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일본 유니클로가 양말 가격을 최대 58% 가까이 올리려다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에 계획을 철회했다. 원자재와 물류비 상승, 엔화 약세를 이유로 가격 인상을 예고했지만 생활필수품의 가격 상승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의 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일본의 가계 소비가 9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고물가에 따른 소비 위축이 심화하면서 기업들의 가격 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니클로는 다음 달 10일로 예정됐던 양말 가격 인상과 묶음 할인 폐지를 취소했다. 지난 16일 인상 계획을 발표한 지 불과 11일 만이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양말이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제품인 만큼 일본 시장에서 예정했던 가격 조정을 재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거셌다. 가격 인상 계획이 공개되자 소셜미디어 엑스(X)에는 불만을 나타내는 글이 잇따랐다. 한 이용자는 직장에서 일하고 집안일까지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서 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인상 전 양말을 미리 구매하겠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990엔짜리 양말 4켤레가 1560엔으로…반발 커지자 인상 철회
논란의 중심에 선 제품은 유니클로의 대표적인 양말 상품인 ‘50색 양말’이다.
유니클로는 당초 다음 달 10일부터 이 제품의 한 켤레 가격을 290엔에서 390엔으로 올릴 예정이었다. 인상률은 34.5%다.
여기에 여러 켤레를 구매할 때 적용되던 할인 혜택도 폐지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50색 양말 4켤레를 990엔에 구매할 수 있었지만, 할인 혜택이 사라지면 4켤레 가격은 1560엔으로 뛰게 된다.
한 번에 4켤레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570엔, 57.6% 증가하는 셈이다.
일반 양말 역시 3켤레 990엔에 판매하던 묶음 할인 혜택을 없애고 한 켤레당 390엔을 받을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3켤레 구매 비용도 1170엔으로 18.2% 오를 예정이었다.
유니클로는 이번 가격 조정을 통해 상품 전체의 평균 판매가격을 약 4% 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상승, 엔화 약세에 따른 수입 비용 증가 등을 판매가격에 반영해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양말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확산하면서 회사는 계획을 수정했다.
유니클로는 지난 27일 공식 홈페이지에 수정 공지를 게시하고 50색 양말의 가격 인상과 묶음 할인 종료를 모두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50색 양말은 앞으로도 한 켤레 290엔, 4켤레 990엔에 판매된다. 일반 양말의 3켤레 990엔 할인도 유지된다.
유니클로는 가격 변경을 안내한 직후 계획을 수정해 고객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사과했다.
양말을 제외한 다른 의류의 가격 인상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대표적으로 남녀용 ‘감동재킷’ 가격은 6990엔에서 7990엔으로 약 14.3% 오른다. ‘감동팬츠’ 역시 3990엔에서 4990엔으로 약 25.1% 인상된다.
유니클로가 가격 조정 대상 가운데 양말만 예외로 둔 것은 소비자들이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생활필수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저항을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 양말 전문업체 타비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타비오는 2023년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양말 묶음 판매를 중단했으나 소비자들의 요청이 이어지자 올해 2월 할인 판매를 재개했다.
일본 가계소비 9개월 연속 감소…“중산층도 가격 인상 경계”
유니클로의 가격 인상 철회는 일본 소비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오랜 기간 물가가 오르지 않는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일본에서는 소비자들이 낮고 안정적인 가격에 익숙해져 있다.
최근에는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졌지만,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과정에서 가격 저항도 강해지고 있다.
일본 총무성이 지난 23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했다. 신선식품을 제외한 소비자물가지수도 2.1% 올랐다.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가계의 실제 소비 여력은 약화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의 가계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31만975엔으로 집계됐다.
물가 변동을 반영한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 동월보다 3.1% 감소했다. 지난해 12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세다.
전월인 7월에도 실질 소비지출이 3.6% 줄었다. 일본 가계가 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대응해 소비를 줄이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식료품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8월 식료품 지출은 전년 동월 대비 실질 기준 1.4% 감소했으며, 생선류 소비는 6.7% 줄었다.
총무성은 가격 상승에 따른 절약 경향이 식료품 소비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향후 가격 인상이 가계 소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가격에 더욱 민감해지는 현상은 소득 수준이 높은 계층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이토추연구소의 다케다 아쓰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유니클로가 가격 인상을 철회한 것은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을 상당히 의식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소비자들도 물가 상승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니클로의 이번 결정은 기업들이 원가 상승에 대응하면서도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 수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주가는 29% 올랐는데 소비자는 지갑 닫아…유통업계 가격 경쟁 심화
고물가에 따른 소비 위축은 일본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9일 일본 소비자들이 편의점 대신 할인 슈퍼마켓을 찾는 등 구매 습관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편의점의 고객 수는 지난 9월까지 15개월 연속 감소했다. 9월 고객 수는 전년 동월보다 3.8% 줄었다.
반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할인 유통업체에는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대형 할인 슈퍼마켓 체인 세이유는 지난 9월 기존 점포의 고객 수가 전년 동월 대비 6.9% 증가했다. 저렴한 식사 상품과 신선식품 판매 확대 등이 소비자 유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일본의 주요 편의점 업체들도 소비자 이탈에 대응하고 있다.
세븐일레븐과 패밀리마트 등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자체 브랜드 상품을 확대하고, 식품과 음료를 묶어 할인하는 판매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소비자들이 브랜드나 편의성보다 가격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유통업체 간 저가 경쟁도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반면 유니클로의 모회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은 주식시장에서 양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패스트리테일링 주가는 올해 들어 지난 29일까지 약 29%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일본 토픽스지수 상승률인 17%를 웃도는 수준이다.
기업의 주가 상승과 별개로 소비자들의 가격 부담은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양말 가격 인상 철회가 주목받고 있다.
기업들은 임금과 물류비,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해야 하지만 가계의 구매력이 약해지면서 가격 인상의 폭과 시기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자주 구매하는 생활필수품은 가격 변화가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만큼 기업의 가격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니클로가 양말 가격 인상 계획을 11일 만에 철회한 결정은 이러한 소비 환경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고물가가 장기화하면서 생활필수품의 가격을 둘러싼 기업과 소비자의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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