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폭동에 “국경 폐쇄” 촉구
공화당 유세장서 폭력시위 영상 상영
AP “이민자 책임론 뒷받침할 증거 없어”
전문가 “표심 변화보다 지지층 결집 효과”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동을 무슬림 이민자 문제와 연결하며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민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혼란을 미국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미래로 묘사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당국은 폭동과 특정 이민자 집단의 연관성을 확인하지 않았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교회 방화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일(현지시간) AP통신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주요 인사들은 최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폭력 시위를 이민정책 실패의 결과로 규정하며 강경한 국경 통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공화당의 텃밭인 캔자스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이번 선거에 무엇이 걸려 있는지 알고 싶다면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미국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프랑스에 대해 “한때 위대했던 나라가 기독교와 서구 문명 자체를 증오하는 이민자와 지하디스트,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정복당하고 약탈당하며 불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이런 일이 미국에서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세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프랑스 폭력 시위 장면을 담은 뉴스 영상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상영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18일에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프랑스가 불타고 있다. 마음속에 증오를 품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온 이민자들이 한때 위대했던 나라를 산산조각 냈다”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너무 늦기 전에 국경을 닫고 통제권을 가져오라”고 촉구했다.
캔자스주 유세에 참석하기 위해 백악관을 떠나면서는 “유럽이 국경을 폐쇄하고 시위대 같은 범죄자들을 추방하지 않으면 유럽은 끝장날 것”이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증오를 보라. 이것은 교육 문제가 아니다. 그 나라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그 나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인사들도 프랑스 폭동을 미국의 이민정책과 연결했다. 로저 마셜 공화당 상원의원은 캔자스주 집회에서 “오늘날 급진 이슬람은 미국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며 “온건파가 급진 이슬람에 굴복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프랑스에서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P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내세운 이민자 책임론을 뒷받침할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경찰과 당국은 이번 폭동을 특정 이민자 집단과 연관 짓지 않았다. 프랑스는 미국과 달리 인종이나 민족에 따른 체포자 통계를 수집하지 않으며, 체포돼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의 신원도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폭동 가담자들의 구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종교시설 방화 역시 확인된 사실과 차이가 있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불타는 교회 첨탑을 볼 때 그것이 바로 급진적인 민주당원들이 미국에 하려는 짓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AP에 따르면 이번 폭동에서 종교적 동기에 따른 종교시설 공격이 확인된 사례는 없다. 프랑스 유대인 공동체 보호 서비스는 파리의 한 유대교 회당이 피해를 입었지만 절도 시도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피해 상점들이 소유주의 종교 때문에 표적이 됐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교회 첨탑이 불타는 장면으로 확산된 영상은 실제로는 프랑스 중부 리모주의 19세기 시청사 화재 장면이었다. 화염에 휩싸인 시청사 종탑이 교회 첨탑처럼 보이면서 종교시설 방화 주장에 이용된 것이다.
폭동의 배후에 극좌 세력이 있다는 주장도 일부 사실만을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당국은 급진적인 극좌 활동가들이 일부 폭력 사태에 가담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전국적으로 벌어진 약탈과 기물 파손 전체를 이들이 주도했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20년 넘게 경찰 문제를 연구해 온 세바스티앙 로셰 그르노블 정치대학 교수는 “극좌 급진 세력은 이 정도 규모의 폭력을 설명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고 말했다. 그는 상점 약탈에 대해서도 “이러한 집단들이 활동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며 혼란을 틈탄 기회주의적 범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프랑스 시위는 지난달 파리 북부 노동계층 밀집지역 고등학생들이 교사 부족과 낙후된 교육시설에 항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악화에 대한 불만이 더해지며 전국적인 시위로 확대됐다. 지난 17일에는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상점을 약탈하는 등 폭력 사태로 번졌으며, 프랑스 당국에 따르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최소 3000곳의 상점이 피해를 입었다.
AFP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에 불리한 여론이 형성된 상황에서 프랑스 폭동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2024년 대선에서 효과를 거뒀던 반이민 정책을 다시 부각하기 위해 프랑스의 폭력 시위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전략이 실제 선거 판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불확실하다. 최근 미국의 주요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은 이민이나 인종 문제보다 경제를 더 중요한 현안으로 꼽고 있다.
독일마셜펀드의 JC 린트제니히 선임 연구원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선거 광고가 의료보험과 국내 현안에 집중돼 있다며 “국제 문제는 레이더에 잡히는 깜박이는 점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나 이란, 다른 국가안보 문제가 프랑스의 불안정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존스홉킨스대의 저스틴 바이스 외교정책 교수는 프랑스 폭동을 미국의 국가 정체성 문제와 연결하는 공화당의 전략에 대해 새로운 유권자를 확보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이끌 수는 있을 것”이라며 기존 공화당 지지층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