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구조적 차별의 돌파구] ③
국내 전문가 3인의 진단과 해법
“현재 고령여성의 빈곤 방치하면
절음 여성, 결혼·출산 기피 영향”
노후소득 늘리고, 일터 안전 강화
[편집자 주] 국내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7배에 달한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 노인의 삶은 더 곤궁하다. 여성 노인들은 오랜 시간 ‘가족 돌봄’에 헌신하길 요구받았고 집 밖에서의 경력을 내려놔야 했다. 이 경력 단절은 그들에게 직업인으로서 존재감을 옅게 만들었고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했다. 나이 든 그들은 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헤럴드경제는 여성 노인의 젊은 시절 헌신이, 시간이 지나 가난과 불안으로 ‘청구’되는 구조를 조명했다.
[헤럴드경제=이영기·전새날 기자] 결혼·출산·육아 등으로 가정에 기여한 시간이 고령 여성의 빈곤을 만든다는 진단으로 사례를 발굴하고, 문제를 지적한 헤럴드경제는 나아가 국내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해법을 종합했다. 전문가들은 안전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물론, 고령 여성의 빈곤을 낳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국민연금’ 등 연금 제도의 개선을 제언했다.
헤럴드경제는 ▷‘고령 여성 노후소득 현황과 취업지원’ 연구보고서를 작성해 고령 남녀간 소득 격차를 밝힌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실태조사‘를 수행하는 천재영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박사 ▷폐지 수집 고령 여성에 대한 생애사 연구를 담은 ‘가난의 문법’ 저자 소준철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등을 만났다.
전문가들은 우선 현재 고령 여성의 빈곤의 원인은 30~40대 경력 단절에서 시작된다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60대 이상 여성의 빈곤은 살아온 생애의 결과물을 지금 받고 있는 형태”라며 “결혼과 함께 가정에서 무급 노동으로 종사하면서 30~40대의 경력 단절이 발생한다. 이후 노동 시장 재진입 시 저임금·단시간·돌봄 일자리로 이어지고, 이것이 노후소득 격차로 연결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장 임금 소득 뿐 아니라 가정에 기여한 무급 노동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국민연금에서도 손실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여성’이라는 획일된 정체성으로 묶여 있던 차별에서 기인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의된 정체성이 여성들에게 가정 기여에 대한 압력, 노동 현장에서의 불이익 등을 가했고 결과적으로 빈곤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천재영 박사는 “현재 70대인 고령 여성이 태어난 1950년대 전후는 다수의 여성들에게는 ‘여성’이라는 공통된 특징이 강조되던 시절이었다”며 “산업화가 막 시작하던 단계에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 남편 일을 돕거나 집안일을 하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여성은 결혼하면 퇴직을 해야 하는 ‘결혼퇴직제’라는 노동 현장의 암묵적 문화도 있었다”며 “외환위기(IMF) 때도 경력이 같은 남녀 중 여자가 짐을 싸야했던 성차별이 당연했다”고 덧붙였다.
천 박사는 “현재의 70대 전후 여성들에 한해서는 과거에 가정에 기여하는 기간으로 인해 빈곤해진다는 시각은 충분히 타당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할 수 없는 고령여성의 빈곤을 방치하면 사회적 비용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제도 밖을 벗어난 고령 여성에 대한 실질적 지원의 필요성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사회 전반적인 결혼·출산·육아 기피 분위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젊은 여성들이 앞선 세대 여성들을 보고 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문제는 2030 여성이 고령 여성의 빈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2030 여성들은 경력 단절과 성별 임금 격차가 결국 노후 빈곤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같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혼이나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2030 여성들이 결혼, 출산 등을 하지 않는 것이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환경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 박사는 “30~40대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기를 낳지 않는 건 앞선 세대의 여성을 보고 충분히 학습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과거에 비해 현재 3040세대의 여권이 신장됐으나 향후 고령 여성의 빈곤까지 해결될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천 박사는 고령 여성의 빈곤이 양극화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현재 70대의 여성들은 과거에 ‘여성’이라는 공통된 정체성 안에서 제한이 컸다”면서 “현재는 육아휴직 등에 대한 접근성도 차이가 있다. 여성 본인이 정규직이고 육아휴직을 편하게 쓸 수 있다면 경력 단절될 확률은 낮다”고 설명했다. 복직 후 승진 누락 등 인사상 불이익은 있어도 제도권 안에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지 않은 여성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날 것”이라며 “현재의 30~40대 여성이 고령자가 됐을 때는 지금까지의 고령 여성의 빈곤 담론과는 다른 문제가 지적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권 내에서 혜택을 누리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간 차이가 매우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연구위원은 “고령여성의 빈곤이 지금보다는 덜할 수 있지만 나아질 것이라 장담을 할 수는 없다”며 “현재도 여성과 남성의 고용률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별 고용 격차가 지속된다면 비슷한 문제는 반복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노인 일자리 한계도 지적했다. 소준철 교수는 “현재 노인 일자리는 숙련이나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노화나 질병 때문에 일할 수 없는 노인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해법이 아니다. 빈곤 노인은 복지를 받기 위해서도 경쟁을 피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노후 소득을 늘리고,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고령 노동 개선과 함께 연금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미 60대가 된 여성들은 과거 소득이 없어 지금 노동시장에 들어가더라도 소득 격차를 따라잡기는 어렵다”며 “여성들이 몰린 돌봄 일자리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당장의 소득을 늘리는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 교수는 “여성의 사회적인 능력과 노후 대비를 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령 여성이 몰리는 일자리인 ‘돌봄’ 노동에 대해서도 “‘돌봄’을 시장화한 여러 노동과 그 노동자에 대한 보호도 마련돼야 한다”며 “또 보호와 함께 여성 개인의 소득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전한 근로환경 조성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소득을 크게 올리지 못하면 건강검진 지원 또는 근로환경 안전 강화 등으로 일하다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산업재해 통계도 성별로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 고령자 산업재해 비중이 높다는 통계가 나오더라도 성별로 나눠보지 않으면, 고령 여성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첨언했다.
천 박사는 “제도 밖에 있는 여성에게도 사회보험 등 적용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재설계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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