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풍기 설치·철거 마쳤지만 잔금 미지급…분쟁조정 통해 3억원 합의
대기업의 일방적 협업 중단에도 2300만원 합의…하도급법 사각지대 구제
올해 9월까지 분쟁조정 105건 접수…누적 피해구제 308억7000만원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1. 중소기업 A사는 중소기업 B사와 송풍기 설치 및 철거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라 공사를 모두 마쳤지만 B사는 잔금 3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A사는 지난해 11월 미지급 대금과 지연이자를 받기 위해 수·위탁분쟁조정협의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양측은 조정 절차를 거쳐 올해 3월 4일 3억원에 합의했다.
#2. 중소기업 Q사는 대기업 R사로부터 결제 시스템 도입을 위한 용역 서비스를 요청받았다. 이후 R사의 요구에 따라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관련 결과물을 순차적으로 납품했다. 그러나 R사는 정상적인 발주를 이행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협업 종료를 통보했다. Q사는 지난해 11월 25일 분쟁조정을 신청했고, 올해 1월 14일 조정이 성립됐다. 양측이 합의한 금액은 2300만원이다.
두 사건은 모두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이 적용되지 않는 거래였다. 그러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에 따른 수·위탁거래에는 해당해 분쟁조정이 가능했다.
5일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따르면 수·위탁분쟁조정협의회는 하도급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기업 간 거래를 포함해 납품대금 미지급, 부당 감액, 발주 중단 등으로 발생한 분쟁을 조정하고 있다.
수·위탁분쟁조정협의회는 상생협력법 제28조의5에 따라 협력재단에 설치된 기구다. 위탁기업과 수탁기업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당사자 간 합의로 해결하도록 지원한다.
하도급법과 상생협력법은 적용 범위에 차이가 있다. 하도급법은 원사업자의 업종과 위탁 업무의 관계, 기업 규모 등을 기준으로 적용 대상을 제한한다. 반면 상생협력법상 수·위탁거래는 위탁기업의 규모에 제한이 없고 위탁 가능한 업무 범위도 상대적으로 넓다.
예컨대 자동차 제조업체가 엔진 제작을 다른 기업에 맡기는 거래는 두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제조업체가 작업복 제작을 위탁하는 경우에는 하도급법상 제조위탁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상생협력법상 수·위탁거래에는 해당할 수 있다.
하도급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중소기업 간 거래나 원사업자의 업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위탁거래에서도 상생협력법을 통한 분쟁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분쟁조정 신청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협력재단에 따르면 2005년부터 올해 9월까지 수·위탁분쟁조정협의회에 접수된 사건은 모두 1139건이다. 이 가운데 424건에서 조정이 성립됐으며 피해구제 지원 규모는 약 308억7000만원이다.
같은 기간 조정 불성립은 49건, 신청 취하 등을 포함한 기타 종료는 616건, 각하는 19건이었다. 31건은 조정이 진행 중이다.
연도별 접수 건수는 2023년 87건, 2024년 94건, 2025년 93건이었다. 올해는 9월까지 105건이 접수돼 지난해 연간 접수 건수를 이미 넘어섰다.
분쟁 원인으로는 대금 미지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체 1139건 가운데 대금 미지급이 857건으로 75.2%를 차지했다. 이어 발주 기피·중단 104건(9.1%), 대금 감액·인하 62건(5.4%), 수령 거부 18건(1.6%) 순이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407건(35.7%)으로 가장 많았다. 서비스업은 397건(34.9%), 건설업은 335건(29.4%)으로 집계됐다.
분쟁조정협의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실제 사건 조정을 위해 3명 이내의 위원이 참여하는 5개 조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조정부는 사건 내용을 검토한 뒤 당사자 간 합의를 권고하거나 조정안을 제시한다.
조정이 성립되면 당사자들은 조정서를 작성한다.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취지를 조정서에 기재한 경우 민사상 집행력이 인정된다. 분쟁조정 신청에는 소멸시효 중단 효력도 부여된다. 조정사항이 이행되면 중소벤처기업부의 시정권고나 시정명령 등도 면제된다.
협력재단은 분쟁조정 외에도 법률상담과 소송비용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부터 올해 9월까지 법률상담 지원 실적은 1만628건이다. 2021년부터 올해 9월까지는 38건의 소송에 총 1억4273만원을 지원했다.
기업 간 거래분쟁을 전문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조직 개편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 7월 3일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중소기업 분쟁조정원을 설치하는 내용의 상생협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현재 분산된 수·위탁거래 분쟁조정과 기술분쟁조정 등의 기능을 통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분쟁 예방과 법률상담부터 조정, 피해구제까지 연계하고 분쟁조정 기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납품대금 관련 제도도 확대된다. 2023년 10월 시행된 납품대금 연동제는 오는 12월 3일부터 적용 대상에 주요 에너지경비가 추가될 예정이다. 납품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이상인 전기·가스 등 에너지경비가 대상이다.
납품대금 연동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한 기업이라도 계약 이후 재료비와 노무비 등 공급원가가 변동하면 납품대금 조정협의를 신청할 수 있다. 위탁기업이 10일 이내 협의를 개시하지 않거나 30일 이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수·위탁분쟁조정협의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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