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궁예’ KBS 화면캡쳐
드라마 ‘궁예’ KBS 화면캡쳐
드라마 ‘궁예’ KBS 화면캡쳐. 어린 궁예 출가 때 모습
드라마 ‘궁예’ KBS 화면캡쳐. 어린 궁예 출가 때 모습
궁예의 출가사찰로 기록된 영월 세달사지 출토유물
궁예의 출가사찰로 기록된 영월 세달사지 출토유물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누가 기침소릴 내었는가” 등의 궁예 유행어는 드라마 작가가 기록에 나타난 궁예왕의 성정을 추정해 만든 대사이다.

승려 출신인 궁예는 후고구려의 황제에 까지 올랐지만, 그에게도 초년병 수도승 시절이 있었다. 많은 곳에 궁예의 족적이 남아있는데, 초기 족적은 강원 영월 세달사에 있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영월 세달사지는 태화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 중턱에 자리한 사찰 유적이다.

‘삼국사기’에는 궁예가 출가한 사찰로 기록돼 있으며, 조선시대 문헌에는 태화산 서쪽 흥교사에 고려 인종의 아들인 승려 충희의 비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왕과 사는 도시’ 영월에서 또 하나의 왕 궁예가 어린 승려의 모습으로 기침(起寢:자리에서 일어남)했다.

영월군은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인 ‘영월 세달사지’의 보존·정비와 역사적 가치 규명을 위해 12~13일 일정으로, 발굴 현장에서 전문가 자문회의와 주민설명회를 열고 있다.

영월 세달사지 발굴지 전경
영월 세달사지 발굴지 전경

영월군은 강원특별자치도의 2026년 도지정유산 보수정비사업 지원을 받아 지난 8월부터 세달사지의 정비·복원을 위한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해 왔다.

앞서 2012~2013년 조사에서는 건물터와 기단, 탑터 등 40여 기의 유구(옛 건축물 등의 흔적)와 유물 500여 점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세달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돼 고려시대에 흥교사로 이름이 바뀌고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며, 고려시기에 주요 사찰로 운영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건물터 2동과 담장, 계단 형태의 통로인 답도, 배수로, 건물 기초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다.

특히 사찰터 동쪽 외곽에서 발견된 사각형 석조시설은 승려의 사리탑이나 탑비, 석등 등의 기초시설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주변 유구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문헌에 기록된 승려 충희의 비와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어 추가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영월 세달사지 방형 석조시설
영월 세달사지 방형 석조시설

궁예와 세달사 인연에 관한 연구도 함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현장 자문회의에서는 주요 유구와 출토 유물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고, 사찰터의 범위와 건물 및 부속시설의 성격, 향후 조사와 보존·정비 방향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머지 않아 영월은 궁예라는 또 다른 임금의 인문학 배움터가 될 것 같다.

김길수 영월군수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세달사지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까지 이어진 불교 유적임을 확인하고 있다”며 “궁예의 출가와 영월의 역사를 보여주는 세달사지의 가치를 밝히고, 지역 주민과 함께 보존·정비 및 활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