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김지영·남성진부터 송승헌까지
이낙연 “소주 제일 맛있게 드시던 분”
정의선·박찬호 등 정재계 각계각층 조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나와 제일 친한 친구였다.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먼저…. 내가 조금 더 살아 미안하다.”
오랜 친구를 떠나 보내는 배우 오지명은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연극 무대에서 만나 최초의 탤런트 특채”이자 “낙하산으로 KBS에” 입성했다는 두 친구는 아주 오랜 시간 서로가 걸아간 길을 지켜봤다.
오지명은 3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최불암(본명 최영한)의 빈소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지난 29일 별세한 ‘국민 아버지’ 최불암을 추모하기 위한 발걸음은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동료 배우와 방송계 원로부터 정치·경제·스포츠계 인사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영정 앞에 섰다.
양촌리의 다음 세대부터 드라마 속 아들까지
이날 빈소에는 MBC ‘전원일기’(1980~2002)에서 함께한 후배 배우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복길이 역의 김지영과 영남이 역의 남성진 부부는 고인을 아버지이자 스승으로 기억했다. 극 중 연인으로 출연한 두 사람은 실제 부부가 된 인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지영은 “저희한테 정말 너무 소중하고 귀한 분이셨는데 이제 다시 뵐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며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남성진은 “너무나 큰 산 같은 분이셨다”며 “배우의 삶 이외에도 저희한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스승 같은 분”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누구에게나 본보기가 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살갑게 챙겨주셨던 큰 어른으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MBC 탤런트 시절 ‘전원일기’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송일국도 빈소를 찾았다. 고인이 오랜 기간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홍보대사인 그는 최불암의 나눔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송일국은 “40년 넘는 세월 동안 어려운 아이들 곁을 지키신 선생님은 배우의 품격이 삶을 통해 완성된다고 하셨는데, 당신의 실천을 통해 보여주셨다”며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과 나눔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1997~1998)에서 최불암의 아들로 출연했던 송승헌도 조문했다. 첫 정극 연기나 다름없던 시절 고인을 만난 그는 “부족했던 제게 하늘 같은 분이셨다”며 “정말 아빠처럼 대하라고 하셨다”고 기억했다. 이어 “따뜻하고 편하게 대해주신 기억이 남아 있다”며 고인이 남긴 작품과 웃음이 국민과 자신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드라마 ‘고개 숙인 남자’(1991)와 ‘영웅시대’(2004~2005)에서 최불암과 부자 관계로 호흡을 맞춘 정한용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로 참 어울린다고 해서 평소에도 가깝게 지냈다”며 “눈에 선한데 아직도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65년 전 연극 무대에서 시작된 인연
65년간 쌓아온 긴 인연들도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연극 무대에서 함께 배우의 꿈을 키운 오지명은 물론, 배우 이정섭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에서 처음 고인의 연기를 봤다는 그는 “연기자의 대명사이자 표상 같은 분인데 아쉽다.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상당히 섭섭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영화 ‘어제 내린 비’(1974)와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함께한 이장호 감독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최불암의 어머니가 명동에서 운영했던 주점 ‘은성’을 자주 찾았던 인연을 떠올린 이 감독은 “백수를 누리실 줄 알았는데 결국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며 “최선을 다하고 가셨기 때문에 국민들 마음속에 잊지 못할 연기자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수 김흥국은 고인의 웃음과 따뜻한 모습을 기억했다. 그는 “분장실이나 다른 행사장에서 뵐 때마다 인자하신 모습이었다”며 “대한민국 연예계 큰 별들이 이렇게 하나하나 다 떠나면 누가 방송을 지킬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밖에도 배우 정준호·김미숙·김창숙·정영숙·김동현·이동준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소주 제일 맛있게 드시던 분”…소탈했던 최불암
정치권과 재계, 스포츠계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장례위원회 위원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고인을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 모두에서 넉넉하고 푸근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함께 술잔을 나누던 추억을 떠올리며 최불암을 “소주를 제일 맛있게 드시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이 전 총리는 “고인이 평소 외출할 때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곤 했다. 국민에게 위화감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 “좋은 옷을 입고 반짝반짝 빛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사셨다”며 “영정사진에도 푸근한 웃음을 주는 그 얼굴로 계셔서 돌아가신 뒤까지도 ‘최불암은 최불암’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중앙중학교 동창이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고인을 온화하고 애정이 깊은 친구로 기억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를 시작할 때 고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던 인연을,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활동을 통해 맺은 인연을 들려줬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표는 고인을 ‘수사반장’이자 양촌리의 회장님, ‘한국인의 밥상’을 지켜온 국민 아버지로 기억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정대철 헌정회장, 홍문종 전 의원, 전 야구선수 박찬호 등도 빈소를 찾았다.
김혜수는 첫날 자정까지…임형주, 장례미사서 ‘아베 마리아’
국민 아버지의 빈소가 차려진 이후, 동료 선후배는 물론 정재계 인사들이 고인을 찾았다.
팝페라 테너 임형주는 31일 이틀째 빈소를 찾아 가족으로서의 기억을 전했다. 그는 최불암을 이모부라 부르며 “개인적으로 내겐 너무 귀한 분”이라고 말했다.
김혜수와 방송인 안현모는 전날인 30일 밤 12시까지 빈소에 머물렀다. 김혜수는 KBS 드라마 ‘사모곡’(1987)에서 김민자와 모녀로 출연한 뒤 두 사람을 부모처럼 여겨온 인연이 있다.
임형주는 오는 11월 2일 여의도성당에서 열리는 장례미사에서 추모곡 ‘아베 마리아’를 부른다.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하는 미사에서 유족과 김민자의 부탁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게 됐다. 그는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한다”며 생전에 최불암이 다시 만날 것처럼 웃으며 인사해 달라고 했던 말을 기억했다.
최불암은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해 67년간 무대와 방송, 영화를 오가며 활동했다. MBC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과 ‘전원일기’의 김 회장으로 대중의 기억에 남았고, 2011년부터 14년간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며 전국의 사람과 음식을 만났다.
발인은 2일 오전 7시 40분,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하는 장례미사가 열린다.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운구는 오전 10시 40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거쳐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으로 향한다.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