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4억4600만달러 선거자금 투입
아메리카팩 지원 44곳 중 승리 단 3곳
텍사스 민주당 승리에 AI 사업 차질 우려
민주당, 정부 계약·DOGE 청문회 추진 전망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하면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이번 선거의 최대 패배자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머스크는 공화당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약 6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자신이 집중적으로 지원한 텍사스주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등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머스크의 정부 계약과 사업 활동을 둘러싼 청문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4일(현지시간) 폴리티코와 CNBC 방송 등에 따르면 머스크는 이번 중간선거에 총 4억4600만달러(약 5978억원)를 지출했다. 선거에 직접 출마하지 않은 개인이 개별 선거에 투입한 자금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다.
하지만 거액의 정치자금 지원에도 공화당 후보들은 주요 격전지에서 잇따라 패배했다. 머스크가 직접 설립한 슈퍼팩(정치자금 모금 단체) ‘아메리카팩’이 8700만달러를 지출한 44개 연방 선거구 가운데 승리가 확정된 곳은 단 3곳에 그쳤다.
29개 선거구에서는 패배가 확정됐으며 나머지 12곳은 개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머스크가 지원한 후보들의 성적표가 예상보다 저조하게 나타난 셈이다.
특히 머스크가 가장 공을 들였던 텍사스주에서의 패배가 뼈아프다는 평가다. 머스크는 전체 선거자금의 절반에 가까운 2억달러를 텍사스 상원의원 선거에 투입했다.
텍사스는 스페이스X 본사가 위치한 지역이자 1988년 이후 민주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이 당선되지 않았던 공화당의 오랜 텃밭이다. 머스크가 이끄는 주요 기업들의 사업 기반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선거의 중요성이 컸다.
그러나 민주당의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가 공화당의 켄 팩스턴 후보를 꺾고 당선을 확정 지으면서 머스크의 대규모 정치자금 지원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머스크가 적극 지지했던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도 민주당의 지나 히노호사 후보에게 패배했다. 텍사스의 상원 의석과 주지사직을 모두 민주당에 내주게 된 것이다.
머스크는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이번에는 내 선거 개입용 우주 레이저가 작동하지 않은 모양”이라는 글을 올리며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선거 결과는 머스크의 정치적 영향력뿐 아니라 기업 경영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핵심 사업 거점인 텍사스에서 민주당이 주정부를 이끌게 되면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을 비롯한 주요 사업에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추진하는 AI 사업은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 확보가 필수적인 만큼 주정부의 환경 인허가와 세제 혜택 등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는다. 그동안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유지해 온 텍사스의 정치 지형 변화가 사업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히노호사 주지사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텍사스를 운영하는 데 있어 매우 안락하게 지내던 권력자들로부터 힘을 되찾아 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에 대한 주정부의 정책 기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탈라리코 당선인 역시 승리 연설에서 정치권에 대한 거대 자본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어떤 억만장자나 조만장자도 선거를 돈으로 살 수 없도록 정계에서 ‘빅 머니’(거대 자본)를 없애야 한다”며 “상위 1%에만 이득이 된 조작된 경제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라리코 당선인이 머스크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조만장자로 불리는 머스크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헤지펀드 연계 매체 헌터브룩 미디어는 “전국적으로 데이터센터에 대한 반감이 심했지만 텍사스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센터를 지을 수 있는 ‘AI 오아시스’가 될 예정이었다”며 “그런데 이번 선거가 이를 바꿔놨다”고 분석했다.
머스크는 선거 전날 밤 엑스에 “우주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이 현재로선 꽤 괜찮아 보인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하면서 머스크를 겨냥한 의회 차원의 조사 가능성도 커졌다.
상원 영구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리처드 블루먼솔 의원은 앞서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머스크와 정부효율부(DOGE)의 활동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이 머스크에 대한 의회 감독 필요성을 제기해 온 만큼 향후 청문회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의 인터넷 접속 제한 문제와 연방정부의 수십억달러 규모 계약, 청정에너지 보조금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머스크가 이끄는 기업들의 주가도 선거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개장 전 거래에서 스페이스X 주가는 3.6%, 테슬라 주가는 3.5% 하락했다.
막대한 정치자금을 투입하고도 주요 격전지에서 패배한 데 이어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사업 전반에 대한 감독 강화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머스크의 정치적·경영적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