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X’ 4회 만에 18.5%·넷플릭스 비영어 1위

‘100일의 거짓말’ 9.0%, 화제성 2.07%p 차 추격

‘심의 신청’·일본 ‘반일’ 주장…논란 속 기록 경신

1932년 이봉창·윤봉길의 해, 제암리의 비극 조명

김지원의 SBS 금토극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김지원의 SBS 금토극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1. “나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고령 환자의 배를 열어둔 채 쓰러진 병원장에게로 황급히 달려가는 의사들. 그 아수라장 속, 홀로 남은 수술대 곁으로 파견 외과의 계수정(김지원 분)이 서늘한 기운을 뿜으며 걸어 들어온다. 수술을 완벽히 매듭지은 대가는 해고 통보였지만, 병원은 끝내 그를 내치지 못한다. VIP의 휠체어를 빼앗아 쓰러진 소녀를 태우고, 뇌출혈로 쓰러진 청소 노동자의 머리를 망설임 없이 연다. 회진도, 회식도, 야근도 거부하는 그의 원칙은 단 하나. ‘수술은 실패하지 않는다.’ SBS 금토극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다.

#2. “나한테 배후가 있다면 그건 2000만 조선이다. 대한독립 만세”

1932년 경성역. 미국행 뱃삯을 모으던 소매치기 이가경(김유정 분)이 훔친 가방에서 쏟아진 것은 차가운 총알이었다. 가방의 원주인은 조선총독부 이인자 사토 신이치(진선규 분)를 암살하려 13년 만에 귀환한 저격수 유소란(김현주 분)이다. 암살 작전에 휘말린 가경은 미국행을 조건으로 100일간 총독부 통역생으로 위장한다. 돈이 전부이던 소매치기의 입에서 기어코 사자후가 터져 나온다. tvN 토일극 ‘100일의 거짓말’이다.

이보다 더 뜨거운 주말은 없다. 거대 권력에 거침없이 균열을 내는 두 여성 영웅이 10월 안방극장을 완벽히 장악했다.

‘닥터X’는 첫 회 전국 11.4%(닐슨코리아)로 올해 미니시리즈 첫 방송 최고 기록을 세운 뒤, 단 4회 만에 18.5%, 분당 최고 20.8%까지 치솟았다. 지난 9일 공개된 드라마는 사흘 만에 넷플릭스 비영어 TV쇼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한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7개국에서 왕좌에 올랐으며 48개국에선 톱10에 올랐다.

김유정 박진영의 ‘100일의 거짓말’ [CJ ENM 제공]
김유정 박진영의 ‘100일의 거짓말’ [CJ ENM 제공]

추격자 ‘100일의 거짓말’의 기세도 맹렬하다. 5.3%로 시작해 4회 만에 9.0%(유료 플랫폼 기준)를 돌파하며 동시간대 1위를 석권했다. 지상파와 유료 플랫폼은 시청률 집계 모집단이 달라 두 수치로 단순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지만, 화제성 추격전은 이미 불을 뿜었다. 펀덱스 10월 3주 차 화제성에서 두 작품의 격차는 2.07%포인트에 불과했다. 출연자 부문 역시 김지원과 김유정이 나란히 1, 2위를 양분했다.

운전대를 쥔 두 여자의 서사

그간 국내 의학 드라마에서 ‘수술실의 천재’는 오랜 기간 ‘하얀거탑’의 장준혁이나 ‘낭만닥터’ 김사부 등 남성의 몫이었다. 여성 의사는 ‘외과의사 봉달희’처럼 실력을 인정받으려 눈물겹게 분투하는 ‘성장 서사’를 주로 담당했다. 그러나 ‘닥터X’의 계수정은 등장부터 실력의 꼭대기에서 군림한다. “어차피 자르면 되는 꼬리”라던 병원장(손현주 분)조차 그를 다시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

‘100일의 거짓말’ 역시 통역관 사토 히데오(박진영 분)와의 멜로가 존재하지만, 거대한 서사의 운전대를 거머쥔 것은 온전히 소매치기 가경의 거짓말과 임기응변이다.

‘닥터X’는 TV아사히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일곱 시즌, 69회를 이어간 ‘닥터X: 외과의 다이몬 미치코’를 처음으로 해외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하지만 원작과 달리 작품 곳곳에 한국 의료계의 상황을 촘촘히 넣었다. 수술실 CCTV 법제화, 의대 증원에 반대한 집단 파업 등 한국 의료계의 뇌관을 극에 깔았다. 전작 ‘쌈, 마이웨이’(5.4%→13.8%), ‘나의 해방일지’(2.9%→6.7%), ‘눈물의 여왕’(5.9%→24.9%) 등 낮게 출발해 입소문으로 폭발했던 김지원의 시청률 그래프는 이번엔 첫 회부터 두 자릿수라는 변곡점을 맞았다.

김지원 이정은의  SBS 금토극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김지원 이정은의 SBS 금토극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반면 김유정의 궤적은 전작 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의 악녀 백아진 역을 기점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정상에 오르려 타인을 짓밟는 악녀 백아진을 통해 김유정은 6주 연속 티빙 오리지널 신규 유료가입 기여 1위를 이끌었고, 역대 티빙 오리지널 가운데 시청 시간과 완주자 수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해외에선 라쿠텐 비키 108개국 1위를 기록한 ‘티빙의 효녀’다. 앞서 진행된 ‘100일의 거짓말’ 제작발표회에서 “시청자를 홀릴 배우가 필요했다”는 류보리 작가의 말처럼 김유정은 ‘매 작품 시청자를 홀리며 존재감을 증명한 것이다.

대신 질러 주는 통쾌함…그림자와 순기능

“이의 있습니다. 노욕이 지나치다.”

첫 출근 날 계수정이 던진 일갈. 그가 지운 회진·회식·야근은 직장인들의 오랜 로망이다. 이를 방증하듯 4회 2049 타깃 시청률(5.9%)은 토요일 전체 프로그램 1위를 싹쓸이했다. 특히 개두술 의사가 없어 골든타임을 놓치고 숨진 응급구조사의 죽음에 공개 사과하는 병원의 에피소드는, 제도가 풀지 못한 부당함을 한 사람의 실력으로 타파하는 ‘사이다 드라마’ 계보를 이으며 의료 갈등에 지친 시청자에게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건넨다.

김유정 ‘100일의 거짓말’ [tvN]
김유정 ‘100일의 거짓말’ [tvN]

‘100일의 거짓말’이 빚어내는 감정은 결이 다르다. “조선에도 곧 봄이 올 것”이라는 극 중 총독부 통역관 스즈키(김도현 분)가 구국단의 밀정으로 정체를 드러내며 남긴 이 대사는 묵직한 파장을 일으켰다. 4회 초반, 구국단의 시험으로 이마에 총구가 닿은 채 납치된 가경이 끝내 동지들을 발설하지 않는 신에서 시청자 반응은 정점을 찍었다. 유인식 감독은 “독립운동가를 움직인 힘이 궁금했다”고 밝혔고, 이들의 허구적 상상력은 시청자에게 “통쾌함이자 위로”(류보리 작가)로 치환됐다.

거침없는 질주 이면엔 그림자도 짙다. ‘닥터X’는 심정지 환자에게 300J 제세동을 가하는 무리수, 1형 당뇨 환아를 ‘약쟁이’로 묘사한 설정 탓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신청까지 접수되는 홍역을 치렀다. 현장 자문을 맡은 남궁인 교수가 “자문이 제작진에게 패배했다”고 꼬집을 정도다. 그럼에도 SBS 측은 “별도의 입장은 없다”며 매회 픽션 고지만을 내보냈다. 그 사이 시청률은 18.5%까지 치솟았다. 시청률과 윤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SBS ‘닥터 X: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SBS ‘닥터 X: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시작과 동시에 글로벌 시청자를 쓸어 담고 있는 ‘100일의 거짓말’에 대한 반응은 일본에서도 나오고 있다. 일부 현지 누리꾼의 ‘반일 드라마’ 주장에도 일본 넷플릭스 TV쇼 10위에 올랐다. 일본어를 전혀 몰랐던 진선규는 두 달간 일본에 머물며 하루 7시간씩 대본을 익혔고, 그의 일본어 연기는 현지 시청자들에게서도 찬사를 받았다.

허구의 뿌리는 역사에 닿아 있다. 유튜브의 해외 리액터들은 드라마 리액션 영상을 공유하며 1920년대 한국사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드라마는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잇따른 의거라는 뼈아픈 역사를 첩보극에 정교하게 녹여냈다. 유소란이 잃은 딸의 고향 가상의 ‘계암리’는 1919년 일제의 ‘제암리 학살’을, 유필립(이무생 분)이 사는 서양식 주택 ‘희원’은 일제의 만행을 알린 AP통신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를 모델로 삼아 깊이를 더했다. 역사적 진정성은 11월 29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1932년 경성, 밀정이 되다’로까지 이어지며, 웰메이드 콘텐츠의 순기능을 입증하고 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두 드라마는 대중이 겪고 있는 낡은 시스템에 대한 깊은 피로감을 타격한다”며 “타협 없는 외과의와 로맨스도 생존의 무기로 삼은 밀정은 부조리에 파열음을 내는 가장 현대적인 다크 히어로이자 주체적 여성 서사의 ”고 분석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