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5.18 이어 이번엔 의료파업 손대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폭도들은 진압되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저항하면 적극 사살한다.”

피 묻은 시신 사이로 군화가 걸음을 옮긴다. 뒤이어 등장하는 각진 고급 승용차. 정다운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서는 ‘서울 30가 7169’ 승용차. 기다리던 아내와 남매가 마당까지 달려 나와 남편이자 아빠를 맞는다. 남자가 벗어 둔 군화 아래로 붉은 피가 흥건히 고이고, 그가 지나온 자리마다 핏빛 발자국이 찍힌다.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 사내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1980년 5월의 그 얼굴 위로 2026년 구서대학병원 VIP 병동의 환자명이 포개진다. 지두석이다.

지난 30일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 7회 첫 장면. 지두석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전직 대통령이다. 앞서 24일 6회에서 시작된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오상범(하성광 분)의 이야기는 7회에서 막을 내렸다. 두 회에 걸쳐 광주의 기억을 되짚은 드라마는 이제 또 하나의 현실적 뇌관을 꺼내 든다. 의대 정원 확대와 전공의 파업이다.

숨 고른 시청률, 가라앉지 않은 논쟁

31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7회 시청률은 전국 가구 기준 16.5%, 분당 최고 17.5%를 기록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6회(19.5%)보다 3.0%포인트 하락했다. 그럼에도 동시간대는 물론 한 주간 방송된 전 채널 프로그램 가운데 1위를 지켰다.

드라마는 지난 한 주 내내 적잖은 논란에 휘말였다. 6회분에서 5.18을 다룬 것이 문제가 됐다. 방송 이후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SBS 닥터X 드라마 방영중단에 관한 청원’이 올라와 하루 만에 공개 전 동의 요건인 100명을 채웠다. 청원인은 일본 원작에 없는 5·18 소재가 추가됐다며 제작진의 국회 증인 채택과 방송심의기관의 검토를 요구했다. 27일엔 제작진이 국립5·18민주묘지 정문 앞에 설치한 촬영용 버스정류장 표지가 도로법을 위반했는지 확인해 달라는 민원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관할 북구청에 접수됐다.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반론도 이어졌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26일 페이스북에 방영 중단 요구를 “편협한 정략적 태도”라고 비판하며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주요 소재로 다룬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배우 한정수도 같은 날 SNS에 방영 중단 요구에 반대하는 글을 올렸다. SBS는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제작사 스튜디오S의 이옥규 책임프로듀서(CP)가 6회 방송 당일 드라마 포스터와 함께 SNS에 남긴 “노 피어(no fear)(두려움은 없다)”라는 문구가 제작진의 입장으로 해석될 만한 유일한 메시지였다.

논란 속에 방영된 ‘닥터 X’의 5.18 스토리는 전회차보단 시청률이 소폭 빠졌으나, 논란의 여파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금·토 연속 편성인 ‘닥터X’는 그간 토요일 방송분이 금요일보다 2.0~3.5%포인트가량 높았다. 같은 금요일 방송인 5회(17.5%)와 비교하면 하락폭은 1.0%포인트다. 다만 1회 11.4%, 3회 15.1%, 5회 17.5%로 이어지던 금요일 시청률의 상승세가 처음 꺾였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광주에 머문 카메라

이날 드라마에선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의 마음을 여는 과정에 집중했다. 계수정(김지원 분)은 오상범이 삶을 끝내기 위해 위험한 수술을 택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는다. 동료 의료진과 함께 46년 전 새벽, 헬기 사격이 쏟아지던 광주의 순간을 연극으로 재연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어린 오상범을 감싼 것은 형만이 아니었다. 식당 주인과 삼촌, 형의 야학 동기까지 한 소년을 살리기 위해 어른들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오상범이 평생 되뇌던 ‘무겁다’는 말의 실체를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이 에피소드를 만든 것은 수술대 장면에 개연성을 더하기 위해서였다. 광주에서의 비극으로 46년 동안 머릿속에 총알이 박힌 것으로 알았지만, 사실 그의 머릿속에 박혔던 것은 형의 뼛조각이었다. 동생의 몸을 덮은 채 대신 총에 맞은 형의 뼈가 그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던 것이다. 계수정은 총알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수술 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고 판단해 함구한 채 수술대에 환자를 올렸다. “수술을 허락해 준 건 그게 총알이라는 전제였다”는 병원장 부승권(손현주 분)의 추궁에 계수정은 “총알이라고 말한 적 없다”고 맞서며 이번에도 자기 신념을 다른다. 검체 용기를 받아 든 오상범은 “성아, 이제 집에 가자”며 오열한다. 하성광의 절제된 연기는 두 회에 걸친 서사의 무게를 지탱했다.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그간 ‘닥터 X’는 의학 드라마로서 페이 닥터 계지원의 맹활약에 집중했지만, 이 회차에선 상대적으로 광주 에피소드와 환자의 사연에 상당 부분 할애했다. 그간 ‘닥터X’에서 환자의 사연은 계수정의 의사로서의 신념과 병원 내 권력에 맞서는 명분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이번엔 환자의 질병과 수술은 역사적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기 위한 서사의 통로가 됐다.

이제부턴 의료 파업 정조준

5.18을 떠나보낸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의료 파업에 메스를 갖다 댄다. 7회 말엔 정부가 의료계의 반발에도 의대 정원 확대를 결정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어 공개된 8회 예고편에서는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파업에 들어가며 병원이 혼란에 빠진다. 수술을 거부하는 이들을 향해 계수정은 “의사면 수술에 붙으라고”라고 일갈한다. 2024년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병원을 떠났던 현실의 의정 갈등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드라마와 의료계의 마찰은 이미 시작됐다. 방영 초반 계수정은 동료 의사들을 향해 “돈 잘 벌고 출세하려고 공부만 한 인간들”이라고 쏘아붙였고, “야 너희 진짜 후져”라는 대사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통쾌한 장면으로 회자됐다. 반면 일선 의사들 사이에서는 의료진을 악마화하고 희화화한다는 반발이 나왔다. 스스로를 정형외과 의사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다며 “회진을 불필요한 잡무처럼 묘사하고, 의료진을 무능한 악역으로 단순화한다”고 지적했다.

의학적 고증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응급의학과 현장 자문을 맡은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지난 10일 SNS에 의학적으로 틀린 대목이 있다면 자문진과 제작진 사이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자문진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봐 달라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제작진은 방송 화면에 ‘본 드라마는 픽션이며 극적인 전개를 위해 실제 의료 현장 및 관련 규정과 다르게 각색되거나 연출된 장면이 포함돼 있다’는 고지를 띄우고 있다.

이미 의사 집단을 향한 날 선 묘사로 논쟁을 빚은 작품인 만큼, 실제 의료 파업을 어떤 시선으로 그려낼지는 또 다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앞서 심의를 신청했다고 밝힌 해당 의사는 “실제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문제 제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문가로서 잘못된 인식이 굳어지는 걸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