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속에 묻던 이산화탄소, 항공유·플라스틱 원료로 재탄생

- 화학연, 세계 최대 건식개질 플랜트 구축 기술 경쟁력 확보

- 1000억 투입 차세대 CCU 개발, 수소 가격·대규모 실증 관건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CCU 촉매를 만드는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CCU 촉매를 만드는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해 항공유와 플라스틱 원료로 바꾸는 기술이 상용화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땅속에 묻어 처리해야 할 골칫덩이로 여겨졌던 이산화탄소가 석유를 대체할 새로운 미래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2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포집·활용(CCU) 기술은 글로벌 탄소중립을 실현할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CCU는 발전소와 산업시설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지하에 저장하거나 유용한 자원으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이 가운데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CCS와 달리, CCU는 연료와 화학제품, 건축자재 등으로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CCS는 이산화탄소의 대기 배출을 막을 수 있지만 높은 초기 투자비와 저장 공간 확보, 장기적인 저장 안전성 등의 문제가 뒤따른다. 반면 CCU는 이산화탄소를 산업 원료로 재활용해 화석자원 사용까지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CCU 역시 전환 과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와 최종 제품의 탄소 배출까지 고려해야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판단할 수 있다.

CCU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은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라며 “배출원에서 직접적으로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배출되는 탄소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적 보루로서 탄소 중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탄소포집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CCU 기술 전반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약 80%에 도달했다”며 “현재 준비 중인 실증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본격적인 상용화는 2030년께 실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대구에 구축한 실증 시설에서 생산한 지속가능 항공유를 용기에 담고 있다.[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대구에 구축한 실증 시설에서 생산한 지속가능 항공유를 용기에 담고 있다.[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이산화탄소로 항공유 만든다=최근 글로벌 CCU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항공유다.

유럽연합(EU)은 지속가능항공유(SAF) 사용 비중을 2030년 6%, 2050년 70%까지 확대하도록 의무화했다. 특히 이산화탄소와 청정수소를 결합해 생산하는 합성항공유(e-SAF)의 최소 사용 비중도 2030년 1.2%에서 2050년 35%로 높인다.

석유를 수입하지 않고도 산업시설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항공유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 안보 측면의 가치도 크다.

박지훈 한국화학연구원 화학공정연구본부장은 “글로벌 CCU 기술의 흐름은 연료, 특히 항공유로 모이고 있다”며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국내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연료와 원료로서 이산화탄소 활용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지난 1월 인투코어테크놀로지와 공동으로 매립지 가스를 활용해 하루 100㎏의 지속가능항공유를 생산하는 통합공정 실증에 성공했다. 음식물쓰레기와 가축분뇨 등 유기성 폐자원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항공유로 바꾼 국내 첫 실증 사례다.

핵심은 설비의 소형화다. 연구팀은 반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빠르게 제거하는 ‘마이크로채널 반응기’를 개발했다. 촉매층과 냉매층을 교대로 배치해 과도한 발열을 억제하고, 설비 부피를 기존 대비 최대 10분의 1로 줄였다.

대구 달성군 매립장에 구축한 약 30평 규모의 시설에서 하루 100㎏의 항공유 생산과 75% 이상의 액체연료 선택도를 달성했다.

다만 이 기술은 매립지에서 발생한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포함된 혼합가스를 활용한다.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청정수소로 만드는 e-SAF와는 생산 경로가 다르다.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CCU 기술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CCU 기술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재생전기로 CO₂ 전환…1000억 투입 차세대 기술 선점=차세대 CCU의 승부처는 ‘전기화’다.

기존 화학공정은 높은 온도와 압력을 만들기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전기화 CCU(e-CCU)는 재생에너지 전기를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화학물질로 전환하거나, 전기로 생산한 청정수소를 이산화탄소와 반응시켜 연료를 만든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액체연료나 화학제품 형태로 저장하는 셈이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면서 석유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박 본부장은 “화석연료 투입 없이 재생전기로 이산화탄소를 연료와 원료로 바꾸는 것은 결국 전기를 분자 속에 저장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화학연구원이 총괄하는 ‘글로벌 TOP 이산화탄소 자원화 전략연구단’은 2025년부터 5년간 약 1000억원을 투입해 전기화 기반 차세대 CCU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 목표는 이산화탄소 포집부터 전기 기반 화학전환, 액체연료 합성까지 하나로 연결하는 모듈형 통합공정 개발이다. 기존 공정 대비 에너지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각각 50% 이상 줄이고, 연간 35톤 규모의 합성항공유 생산 실증을 추진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항공유의 10%, 페트(PET) 원료의 20%를 탄소중립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실증 인프라도 확충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전남 여수에 CCU 실증지원센터를 준공한 데 이어 2027년에는 대전에 전기화 공정 테스트베드를 구축할 예정이다.

▶경제성은 숙제, 실증 확대 관건=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성이다.

이산화탄소를 화학제품으로 전환하는 공정에서는 청정수소가 제조원가의 70%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 결국 재생에너지 전력과 청정수소를 얼마나 저렴하게 확보하느냐가 사업성을 좌우한다.

울산에 설치된 CCU 실증플랜트.[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울산에 설치된 CCU 실증플랜트.[한국화학연구원 제공]

대규모 실증도 시급하다. 실험실에서 높은 전환 효율을 확보하더라도 산업 현장에서 수년간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부는 올해 CCU 분야 연구개발 투자를 지난해 296억원에서 640억원으로 116% 확대했다. 2025년 2월 CCUS법 시행으로 기술개발과 산업화 지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탄소 가격 상승도 시장 확대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국내 배출권 가격은 지난 20일 기준 톤당 3만100원으로 1년 전보다 약 3배 상승했다. 유럽의 배출권 가격 역시 톤당 88유로 수준으로 올라 기업들의 탄소 감축 부담이 커지고 있다.

다만 CCU로 생산한 제품이 실제 얼마나 탄소를 줄였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인증체계와 감축 실적 인정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본부장은 “지난 50년간 연구개발에서 얻은 교훈은 가장 어려운 단계가 실험실 기술을 상업 규모로 확대하는 스케일업이라는 것”이라며 “원천기술에서 멈추던 성과를 실증과 인증을 통해 산업 현장까지 끌고 가겠다”고 말했다.


nbgk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