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이 70여년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지탱하며 대한민국 번영과 민주화를 뒷받침한 핵심 축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주한미군의 억제력과 연합방위체제는 여전히 우리 안보의 든든한 보루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일방적 시한 대신 ‘조건에 기초해 추진한다’는 기본 합의 역시 체계적으로 검증하자는 취지에서 합리성을 갖는다.
그러나 최근 기류는 우려를 자아낸다. 주한미군사령관이 북핵 고도화와 변화된 환경을 이유로 기존 평가 기준의 재검토를 시사하면서 ‘움직이는 골대’ 논란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이미 충족 판정을 내렸던 항목까지 번복되거나 평가 목록이 늘어나는 등 잣대를 자의적으로 늘리고 새로운 문턱을 덧붙이는 빌미로 쓰이고 있다.
야전 지휘관 개인의 돌출 발언이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인지 선을 그어야 한다. 양국 정상이 축적해 온 국가적 합의가 일선 군인의 말 한마디에 흔들린다면 동맹의 신뢰성에 상처를 남길 뿐이다. 더 경계할 대목은 국내 일부 세력의 ‘안보 불안 마케팅’과 결합하는 현실이다. 곧 안보 공백이 닥칠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고 국군의 역량을 불신하며 미 군부의 강경 기조만 되뇌는 행태는 군사주권에 대한 패배주의적 불신이자 국가의 협상력을 허무는 자해적 행위다.
논란의 이면에는 미국의 거대한 인도·태평양 패권 전략이 도사리고 있다. 대중국 견제에 집중하는 미국에 한반도는 대북 방어선을 넘어 역내 전략 거점 성격을 띤다. 한국군 대장이 지휘봉을 쥐는 미래연합사가 출범하면 주한미군 운용이 ‘한반도 방위’라는 본래 목적에 구속되는데, 미국은 이를 꺼리는 것이다. 무한정 팽창하는 기술적 요구가 지닌 군사적 합리성도 냉철히 따져야 한다. 한국군은 이미 천문학적 규모의 미국산 첨단자산을 도입해 충분한 연합작전 상호운용성을 입증해 왔다. 그럼에도 AI 기반 시스템(메이븐 등) 연동 등을 이유로 새로운 플랫폼과 추가 전력 소요를 요구하는 것은 미 방위산업의 상업적 이해와 맞물린 ‘끝없는 구매 청구서’가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전작권 전환을 무한정의 실무 줄다리기와 고무줄 기준의 덫에 방치할 수는 없다. 국방 당국은 양국 통수권자의 합의를 바탕으로 ‘2028년내 전작권 전환 완료’를 단호하게 확정·공표하는 결단을 끌어내야 한다. 이는 ‘조건에 기초한 전환’ 파기가 아니다. 이미 1·2단계 검증을 통해 우리 군의 핵심 주도 역량은 실증되었다. 급변하는 전장 환경에 따른 최신 기술 소요는 ‘전환의 선결 문턱’이 아니라 ‘전환 후 미래연합사 체제하에서 한미가 공동 심화할 전력 과제’로 재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외교·군사 협상의 가변성을 고려한 치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단일 연도 확정이 난항을 겪을 경우에 대비해 최소한 ‘2028~2029년 목표 범위’를 명시하고 신규 기술 소요를 선결 조건에서 명문화해 분리하는 로드맵을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확보해야 한다. 연합방위의 진정한 위력은 대한민국이 스스로 영토와 주권을 지켜내는 자립적 토대 위에서 피어난다. 전작권 전환은 동맹의 약화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온전히 나누는 성숙한 파트너십 도약이다. 동맹의 그늘에 기대 무기한 유예할 일이 아니라 헌법이 부여한 통수권자의 결단과 동맹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당당히 매듭지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서남열 국방안보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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