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성 강조’ 중수청, 비정치 경제사건 집중 가능성

서울중수청 금융·반독점 수사 인력, 검찰 대비 증가

“수사·기소 분리에 따라 대응 기관은 늘어”

서울 중구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의 모습. 임세준 기자
서울 중구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의 모습.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최의종 기자] 검찰청이 78년 만에 폐지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이 신설되는 등 형사사법체계가 바뀌면서 기업 사건 수사와 재판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창업주, 최대 주주 등 주요 경영진이 수사 대상에 오를 경우 기업 전체가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계가 새로운 시스템에서의 수사와 재판 동향을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대범죄 수사를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중수청이 정치적 중립성을 거듭 강조하는 가운데, 조직 안착과 존재감 증명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초반 수사력을 기업 사건에 더욱 집중할 것이란 관측도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중수청은 20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중수청사 2층 로비에서 김지용 초대 청장 취임식을 연다. 김 청장은 임기 시작 후 첫 공개 석상이었던 전날(19일)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수사의 정치화 청산’을 강조하면서 공정성·중립성·절차적 정의를 강조했다. 이날 취임식에서도 이 부분을 재차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현 여권이 주도하는 검찰개혁의 산물이자, 김 청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기관 출범 이후 줄곧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중수청이 우선 기업 관련 중대범죄 수사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수청법상 중수청은 경제범죄 등 7대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이 경제범죄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상 주가조작, 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사건 등을 비롯해 형법상 사기·공갈·횡령·배임 등 경제 사건이 두루 포함돼 있다.

중수청 안팎에서는 기업들이 우선 신경 써야 할 부분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사안이 꼽힌다. 검찰청 폐지 직전까지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수사에 나섰던 부분인 데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검찰 수사를 칭찬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구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현 서울중앙지방공소청 중대범죄기소4부)를 중심으로 전분당, 유가 담합 등 수사가 진행됐고, 검찰청 폐지 직전 석유화학제품 담합 사건 규모를 총 16조3961억원으로 특정해 주요 기업 임직원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규모로 봐도 기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검사와 수사관 등 20명 수준에서 서울지방중수청 반독점수사국(1~4과) 120명으로 약 6배가 늘었다. 공정거래 위반 사건에 투입될 수 있는 인력 자체가 는 것이다. 실제 나희석 구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현 서울중앙지방공소청 중대범죄기소4부장)은 검찰청 마지막 날이던 지난 1일 석유화학제품 담합 사건 브리핑에서 “공조부에 20명이 있는데 중수청은 6배다. 효율이 떨어졌지만 덩치가 커졌다. 공조부 검사와 수사관도 넘어가고 규모가 커졌기에 (사건 처리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정거래 위반 사건에서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 제도)’가 어떻게 다뤄질 것인지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2020년 시행된 대검찰청(현 공소청) 예규인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상 검사가 대검과 협의를 거쳐 수사와 재판에 협조한 1순위자는 기소하지 않고, 2순위자는 형을 반으로 낮춰 구형하도록 돼 있었다. 석유화학제품 담합 사건에서도 수사 대상 중 한 기업이 리니언시로 기소 대상에 제외됐다.

중수청 출범으로 리니언시 주체를 중수청과 공소청 중 어느 기관으로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공소청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에 “관련해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에 영향을 주는 만큼 중수청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과 구형을 하는 공소청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한 상황이다.

리니언시 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서울고검 형사부장 출신 윤병준 법률사무소 인피니티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에 “(검찰청 폐지 전에는 수사·기소를 모두 맡은) 검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수사기관이 독자적으로 하는 것도 어색하다. 공소청이 갖고 있는 것도 이상할 수 있다”라고 했다.

서울 서초동 공소청에서 관계자들이 이동하는 모습. [연합]
서울 서초동 공소청에서 관계자들이 이동하는 모습. [연합]

자본시장법 위반 등 금융증권범죄 사건 수사 부서에도 인력 변화가 있다. 그동안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불리던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검찰청 폐지와 함께 사라졌다. 검사와 수사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국세청 등 유관기관 인력이 참여한 수사 부서가 사라진 것이다.

합동수사 기능은 서울중수청 금융범죄합동수사과가 이어받게 됐다. 기존과 달리 함께 수사를 벌여 영장을 곧바로 청구할 수 있는 검사 역할이 사라져 기존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당장은 미지수다. 다만 인력 측면에서 남부지검 금융조사부 등이 기존 45명이었는데, 서울중수청 금융범죄수사국은 150명으로 대폭 늘었다.

검찰청 폐지로 대부분의 형사사건 수사를 경찰이 맡지만 경제범죄, 특히 주요 기업 관련 경제범죄 사건은 중수청이 담당하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른 수사기관 범죄수사 또는 중수청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 범죄수사에 대해 중수청이 이첩을 요청하면, 해당 수사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는 중수청법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형사사법체계 대변혁의 핵심인 수사·기소 분리는 기업 재판에서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검찰청 폐지로 사실상 형사사법절차에서 대응해야 할 기관이 하나가 더 생겼다.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을 지낸 단성한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에 “서울중수청에 합동수사과가 있으나 본질적인 것은 검사가 빠졌다”라며 “금융사건은 복잡한데 과거 검찰 시절과 달리 (대응할) 기관이 늘어난 셈”이라고 평가했다.

절차 자체도 기존 검찰 시절 대비 상당히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송치받은 검사에게 수사권이 없어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그만큼 사건 핑퐁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소 이후에도 검사에게 수사권이 없어 재판 단계에서 필요한 증거 확보 기능이 약화할 수 있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bel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