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 메뉴 제육볶음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
김 차장을 처음 만난 곳은 ‘제육향’ 정모 자리였다. ‘제육향’은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DMC 업무지구 일대 직장인들의 연합 동호회로, 구내식당 점심 메뉴에 제육볶음이 나오면 채팅방에 신속히 공유하는 걸 활동 목표로 삼고 있었다. 김 차장은 제육향에서 사무국장 직을 맡고 있었는데 내가 그를 만났을 즈음에는 실질적으로 모임을 이끌어가는 리더나 다름없었다. 회장이 탄핵돼 지도부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탄핵 사유는 조직에 대한 불충이었다. 분명히 점심에 제육볶음이 나왔는데 전체 회원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가 만든 소규모 채팅방에만 따로 알린 게 발각된 거다. 회장 없이도 제육향의 몸집은 계속 커졌다. 회원 수가 150명에 이른 뒤부터는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존재감이 커질수록 파급 효과 역시 커지는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일상의 작은 행복을 위해 공유한 정보에 불과했지만 업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사뭇 달랐다. 특히 구내식당 쪽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제육향 회원들이 쓸고
2026.05.05 08:00
건도와 명도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
“저기요, 혹시 건도하세요?” 돌아보니 언더아머 로고가 들어간 검은 민소매 차림의 근육질 청년이 수줍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대꾸하려 했지만 입에선 말 대신 가쁜 숨만 연달아 터져나왔다. 대답 대신 트레드밀 계기판을 가리켜 보였다. 지금 당신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선 이것의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는 처지라는 걸 피차 알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그는 내 말을 바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나머지 오 분 가량을 채우고 나서야 나는 트레드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정수기로 걸어가 물병에 물을 채워 들이켰다. 그러는 동안 헬스장 구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언더아머 청년이 쭈뼛거리며 다시 다가왔다. “그쪽도 건도세요?” 내가 묻자 그는 망설이다 대답했다. “…아직은 아닌데, 그러고 싶어서요.” 나는 물을 마시며 언더아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좀 과하다 싶게 펌핑된 이두박근, 탄탄한 가슴 근육에 구릿빛 피부. 지금 당장 보디 프로필을 찍으러 가도
2026.04.21 16:01
특공대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
마을 버스가 종점에 멈추자 승객들이 내렸다. 막차라서 그런지 승객은 재현을 포함해서 세 명 뿐이었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재현은 빌라들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며 걷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오늘의 목적지인 월령동 대환 빌라가 바로 코 앞이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자 바로 앞에 대환 빌라가 보였는데 붉은 벽돌과 대리석으로 만든 대한민국에 무수히 많은 다세대 빌라 중 하나였다. 밤늦은 시간이라 골목길에는 인적이 끊긴 상태였다. 재현은 대환 빌라 앞으로 가서 현관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유리문이 스르륵 열리자 현관의 센서등이 켜지면서 계단이 보였다. 재현은 계단을 오르면서 오늘의 목적지를 중얼거렸다. “204호.” 계단을 오르자 복도가 쭉 펼쳐졌다. 앞뒤로 긴 빌라라서 복도 좌우로 어긋나게 현관문들이 있는 형태였다. 204호는 복도 끝이라고 반장이 텔레그램으로 전달했었다. 반장의 본명은 몰랐다. 반장 역시 그를 특공대 14라고 불렀다. 앞에 13명의 다
2026.04.07 20:00
두쫀쿠 이후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
[익명] [작성자] 너희들 요즘 유행하는 신상 디저트들... 무슨 소셜미디어에서 열풍이다 대세다 어쩌고 하는 것들 다 대기업들이 미리 세팅해서 만들어내는 유행이라는 거 아냐? 야밤에 다음번 유행 아이템 보고서 준비하다가 현타 와서 적어본다. 몇 시간 있다가 지울 글이니까 그때까지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 [익명] 이건 또 무슨 컨셉이냐 [익명] 오 그래도 이건 좀 참신한데. [익명] 두쫀쿠 같은 거 얘긴가 [익명] [작성자] 그래. 두쫀쿠 같은 거. 두쫀쿠는 우리 작품 아니고 아마 조작도 아닌 거 같지만... [익명] 그럼 뭐가 조작이냐? [익명] [작성자] 두쫀쿠 이후에 소셜미디어로 뜬 디저트는 거의 조작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 팀 말고도 한두 팀은 더 있지 않을까 싶은데... 대한민국에 유통 대기업이 보통 분야별로 세 개씩은 있으니까. 아, 봄동비빔밥 그것도 디저트는 아니지만 조작이다. 그게 파일럿이었지. [익명] 난 커뮤니티에 이런 얘기 올라올 때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이 있
2026.03.24 17:00
“껄껄껄”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
요란한 휴대전화 모닝콜이 너의 잠을 깨운다. 오전 5시 30분. 10분, 아니 5분이라도 더 눈을 붙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억누르고 침대에서 일어나니 온몸이 뻐근하다. 너는 며칠 전 늘 같은 시간에 타던 광화문 행 광역버스를 놓치고 다음 차를 탔다가 회사에 지각했던 일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친다. 부서질 것 같은 몸을 겨우 일으켜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니 부쩍 늘어난 군살이 눈에 거슬린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체중계 위에 오르니 어제보다 몸무게가 1㎏ 더 늘어나 있다. 간밤에 사용기한이 임박한 배달 앱 쿠폰을 쓴다는 핑계로 주문해 먹은 프라이드 치킨 탓이다. 너는 튀김 냄새가 뒤섞인 트림이 역해 오만상을 쓴다. 아… 그때 먹지 말걸. 너는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이어지는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린다. 횡단보도 건너편 가로수 사이에 내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사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지하철 노선 연장을 자축하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다.
2026.03.11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