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팀 버튼 감독의 영화 ‘가위손’은 한 과학자가 외딴 성에서 인공인간 에드워드를 만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발명가는 거의 완벽한 인간을 빚어냈지만, 정작 손을 미처 달아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에드워드에게 남은 건 날카로운 가위날 두 짝뿐이었다. 화장품 외판원 펙이 홀로 지내던 에드워드를 마을로 데려오자, 주민들은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경이로운 솜씨에 매료된다. 정원수는 눈 깜짝할 새 예술품으로 다듬어지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머리는 순식간에 근사하게 손질된다. 그렇게 마을의 인기인이 된 에드워드였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다치지 않게 마주 잡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그 단순한 일만큼은 끝내 해내지 못한다. 결국 오해와 비극 속에 다시 성으로 돌아간 그는, 홀로 얼음 조각을 하며 생을 마친다. 특정 작업 하나는 누구보다 정교하게 해내면서도, ‘안전하게, 부드럽게 쥔다’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만큼은 갖추지 못한 존재. 35년 전 스크린 속 상상이, 지금 전 세계 연구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젠슨 황이 그린 네 개의 물결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지난 10여 년의 AI 발전을 네 단계로 정리해왔다. 2012년 알렉스넷으로 상징되는 ‘인지 AI’는 컴퓨터가 영상과 소리, 진동 같은 세상의 정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단계였다. 그 다음은 ‘생성 AI’다.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옮기거나, 문장 하나로 이미지를 그려내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챗GPT의 시대가 여기 해당한다. 세 번째는 ‘추론 AI’, 흔히 에이전틱 AI라 불리는 단계다. 단순히 답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쪼개고 여러 도구를 오가며 복잡한 작업을 끝까지 수행하는 능력이다. 최근 메타가 내놓은 개인 비서 ‘뮤즈’가 메일을 보내고 예약을 잡고 결제까지 대신 처리하는 것도, 바로 이 추론·에이전틱 AI가 우리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온 장면이다. 그리고 젠슨 황이 “다음 물결”이라 부르는 마지막 단계가 ‘피지컬 AI’다. 마찰과 관성, 중력 같은 물리 법칙을 이해해 로봇이 실제 세계에서 손과 발로 일을 해내는 단계. 화면 안에서 똑똑했던 AI가, 이제 화면 밖으로 걸어 나와 몸을 갖는 순간이다.
문제는 이 마지막 물결이 유독 더디게 밀려오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6월 내놓은 보고서는 “세계는 지금 손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일본·유럽, 최근엔 중국 제조업까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본과 인재가 일제히 몰려간 곳이 휴머노이드였다. 젠슨 황은 이 시장이 40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 외쳐왔다. 그런데 정작 로봇이 셔츠를 개거나 잘 익은 딸기 하나를 다치지 않게 따는 걸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보행은 이미 상당 부분 풀렸다. 문제는 다리가 아니라 손이다. 가위손의 에드워드가 끝내 넘지 못했던 바로 그 벽이, 지금 피지컬 AI 앞에도 그대로 놓여 있다.
원가의 6분의 1을 잡아먹는 손
숫자로 보면 이 병목이 얼마나 비싼지 드러난다. 모건스탠리가 테슬라 옵티머스 2세대의 부품원가를 뜯어본 결과, 로봇 한 대의 총원가 5만 달러 가운데 손 하나의 원가가 9500달러, 전체의 17.2%를 차지했다. 로봇의 일부에 불과한 손이 전체 원가의 6분의 1을 넘게 잡아먹는 셈이다. 사람의 손은 27개의 자유도와 1만7000개에 달하는 촉각 수용체를 가진 인체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 장치 중 하나이니, 흉내 내려면 손가락 마디마다 모터와 센서, 배선을 욱여넣으면서도 방수와 내구성, 대량생산성까지 갖춰야 한다. 포브스코리아는 이를 짚으며 “손끝의 감각은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정밀한 조작의 전제 조건”이라며, 손이 힘을 실시간으로 조절하고 “아이와 손을 잡을 때의 압력”처럼 의도와 감정까지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짚었다. 다섯 손가락을 갖춘 정교한 로봇 손을 만들려는 대표적 초기 시도는 뜻밖에도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유타대 공학설계센터와 MIT 인공지능연구소가 공동 개발해 1986년 발표한 ‘유타/MIT 손’은 당시 가장 인간과 흡사한 다관절 로봇 손 중 하나로 꼽혔는데,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정작 이 손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친 사람의 시계는 유독 더디게 간다. 일론 머스크는 2025년 초 그해 안에 옵티머스 수천 대를 생산하고 연말까지 1000대가 실제 업무를 하게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 약속은 지나갔다. 올 1분기 실적발표에서는 3세대 로봇 공개를 예고했다가 마감일 당일 “이미 걷고는 있지만 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뤘다. 4월에는 생산 시작 시점을 7~8월로 다시 제시하며 “옵티머스는 부품이 1만 개가 넘어 생산 속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6월에는 로보택시와 함께 초기 확장이 “매우 느릴 것”이라 재차 강조했고, 예측시장 폴리마켓은 옵티머스의 연내 소비자용 출시 가능성을 15%로, 반기 내 출시 가능성은 1%로 낮게 잡았다. 다보스포럼에서 내놓은 가장 최근 약속은 2027년 말 일반 판매다. 2022년부터 지금까지 ‘생산 준비 완료(2023년)’, ‘수천 대 생산(2025년)’, ‘3세대 공개(올 1분기)’ 같은 목표가 매번 다음 시점으로 밀렸는데도, 그 새 약속이 나올 때마다 테슬라 주가는 또 한 번 들썩인다. 실망이 쌓여도 기대는 초기화되는 셈이다.
한국의 반전, 그리고 조용한 승부
한국에서도 조용히 진짜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 진두지휘 아래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해 완성차 회사에서 로봇 회사로 정체성을 새로 쓰는 중인데, 이 승부에는 이미 한 번 반전이 지나갔다. 2020년 소프트뱅크로부터 지분 80%를 인수하며 걸린 풋옵션 조항에 따라, 2025년 6월 1차 시한이 별다른 조치 없이 지나가고 1년 유예기간까지 부여됐다. 시장은 그 사이 아틀라스 양산형 공개(CES 2026)로 부풀어 오른 30조~70조원대 상장 기대 밸류를 근거로 소프트뱅크가 조금 더 기다릴 거라 봤다. 그런데 지난 6월 말 시한이 도래하자 소프트뱅크는 실제로 풋옵션을 행사했고, 남은 지분은 정작 그 기대치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약 5조1786억원 가치로 정산됐다.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급전이 필요했던 소프트뱅크가 상장을 기다리는 대신 확실한 현금화를 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화려한 상장 기대와 실제 정산가 사이의 이 낙차 역시, 로봇 서사에 낀 거품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그런데 눈에 덜 띄는 곳에서 더 단단한 그림도 자란다. 액추에이터 전문업체 로보티즈는 지난달 베이징 세계로봇컨퍼런스(WRC)에 국내 휴머노이드 기업 중 유일하게 참가해 자체 개발 로봇 ‘에이아이 사피엔스’를 선보였고, 신규 액추에이터 ‘다이나믹셀-Q’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미·중 관세 갈등을 피해 2027년 초 우즈베키스탄 공장 가동도 준비 중인데, 이렇게 하면 미국과 중국 양쪽 시장을 동시에 노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삼성전자가 최대주주로 올라선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이동형 양팔로봇 RB-Y1은 전시장이 아니라 실제 쿠팡 물류센터에 투입돼 실증이 진행 중이다. 전시용 데모가 아니라 실제 창고에서 굴러가는 로봇이라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완성 로봇의 화려한 시연보다, 그 로봇의 관절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부품을 파는 쪽이 오히려 조용히 돈을 벌고 있다는 신호다.
아직은 작은 시장, 그래서 지금이 승부처
여기서 짚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지금 휴머노이드 시장은 숫자로 보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전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량을 7만5000대 수준으로 추산했다. 2030년 89만대, 2035년 650만대·138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다는 게 이 증권사의 장기 전망인데, 뒤집어 말하면 지금부터 2035년까지 출하량이 87배 가까이 불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아직 아무도 승자를 정해놓지 않은, 말 그대로 초기 시장이라는 의미다. 정부는 5년 안에 ‘피지컬 AI 넘버원’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2030년까지 연구용 휴머노이드 700대, 4족보행 로봇 등 1000대 이상을 공공 구매로 흡수해 초기 시장 자체를 만들어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새만금에는 액추에이터·센서·로봇손 같은 핵심 부품을 전담 연구·생산하는 ‘로봇 파운드리’ 구축도 추진 중이다. 반도체 산업이 그랬듯, 완성품 하나보다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의 공급망을 선점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더 큰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로보티즈나 레인보우로보틱스처럼 조용히 실증을 쌓아가는 기업들에게, 공공구매와 부품 인프라라는 ‘확실한 초기 수요’를 만들어주는 일이야말로 지금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지원일 것이다. 완성 로봇의 화려한 시연을 좇기보다, 가위손이 끝내 갖지 못했던 그 손 하나를 누가 먼저, 누가 더 싸게, 누가 더 안전하게 만들어내느냐 - 그 싸움에서 부품과 공급망을 쥔 쪽이 결국 웃게 될 공산이 크다.
딸기와 40조 달러 사이의 거리
이 격차를 가장 냉정하게 짚은 건 로봇공학의 원로다. 로봇청소기 룸바 제조사 아이로봇의 공동창업자이자 리싱크로보틱스를 세운 로드니 브룩스는 올해 1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예측 글에서 “배치 가능한 휴머노이드의 손 정교함은 2036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간에 비해 형편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노스웨스턴대가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지원으로 운영하는 손 전문 연구센터(HAND ERC)의 케빈 린치 교수도 월스트리트저널에 “우리 목표는 10년 안에 인간이 하는 일 일부를 해낼 수 있는 정교함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조차 ‘10년 뒤에 조금 쓸만해지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한국식으로 생각해보면 이 격차가 더 실감 난다. 목욕탕 세신사는 손바닥으로 압력을 실시간으로 재고, 손님의 미세한 움찔거림까지 감지해 힘을 조절한다. 시각 정보만으로는 절대 대신할 수 없는, 촉각과 즉각적인 피드백이 전부인 노동이다. 로봇 손이 딸기 하나 다치지 않게 따는 법조차 버거워하는 지금, 때를 미는 손의 감각을 흉내 내는 건 훨씬 더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시장은 이 손이 당장이라도 완성될 것처럼 값을 매기고 있다. 지난달 19일 상장 첫날 460% 급등했다가 일주일 만에 고점 대비 48% 폭락한 중국 유니트리, 200배가 넘는 선행 주가수익비율에 거래되는 테슬라, 기대 밸류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지분이 정산된 보스턴다이내믹스까지. 이 밸류에이션들은 하나같이 로봇이 곧 사람처럼 손을 쓰게 될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정작 그 손을 만드는 사람들은 10년 뒤에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데도 말이다. 가위손의 에드워드가 끝내 넘지 못했던 그 벽 앞에서, 40조 달러라는 숫자와 딸기 하나 다치지 않게 따는 법을 여전히 배우고 있는 로봇 손 사이의 거리. 로봇주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진짜로 물어야 할 질문은 걸음걸이가 아니라 바로 이 거리에 있다.
가위손은 끝내 사람의 손을 잡지 못한 채 다시 눈 내리는 성으로 돌아갔다. 40조 달러의 꿈을 좇는 로봇들도 지금 비슷한 자리에 서 있다. 걷는 법은 배웠지만, 쥐는 법은 아직 서툴다. 투자자들이 열광하는 숫자와 실험실의 손끝 사이에는 생각보다 먼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좁히는 쪽이 결국 시장을 가져갈 것이다. 가위손이 한 번도 쥐어보지 못한 손, 그 손을 먼저 완성하는 나라와 기업이 다음 10년의 승자가 된다.
팀 버튼(Tim Burton, 1958년 8월~ ) --------------------------------
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 출신 영화감독으로, 고딕풍의 어둡고 기괴한 비주얼과 따뜻한 휴머니즘을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가위손’, ‘유령신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독자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와의 오랜 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소외된 존재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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