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락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
최은락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

지난해 미국 정부는 반도체 회사 인텔에 주기로 한 지원금 등을 주식 투자로 바꿔 지분 9.9%를 확보했다. 나라가 회사의 주인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왜 지원금을 그냥 주지 않고 주식으로 바꿨을까.

눈여겨볼 점은 인텔이라는 한 회사가 아니라, 정부가 지원자에 머물지 않고 투자자가 됐다는 사실이다. 최근 각 국은 자국 전략적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반도체나 인공지능 같은 전략산업은 큰돈이 들고 성과가 나기까지 오래 걸린다. 성공하면 소재·장비 기업과 다른 산업도 함께 혜택을 본다. 하지만 투자금과 손실 위험은 기업과 투자자가 부담한다. 그래서 나라에 꼭 필요해도 한 기업의 계산만으로는 선뜻 나서기 어려운 투자가 생긴다. 전략산업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도 함께 보조를 맞춰나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대출이나 보조금과 달리, 정부가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은 투자자가 기업의 성장과 위험을 함께하는 방식이다. 대출은 갚아야 하고, 보조금은 조건을 지키면 원칙적으로 돌려주지 않는다. 주식은 갚을 날이 정해진 빚이 아니어서 긴 투자에 도움이 되고, 기업이 성장하면 투자한 쪽도 수익을 얻는다. 정부가 손실을 대신 메워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투자자와 위험과 수익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전략산업 투자는 공급망과도 이어져 있다. 반도체·자동차·로봇에 쓰이는 희토류 자석은 쓰는 양은 적지만 제때 못 구하면 생산이 멈춘다. 지난해 중국이 일부 희토류 품목의 수출을 제한하자 미국 포드는 SUV 생산을 일주일간 멈췄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금속 영구자석 수입액 중 중국산 비중은 관세청 집계로 90.9%였다. 전략산업을 키우려면 산업 투자와 공급망 확보가 함께 가야 한다.

정부도 대출·보조금으로 투자를 돕고, 핵심광물을 비축해 공급 중단에 대비한다. 공급망안정화기금·정책펀드도 지분투자를 하지만 채권 상환이나 만기 매각 제약이 있다. 한국투자공사는 원칙적으로 해외에만 투자한다. 국내 전략산업에 오래 투자하며 공급망도 챙기는 정부 펀드는 아직 없다.

그래서 정부는 한국투자공사 안에 전략형 국부펀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보유 주식을 밑천으로 국내 전략·기간산업에 장기 투자하는 펀드다. 반도체 소재·장비 기업 주식을 사서 성장을 돕고 공급계약도 챙길 수 있다.

국내 전략산업이 자금을 해외 자본에만 기대면 경영권과 기술이 넘어갈 걱정이 든다. 국내에 참을성 있는 큰손 투자자가 있으면 기업은 안심하고 성장할 것이고, 그 과실도 나라 안에 남는다.

나랏돈으로 기업 주식을 사는 데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하다. 조건은 엄격해야 한다. 가격과 수익성을 철저히 따져야 하고, 경쟁력 없는 기업을 살리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정부안에서 밝힌 대로 정부는 큰 방향만 정하고 개별 투자는 독립된 전문가가 결정하도록 하고, 의결권 행사 기준도 미리 정해 공개해야 한다.

이 원칙이 지켜지면 전략형 국부펀드는 비슷한 펀드를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전략산업에 오래 함께할 주주를 만드는 일이 된다. 경제 안보를 지키며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돕고, 투자가 성공하면 그 수익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최은락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


fact051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