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 경색으로 무산된 협력

종주국 위상 흔드는 늑장 대응론

한국 단독 심사는 2030년에야

“단독 및 확장 등재 총력 추진”

2026 아이치·나고야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태권도 남자 -80㎏(K44) 8강 경기에서 한국 주정훈 선수(왼쪽)가 공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2026 아이치·나고야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태권도 남자 -80㎏(K44) 8강 경기에서 한국 주정훈 선수(왼쪽)가 공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헤럴드경제=김명상 기자] 북한이 신청한 태권도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권고 판정을 받으면서 북한의 6번째 무형유산 등재가 유력해졌다. 이에 따라 종주국인 한국은 태권도의 공식 기록의 역사·전승 문화 주도권을 북한에 내주게 됐다.

특히나 한국의 태권도 단독 등재 심사는 빨라야 2030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라 남북 간 등재 시차가 4년 이상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2024년 3월 북한 단독 신청 당시 지난 정부의 미온적 대처를 지적하며, 단독 또는 확장 등재 계획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5일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의 심사 결과, 북한이 신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전국태권도애호가경기- 2026’ 장면 [조선중앙TV 화면]
지난 8월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전국태권도애호가경기- 2026’ 장면 [조선중앙TV 화면]

평가기구의 등재 권고는 최종 결정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등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이 신청한 태권도의 대표목록 최종 등재 여부는 오는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중국 샤먼에서 열리는 제21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북한은 현재 아리랑(2014년), 김치담그기(2015년), 씨름(2018년·남북 공동등재), 평양냉면(2022년), 조선옷차림풍습(2024년) 등 5건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태권도가 최종 등재되면 총 6건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남북 공동등재 무산…‘씨름’ 협력 재현 실패

지난 8월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전국태권도애호가경기- 2026’ 장면 [조선중앙TV 화면]
지난 8월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전국태권도애호가경기- 2026’ 장면 [조선중앙TV 화면]

북한은 2024년 3월 태권도 등재 신청서를 일찌감치 제출했다. 한국은 올해 3월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를 신청하는 동시에 남북 교류와 협력 확대를 위한 ‘공동 등재’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경색된 남북 관계 등 여러 여건으로 인해 추진은 무위로 끝났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지난 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당면한 남북 관계 등 여러 여건으로 인해 현시점에서 공동등재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적었다.

태권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이자 문화 콘텐츠다. 2000년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자리 잡았으며, 세계태권도연맹(WT) 회원국·지역만 215곳에 이르고 전 세계 수련 인구는 약 2억 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세계태권도연맹(WT)을 거점으로 세계 각국에 태권도를 보급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중심으로 별도의 태권도 전승 체계를 발전시켰으며, 올림픽 종목 태권도와 경기 규칙, 수련법, 체계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북한 태권도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더라도 한국 태권도의 종주국 지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앞서 아리랑은 한국(2012년)과 북한(2014년)이 시차를 두고 올랐고, 김장 문화(김치 담그기) 역시 한국이 2013년, 북한이 2015년에 각각 등재했다. 2018년에는 씨름을 남북이 공동 등재한 바 있다.

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 제도는 인류 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함께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국가가 먼저 등재됐다고 해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선점 놓친 종주국…늑장 대응에 비판

‘춘천 2026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기량을 겨루는 선수들  [연합뉴스 제공]
‘춘천 2026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기량을 겨루는 선수들 [연합뉴스 제공]

다만 국제사회에 태권도의 역사와 전승 문화를 설명할 때 북한의 등재 자료가 한국보다 먼저 유네스코 공식 목록에 오른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유네스코 공식 기록에 북한 중심의 전승 체계와 용어, 역사 서술이 먼저 오르면서, 한국은 향후 글로벌 무대에서 전개될 태권도 문화의 대표성과 정통성 홍보전에서 불리해졌다. 올림픽 종목화를 이끈 태권도 종주국임에도 문화유산 외교의 실기로 선점 효과를 놓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유산청은 북한의 단독 신청 사실이 알려진 2024년 8월만 해도 정부 차원에서 남북 공동 등재를 추진한 바 없다는 입장을 냈다. 이후 관련 민간 단체와 협의를 거쳐 올해 1월 공동 등재 추진을 결정하고 3월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 불확실한 ‘공동 등재’ 카드에 매달리다 독자적인 등재 로드맵 마련이 늦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지·인삼 이후 2030년 태권도 심사 가능

‘춘천 2026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기량을 겨루는 선수들  [연합뉴스 제공]
‘춘천 2026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기량을 겨루는 선수들 [연합뉴스 제공]

공동등재가 중요했던 이유는 유네스코의 심사 제도 때문이다. 무형유산위원회는 특정 국가의 독점을 막고 등재 종목이 적은 국가를 배려하기 위해, 이미 많은 종목을 등재한 국가(다등재국)의 심사를 2년에 1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한국이 제출한 종목은 짝수 해에만 심사하기에 정부는 2026년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 2028년 ‘인삼문화: 지식, 기술 그리고 사회문화적 실천’ 등을 이미 제출했다.

하지만 두 나라 이상이 함께 신청하는 공동등재는 다국가 신청으로 분류돼 우선 심사 대상이 된다. 정부가 남북 공동등재에 공을 들인 것도 이 예외를 활용하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경로가 막히면서, 한국은 일반 쿼터 규정에 따라 단독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미 2028년 순번까지 차 있는 상황이라 한국 태권도는 2030년은 돼야 단독 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전 세계가 참고하는 유네스코 공식 목록에 북한 태권도의 역사·전승 기록이 수년 앞서 먼저 오르는 만큼, 문화적 상징 자산의 주도권을 선점당했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의 늑장 대응을 둘러싼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 “독점권 없어…단독·확장 등재 끝까지 추진”

아주대학교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태권도 동아리 부스에서 격파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아주대학교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태권도 동아리 부스에서 격파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와 관련 국가유산청은 북한이 2024년 3월 유네스코에 태권도 단독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을 당시 지난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지적하면서도, 새 정부 출범 이후 위상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북한이 지난 2024년 3월 유네스코에 태권도 단독 등재 신청서를 제출할 당시 정부가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이나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면서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가유산청은 사안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우리 태권도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밝혔다.

유산청은 이어 “지난해부터 국내 주요 태권도 5개 단체를 한데 모아 긴밀히 협의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올해 3월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면서 “정부가 북한의 등재 추진을 뒤늦게 파악했다거나 심사 발표일도 모른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유산청은 “북한의 이번 유네스코 심사 결과와 관계없이, 국기 태권도가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단독 등재되거나 확장 등재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terr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