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고교생 시위 아이콘 부상한 라니

알제리계 아버지·노동계층 지역서 성장

어머니 잃은 아픔 딛고 바칼로레아 합격

열악한 교육환경 비판하며 고교생 집회 주도

고등교육기관 정원 25만명 확대·교사 확충

대입 플랫폼 대대적 개편·시설개선 등 요구

극좌세력 연계 논란…인종차별·살해 협박도

지난 2일 리야드 라니 프랑스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가 파리에서 학생 단체 대표들과 프랑스 교육부 장관 회의가 끝난 후 취재진에게 발언하고 있다. [AFP]
지난 2일 리야드 라니 프랑스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가 파리에서 학생 단체 대표들과 프랑스 교육부 장관 회의가 끝난 후 취재진에게 발언하고 있다. [AFP]

정부는 떨고 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프랑스 국민은 한번 분노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리야드 라니 프랑스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한 대규모 연대 시위의 도화선이 된 고교생 시위. 그 중심에서 집회를 이끈 리야드 라니(19) 프랑스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가 한 말이다.

한 달 넘게 이어진 고교생들의 교육여건 개선 요구 시위는 고물가에 항의하는 전국적 시위로 번졌다.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고 방화와 약탈까지 잇따르면서 프랑스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 24일(현지시간) 폭력 사태의 재연을 막기 위해 장갑차와 경찰 7만명을 투입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26일 온라인 대입 시스템 개편과 학교 개보수 지원, 교원 확충 등을 담은 대책을 발표했다. 학생 대표들은 일부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여전히 미흡하다며 추가 압박을 위한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오는 31일에는 세 번째 대규모 주말 학생·노조 연대 시위가 예고됐으며, 주요 노조도 내달 5일 전국 총파업을 주도할 예정이다.

이번 대규모 시위의 불씨가 된 학생 운동의 중심에는 라니가 있다. 불과 며칠 만에 고등학생 운동가에서 프랑스 전역의 학교 봉쇄와 항의 시위를 상징하는 인물로 부상한 그는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시위를 이끌고 있다.

리야드 라니 프랑스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 [SNS]
리야드 라니 프랑스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 [SNS]

노동자 동네서 자란 소년…가난과 상실의 아픔 딛고 청년 아이콘으로

라니는 프랑스 북부 루베의 노동자 계층 거주지역인 필(Pile)에서 태어나 인근 와트렐로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는 미술, 역사, 지리, 지정학, 정치학 등을 심화 과목으로 공부했으며 학교의 사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고등학교에서도 학생회 회장이었던 그는 지난 9월에는 프랑스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 합격한 수재다.

라니의 가정 환경은 좋지 않았다. 부모가 별거하면서 사회주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알제리계 프랑스인인 라니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육체노동에 종사했다. 올해 1월에는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아픔도 겪었다. 라니는 “자신의 이같은 경험으로 인해 저소득층 가정이 직면한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식료품과 연료 가격 상승, 고물가가 서민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교사 부족·낡은 교실·불공정 입시…교육권 보장에 직접 나서다

무너져 내리는 학교 지붕과 학생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는 교실, 한 학기 내내 자리를 비운 교사들. 이 중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다.

리야드 라니 프랑스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열린 학생 시위 및 봉쇄 행동의 일환으로, 학생 연합(Union Etudiante) 대변인 사브린 카르바흐와 리야드 라니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가 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의 시위에 참여한 모습. [로이터]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열린 학생 시위 및 봉쇄 행동의 일환으로, 학생 연합(Union Etudiante) 대변인 사브린 카르바흐와 리야드 라니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가 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의 시위에 참여한 모습. [로이터]

라니는 자신이 학생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이를 대중에게 알리며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전달하는 대표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대학에 진학하기 전 1년 동안 노동조합 활동에 전념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라니의 주요 활동은 학생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집단적인 요구로 발전시키는 것에 집중돼 있다. 교사 부족에 따른 수업 취소, 과밀학급, 노후화한 학교 건물, 과도한 수업 일정, 학교 보건·사회복지 지원 인력 부족 등이 대표적 요구사항이다.

실제로 프랑스 공립학교 교직원을 대표하는 주요 노조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중·고교의 절반 이상은 최소 한 명 이상의 교사가 부족하다. 또 전체 학교의 69%는 교원이나 지원 인력 가운데 최소 한 명이 결원인 상태다.

이와 관련해 라니는 공개 발언에서도 교사 부족 실태를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바칼로레아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정작 시험 과목을 가르칠 교사가 없어 몇 달씩 수업을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노후화된 학교시설도 학생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학생노조가 발표한 요구사항 1순위 역시 학교와 대학 건물의 유지·보수였다. 올여름 기온이 40도까지 치솟는 폭염을 직접 겪으면서 학생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노후화된 학교 건물의 개보수와 냉방·냉각시설 설치, 단열 강화 등을 포함한 ‘긴급 계획’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깨끗하고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확보’ 역시 핵심 요구사항이다.

여기에 라니는 프랑스의 대학 입학 지원 플랫폼인 ‘파르쿠르쉽(Parcoursup)’에 따른 문제도 꼬집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바칼로레아라는 대학 입학제도를 사용하다가 2018년부터 파르쿠르쉽을 도입했다. 이후 대학들은 바칼로레아 최종 성적뿐 아니라 고교 3년간의 성적, 교사 의견, 지원 동기 등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 학생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대학과 각종 고등교육 과정에 지원하고 학교 성적과 지원서를 토대로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학생 시위대는 이 제도가 대학 진학 과정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파르쿠르쉽이 불투명하고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각 대학 과정이 자체 알고리즘과 기준으로 지원자 순위를 정하지만, 학생들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았는지, 왜 탈락했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 라니를 비롯한 학생들의 불만 사항이다.

이에 필리프 밥티스트 고등교육연구 장관은 26일 파르쿠르쉽 플랫폼이 2028년 전면 교체될 때까지 투명성을 높이고 구체적 불합격 사유를 제시하는 등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거리 시위부터 정부 협상까지…학생 목소리 대변하며 투쟁 전면에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열린 학생 시위 현장에서 리야드 라니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가 취재진에게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열린 학생 시위 현장에서 리야드 라니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가 취재진에게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라니가 고교생 시위를 대규모로 확대시킨 발판은 대학생 및 노동자 노조와 연대였다. 그가 대표로 있는 USL은 반파시즘과 여성 권익 증진을 지지하며 환경 및 사회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학생노조인 유니옹 에튀디앙트(Union étudiante)와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등과도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유니옹 에튀디앙트와 연대해 시위를 조직하면서 고등학생들의 요구를 대학생들의 요구와 연결했다. 이들이 제기하는 주요 문제는 교육재정 확충,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교육시설 개선, 상급학교 진학 기회 보장 등이다.

이 과정에서 라니는 시위를 조직함과 동시에 프랑스 교육부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

라니는 지난 2일 다른 청년단체 대표들과 함께 에두아르 제프레 프랑스 교육부 장관과 만남을 가졌다. 그는 면담 이후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행위와 거리를 두면서도,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마련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후 학교시설 개선과 교사 충원 등에 필요한 100억유로 규모의 긴급 예산을 요구했다.

또한 지난 13일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서 열린 학생 시위에 참여한 라니는 17일 노동계와 노란 조끼 운동이 가세한 대규모 시위에서도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22일에는 대학입학 지원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정부 회의에 참석했다가 다른 학생단체의 참여 문제로 회의장을 떠나는 등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 19일부터 정부가 시위 참가자와 행진 경로를 제한한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라니는 “정부의 시위 금지 및 통제 조치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이자 인권국가”라며 “이 정부는 그것을 짓밟고 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좌파 정치권과의 인연…살해 협박까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프랑스 릴에서 열린 전국적인 공공 부문 파업 및 시위 당시, 몽테벨로 국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봉쇄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리야드 라니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FP]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프랑스 릴에서 열린 전국적인 공공 부문 파업 및 시위 당시, 몽테벨로 국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봉쇄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리야드 라니 전국고등학생노조(USL) 대표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FP]

라니의 시위 활동에는 프랑스 좌파 정치권과 밀접하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2022년 다비드 제루 현 루베 시장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험 때문이다. 제루 의원은 좌파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소속 정치인이다. 지난해 8월에는 USL 대표 자격으로 프랑스 극좌 성향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가 주최한 여름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에 이탈리아 일간지 일 폴리오는 라니를 좌파 대선주자인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의 ‘후계자(protege)’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멜랑숑은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이번 시위 사태를 지지세 확장의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로랑 뉘녜즈 프랑스 내무장관은 “검은 복면을 쓴 극좌 세력이 폭력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LFI가 시위 배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부 정당은 LFI가 이번 폭력시위 피해 복구에 재정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라니는 최근 지방선거에서는 와트렐로 지역의 좌파 연합 후보 명단에 3순위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해당 후보 명단에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비롯해 사회당, 공산당, 제네라시옹(세대) 운동 등 여러 좌파 정당 관계자들이 포함됐다.

여기에 라니의 최근 발언도 논란이 됐다. 그는 라니는 프랑스 RTL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사는 도시와 지역, 그리고 조국이 극우 세력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파리 경찰청은 보고서를 통해 라니와 그가 이끄는 노조가 LFI를 비롯한 다른 극좌 단체들과 연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라니는 이들이 단지 협력 관계에 있는 ‘파트너’일 뿐 특정 정당의 당원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또 “자신이 특정 정당에 소속돼 있지 않다”고 항변했다.

이와 함께 라니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라니를 겨냥한 인종차별적 비난과 살해 협박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자신을 겨냥한 수백 건의 살해 협박과 인종차별적 모욕을 받았다고 밝혔다. 프랑스 교육노조인 FNEC FP-FO는 이러한 공격을 규탄하며 라니와 전국고등학생노조에 연대와 지지의 뜻을 밝혔다.

19세의 나이에 프랑스 학생 시위의 상징으로 떠오른 라니. 고교 봉쇄와 항의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그는 이제 교육환경 개선이라는 요구를 넘어, 프랑스 사회·정치 운동에서 청년과 학생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섰다. 교육의 기회와 불평등을 둘러싼 학생들의 분노를 어디까지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끌어낼 수 있을지, 라니의 행보는 프랑스 청년운동의 향방을 가늠하는 하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리아드 라니 약력 및 활동
리아드 라니 약력 및 활동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 정세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헤럴드경제 국제부가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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