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 “작은 시계 안에도 우주가”

다시 차린 ‘테이블’, 낮과 밤을 품다

‘낮과 밤은 우리에게’ 김민하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제공]
‘낮과 밤은 우리에게’ 김민하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작은 시계 안에도 우주가 있다고 하잖아요. 저희 영화는 인생의 한 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영화예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한 계절, 골목 카페 테이블 위에 흩어진 네 번의 대화가 김종관 감독의 ‘시그니처’가 됐다. 2017년 ‘더 테이블’로 한 카페의 하루를 담았던 김종관 감독이 9년 만에 같은 형식의 영화를 한 번 더 내놓는다. 이번엔 낮과 밤, 그리고 한 계절을 품었다.

김종관 감독은 2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낮과 밤은 서로에게’ 간담회에서 “작고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영화도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이 작업에 의미를 두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테이블’은 7일 만에 찍은 간단한 영화였다”며 “이런 작업을 저의 시그니처 프로젝트로 이어 가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11회차 만에 촬영을 마쳤고, 구상부터 개봉까지 4~5년이 걸렸다.

오는 4일 개봉하는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한 카페에 머물다 간 네 쌍의 남녀가 주인공. 같은 카페에 낮과 밤, 서로 다른 시간에 머문 유진(김민하 분)과 현오(주종혁 분), 중학교 시절 잠시 알고 지낸 상미(한선화 분)와 영민(장률 분), 웹소설 작가 혜진(심은경 분)과 영화감독 동남(이희준 분), 이별을 앞둔 오랜 연인 나경(전소영 분)과 종수(김동휘 분)의 이야기가 차례로 흐른다. 영어 제목 역시 ‘더 테이블 : 데이 앤드 나이트(The Table: Day and Night)’다.

심은경이 연기한 혜진은 인기 웹소설 작가다. 거침없고 솔직핟. 독립영화감독 동남(이희준 분)과 처음 마주 앉은 자리의 대화에선 불신과 호기심 사이를 오간다. 심은경은 “처음 대본을 읽고 ‘이 역할이 왜 나에게 왔을까’ 싶었다”며 “그만큼 도전적인 작품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만큼 자신의 성향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낮과 밤은 우리에게’ 심은경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제공]
‘낮과 밤은 우리에게’ 심은경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제공]

연기에서의 어려움도 마주했다. ‘여백의 미학’ 때문이었다. 영화는 인물이 살아온 시간을 화면 가득 충분히 펼쳐내지 않는다. 배우는 대사와 상상력만으로 그 시간을 꼼꼼히 채워야 했다. 심은경은 “해 보지 않은 톤 앤드 매너의 캐릭터였고, 감독님의 여백을 연기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배우의 고민에 실마리가 돼준 것은 김 감독의 차분함이었다. 심은경은 “감독님 현장에는 신기한 기운이 있다. (감독님의) 차분함이 배우들을 편안하게 해준다”며 “첫 촬영 전에는 긴장했는데,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해 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감독이 건넨 한마디 응원 덕에 애드리브와 아이디어도 “샘솟았다”고 했다.

에피소드 형식의 영화엔 심은경 이희준을 비롯해 김민하 주종혁 산선화 장률 전소영 김동휘 등의 배우들이 각자의 빛깔을 만들어낸다.

김 감독은 캐스팅의 영순위 조건을 “즐겁게 작업하는 배우”로 꼽으며 “집중하고 열정적인 연기로 배우들이 즐겁게 참여해줬다”고 귀띔했다.

첫 에피소드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김민하는 간밤에 묘한 꿈을 꾼 여자 유진을 연기한다. 시계 장인을 꿈꾸는 현오가 낮의 카페를, 유진이 밤의 카페를 채운다. 김민하는 “김종관 감독님의 오랜 팬이라 대본을 받은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며 “누군가의 일기장을 읽는 것 같았다”고 첫인상을 전했다. 여러 겹으로 흩어진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는 설명이다.

유진의 분량은 이틀 만에 촬영을 마쳤다. 김민하는 “이틀을 찍었는데, 꿈을 꾸는 것 같았다”고 돌아보며 “영화엔 내향인들이 내는 특유의 고집스러운 음향이 있다. 소곤소곤, 속닥속닥하는 그 힘이 크다고 믿는다. 그래서 저희 영화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했다.

영화는 정식 개막에 앞서 지난달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관객을 만났다. 김민하는 개막적 선정에 대해 “꿈같고 영화 같았다”며 “다양성을 지닌 작품이 더 많이 나온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라고 했다. 심은경도 “언제 내 인생에서 이렇게 큰 자리에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까 싶었다”며 “저희 영화를 보고 나의 삶은 어떤 이야기일지 돌아보딜 바란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감상들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