 사이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업종별 주가 상승 시점이 달라지는데, 하나의 상품으로 이러한 변화를 탄력적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이번 상품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KB자산운용의 ‘RISE 반도체소부장액티브 ETF’는 국내 상장 반도체 소부장 기업 중 핵심 종목을 선별해 투자한다. 삼성전기, 기가비스, 심텍, 테스, 피에스케이홀딩스 등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기업별 수주잔고와 고객사의 설비투자 계획, 공장 가동률 등을 분석해 편입 비중을 조정한다.
종목 선정에서는 기술 경쟁력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고객사와의 관계 및 수주 가시성과 함께 해외 고객사 확보 여부도 주요 평가 요소다. 국내 반도체 제조사 중심이던 소부장 공급망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되고 있는 만큼 고객사를 다변화한 기업일수록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최근 주가가 급락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주보다 소부장 기업들의 단기 반등 탄력이 클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대형 메모리 기업들은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과 주주환원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주가 상승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곽 실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장기 성장성에는 의구심이 없지만, 현재 주가가 반등하지 못하는 것은 실적이 부족해서가 아니다”며 “연말까지 주주환원 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소부장 기업들에 더 강한 상승 동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에게는 반도체 대형주와 소부장 기업들을 함께 보유하는 분산 투자 전략을 제안했다. 다만 액티브 운용을 통해 개별 기업의 수주·재무 위험은 줄일 수 있어도 반도체 산업 전체가 하락하는 위험까지 피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곽 실장은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메모리 기업에 투자 비중이 집중된 투자자들이 많다”며 “대형 메모리주를 핵심 자산으로 보유하면서 소부장 ETF를 보완적으로 편입하는 ‘코어·위성(Core-Satellite)’ 전략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th5@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