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덮으세요” 코딩보다 대화 강조하는 해커톤
참가 경쟁률 ‘10대1’ 해시드 OBA.RUN 현장 가보니
채용·디지털자산·여행 데이터까지…다양한 API 제공
조옥래 SKT PL “결제 기술보다 인증·권한 위임이 숙제”
[헤럴드경제=경예은 기자] “1~2년 뒤에는 사람이 직접 배달 앱에서 주문하는 것만큼 인공지능(AI) 에이전트를 통한 주문도 늘어날 것입니다. AI 에이전트에 문을 열지 않는 기업은 고객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해시드 라운지에서 열린 ‘OBA.RUN 해커톤’ 현장. 이날 기조연설에 나선 김서준 해시드 대표는 AI가 고객을 대신해 상품을 주문하고 결제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는 쇼피파이·스트라이프 등 대기업들이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를 개방하고 표준을 만들고 있다”며 “아시아에서도 이러한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는 해시드와 마켓핏랩이 주최하고 오픈빌더얼라이언스(OBA)가 주관한 두 번째 해커톤이다. 오픈AI가 파운딩 스폰서로, SK텔레콤이 메인 스폰서로 참여했다. 패션기업 F&F와 구이(GGUI)·마루(MAROO)·부이(vooy) 등도 후원사로 이름을 올렸다. 주최 측에 따르면 약 600명이 지원해 기업 실무자와 대학생 등 60명가량이 선발됐다.
참가자들은 SK텔레콤, F&F 등 후원사가 제시한 과제에 도전하거나 자유롭게 주제를 정할 수 있었다. 로켓펀치의 채용정보, 크립토퀀트의 디지털자산 데이터, 마이리얼트립의 여행 관련 정보 등 다양한 후원사의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와 AI 도구도 제공됐다. 특정 기업의 서비스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API를 조합해 원하는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덕에 현장에서는 AI 에이전트끼리 업무를 주고받는 마켓플레이스부터 중장년층의 금융사기 피해 예방 서비스, 세액공제 도우미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용자가 미리 설정한 소비 기준과 카드 사용 한도 안에서 AI가 의류 쇼핑을 대신하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참가자들이 AI를 활용해 개발에 몰두하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착용한 참가자가 직접 결과물을 시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중간중간 작업을 멈추고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LETS(렛츠)’ 세션도 해시드 해커톤만의 차별점이다. 참가자들은 약 30분간 노트북을 덮고 관심 있는 주제의 토론에 참여했다. 트레이딩 에이전트를 직접 운용하며 겪은 시행착오부터 AI 검색 결과에 자사 서비스를 노출하는 방법, 콘텐츠 제작 자동화 등 개발·투자·마케팅을 아우르는 대화가 오갔다.
특히 한 렛츠 세션에서는 최근 온라인 사찰 ‘산사’가 인기를 끈 배경을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한 참가자는 불교박람회·템플스테이 등 전통문화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온라인 서비스 이용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미 오프라인에서 형성된 소비자 수요를 온라인 서비스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또 다른 참가자는 “서비스를 자체 서버에 올렸다면 지금처럼 바이럴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기존 대형 플랫폼의 유통망과 SNS 확산 효과에 주목했다.
해시드가 개발자 간 교류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OBA.RUN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해커톤도 ‘1인 AI 군단’이 참여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며 “뛰어난 사람들이 모였는데 컴퓨터만 하다가 돌아가는 건 너무 아쉬워 렛츠 세션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 또한 “해커톤에서 중요한 것은 혼자 노트북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개발자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라며 “올해 초 카카오 AI 캠퍼스에서 개최한 첫 OBA 해커톤에서는 참가자들이 서로 친구가 돼 함께 창업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해커톤에 참가한 권하진씨(20대)는 “다른 해커톤은 개발 시간이 6시간가량인데,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짧았다”며 “대신 네트워킹 시간이 많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내 카드 AI에 맡겨도 될까”…SKT가 던진 과제=이번 해커톤에서 단연 관심을 모은 과제는 SK텔레콤의 AI 에이전트 결제 서비스 설계였다. 윤현상 SK텔레콤 에이닷기획담당은 “AI 에이전트의 라스트 마일(마지막 단계)은 결제”라며 “신한카드 등 카드사들과 함께 결제 방식 및 표준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현재 신한카드·하나카드 등 금융사와 구성한 컨소시엄을 통해 정부 주도의 ‘모두의 AI’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AI 에이전트 결제 프로토타입도 함께 논의중이다.
윤 담당은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의사를 임의로 판단해 결제한다면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적절한 확인 절차와 권한 범위를 설정하는 사용자 경험(UX)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결제 시스템은 사람이 직접 결제 버튼을 누르고 인증한다는 전제로 설계돼 있다”며 “AI 에이전트가 결제를 대신하려면 일회용 비밀번호(OTP) 등 기존 인증 체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욱래 SK텔레콤 에이닷사업개발 프로젝트리더(PL)는 이날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해외에서는 AI 에이전트 서비스의 볼트(Vault)에 카드 정보를 저장해두면 결제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카드 정보를 미리 등록해도 카드사 앱에서 추가 인증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결제 시스템은 이용자가 직접 인증한다는 전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에이전트에 결제 권한을 어떻게 넘기고 사전 승인을 받을 것인지가 숙제로 남아 있다”고 짚었다.
이용자가 AI에 내린 지시와 실제 구매 시점의 의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숙제다. 조 PL은 “항공권 가격이 150만원 아래로 내려가면 구매하라고 지시했지만, 이용자가 이를 잊고 다른 곳에서 항공권을 샀을 수도 있다”며 “이후 에이전트가 149만원짜리 항공권을 결제했는데 기존 항공권이 환불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금전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기술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합의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AI 결제 사고에 따른 책임 분담도 과제로 꼽았다. 조 PL은 “이상거래탐지처럼 이용자 사칭 에이전트를 탐지하는 것은 금융사의 역할일 수 있다”며 “반면 AI가 이용자의 승인 범위를 벗어나 행동하는 문제는 에이전트 서비스 사업자가 해결해야 할 영역”이라고 봤다.
AI 결제 확산에 따라 기존 결제업계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조 PL은 “카드사와 가맹점 사이에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가 있어 결제 표준을 논의할 때 PG사를 빼놓기 어렵다”며 “AI 에이전트 결제 표준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사업 구조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통화, 일정 관리, T멤버십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확보한 이용자 데이터를 강점으로 보고 있다. 조 PL은 “유용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 기업이 이용자의 모든 정보를 확보할 수는 없다”며 “다양한 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생태계 확장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kyou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