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중국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이공계 전공의 인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의과대학과 의사 직업에 대한 선호는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수련 과정의 낮은 보수와 취업 경쟁, 과중한 업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최근 중국에서는 의대에 입학한 우수 학생들 사이에서도 다른 진로를 고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임상의학과 합격선도 전년보다 낮아졌다.
중국 광시좡족자치구의 한 대학에서 임상의학을 전공하는 5학년생 황차오위안은 코로나19 당시 의료진의 활약을 보고 의사를 꿈꿨지만 현재는 컨설팅 업계로 진로를 바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SCMP에 밝혔다.
그는 마지막 학년에 12개월 동안 무급 인턴 과정을 거쳤다며 “비용 절감과 효율성 제고 조치로 젊은 의사와 중견 의사 모두 일자리 부족과 낮은 임금,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명문 의대도 합격선 하락…임상의학 지원 열기 식어
의대 선호도 하락은 대학 입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저장성의 올해 대학 입시 결과를 분석한 현지 보도에 따르면 광둥성 명문대인 중산대 임상의학과의 최저 합격자 석차는 지난해 1695위에서 올해 3049위로 1300계단 이상 내려갔다.
광둥성 남방의과대학 임상의학과 역시 저장성 기준 최저 합격자 석차가 지난해 4100위에서 올해 6188위로 2000계단 이상 낮아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년보다 합격 석차가 1만계단 이상 떨어진 의학계열 학과도 나타났다.
중국 대학은 지역별로 모집인원과 합격선이 달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올해 여러 지역에서 5년제 임상의학 과정의 합격 점수와 석차가 함께 하락하는 흐름이 확인됐다.
반면 AI를 비롯한 이공계 전공은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올해 중국 대학 입시에서 수험생들의 관심도가 높은 전공 상위권에는 컴퓨터공학과 AI, 전자정보공학 등 이공계 전공이 대거 포함됐다.
중국 교육부도 산업 수요에 맞춰 미래로봇, 농업로봇, 생체제조 등 신규 전공을 대학에 추가하고 있으며, 일부 대학에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연계된 ‘체화지능’ 전공 개설도 지원하고 있다.
의사 되려면 긴 수련…석사 학위까지 사실상 경쟁 요건
의대 기피 현상의 배경에는 긴 교육·수련 기간이 꼽힌다.
중국의 일반적인 임상의학 학부 과정은 5년이다. 졸업 후에는 병원에서 3년간 표준화된 전공의 수련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수련 자리를 얻거나 대형 병원에 취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석사 이상 학위를 갖추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학부와 대학원 과정, 전공의 수련 등을 모두 거치면 독립적인 의사로 자리를 잡기까지 10년 안팎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긴 수련 기간에 비해 초기 보수도 낮은 편이다.
중국 의료정보 플랫폼 딩샹위안이 2020년 전공의 수련자 3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7.5%는 월 소득이 1000위안(약 20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이 가운데 8%는 수련 기간 소득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월 3000위안 이상을 받는 비율은 32.3%에 그쳤다.
수련의들은 낮은 보수에도 정규 의료진과 비슷한 임상 업무와 당직을 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처우 문제를 둘러싼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높은 업무강도·취업 경쟁까지…‘안정적 전문직’ 인식 흔들
의사가 된 이후의 근무 환경도 의대 지원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중국 의료현장에서는 야간 당직과 장시간 근무, 높은 업무강도에 대한 부담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형 병원 취업을 둘러싼 경쟁이 심해지면서 과거와 달리 의대 졸업이 안정적인 취업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인식도 확산하고 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과 대도시 의료기관에 취업하려는 지원자가 몰리면서 학력 경쟁도 강해졌다. 일부 병원에서는 석·박사 학위가 사실상 주요 채용 조건으로 자리 잡으면서 의대생들이 체감하는 교육 기간과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AI와 반도체, 로봇 등 첨단 제조업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면서 관련 인재 양성을 확대하고 있다. 취업 전망과 산업 성장성을 중시하는 수험생들이 이공계 전공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도 의대 선호 하락과 맞물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에서는 올해 AI 전공이 대학 입시 인기 전공 상위권에 오르는 등 기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임상의학 역시 여전히 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하는 주요 전공이지만, 일부 지역과 대학에서 나타난 합격선 하락은 과거와 같은 압도적인 선호가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의 전반적인 청년 취업난도 진로 선택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8월 재학생을 제외한 16~24세 청년 실업률은 18.9%로 올랐으며, 올해 대학 졸업자는 역대 최대 수준인 약 1270만명에 달했다. 취업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상황에서 긴 교육기간과 낮은 초기 보수를 감수해야 하는 의대보다 성장 산업과 직접 연결된 전공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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