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선거 개입 가능성에 각 주정부 비상 대응 강화
투표소 연방 요원 투입·투표용지 압수 등 대비
연방정부 사이버보안 지원 축소…FBI 대응센터도 미설치
“투표용지 관리체계 훼손 땐 재선거 논란 가능성”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 당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개입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 대응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투표 규칙 변경을 추진했지만 의회와 연방대법원에 가로막힌 가운데, 각 주정부는 연방 법집행기관의 투표소 개입과 투표 장비 압수 등 각종 변수들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 중간선거에 대해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탈환하고 상원에서도 다수당 지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경우 이를 뒤집으려 시도할 수 있느냐가 선거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0년 대선 재조사 지휘한 트럼프…올해 중간선거서 선거 지원 축소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이어온 바 있다. 당시 미국의 분권화된 선거제도가 외부 압력에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미 연방수사국(FBI)은 올해 1월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선거관리 사무소를 압수수색하고 2020년 대선 관련 자료를 가져갔다. 3월에는 공화당 소속 채드 비앙코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카운티 보안관이 지난해 실시된 주민투표의 투표용지를 압수했다.
올해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선거제도 변경을 추진했지만 의회와 연방대법원의 제동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 선거는 연방정부가 아닌 각 주정부가 관리하는 만큼 선거 규칙도 대부분 이전과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주정부와 선거관리 당국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긴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연방정부의 선거 보안 지원 축소다. 미 사이버보안·인프라보안국(CISA)은 지난해 지방정부가 사이버 위협 정보 공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비용 지원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일부 주 선거 관계자들은 CISA의 지원 축소로 민간업체 등에 의존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과거 선거에서 위협을 감시하고 지방 법집행기관과 공조하던 선거 대응 지휘센터를 이번에는 설치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거관리 당국은 연방 법집행기관이 직접 투표 현장에 등장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올해 초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의 투표를 허용한 선거관리 공무원들을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법무부의 이 같은 방침에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은 불법이민자들 투표 가능성에 대비해 투표소에 이민 단속 요원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연방법에선 정부 당국자가 무장 요원을 투표소에 파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면서도 “트럼프 행정부 역시 당장은 투표소를 순찰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불법 이민자로 의심되는 이들을 상대로 영장을 집행하는 등 특정 대상을 겨냥한 단속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연방정부가 투표 장비나 투표용지를 압수하는 상황도 선거 전문가들은 우려되는 시나리오로 지목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는 투표용지의 이동 경로와 취급 권한을 기록하는 ‘관리 연속성(chain of custody)’ 절차를 통해 조작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투표 장비나 투표용지가 외부 기관에 압수되면 이러한 관리체계가 훼손돼 투표 결과의 신뢰성을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애리조나주 매리코파카운티의 선거기록 담당자를 지낸 스티븐 리처는 “투표용지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데 매우 불안함을 느낄 것”이라며 “결국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정부들, 이민단속 요원 등장 가능성에 법률적·행정적 대응책 마련
이에 미국 각 선거관리센터들은 각종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를 마련하고 있다. 선거관리 당국은 과거에도 비상 대응훈련을 실시해 왔지만 올해는 예상 위협의 범위가 훨씬 넓어지고 대응 절차도 정교해졌다는 평가다.
미국 애리조나주 플로렌스시의 선거관리센터 직원들은 최근 각종 비상사태에 대비한 도상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화재와 정전, 폭탄 테러 위협 등 기존 재난 상황뿐 아니라 연방 법집행기관 요원들이 투표소에 나타나는 경우까지 대응 시나리오에 포함됐다.
주정부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법률적·행정적 대응책도 마련하고 있다.
콜로라도주는 법원의 명령으로 선거 자료를 다른 기관에 넘기게 되더라도 보관과 관리 과정의 적법성을 입증할 수 있도록 카운티 선거 담당자들에게 모든 관련 절차를 기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애리조나주의 한 카운티 관계자는 연방정부가 투표 장비를 압수할 경우에 대비해 장비 공급업체에 충분한 예비 물량을 확보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멕시코와 국경을 접한 애리조나주 피마카운티는 이민 단속 요원들이 투표소에 나타날 경우 즉시 법원에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할 수 있도록 관련 서류를 미리 준비해 놓았다.
피마카운티의 선거기록 담당자인 가브리엘라 카사레스켈리는 “필요한 정보 몇 가지만 입력해 서류를 출력한 뒤 대기 중인 판사에게 직접 가져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선거의 공정성을 뒷받침하던 연방 행정부가 오히려 선거 신뢰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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