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해외 신탁자산에 20% 과세 강화
22일까지 과거 미납 세금 신고·납부
루이비통·구찌 부진, 명품주 급락
美명품 소비도 3개월째 감소세 지속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루이비통과 구찌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주요 고객이었던 중국 부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해외에 자산을 맡겨온 부유층을 상대로 세금 추징에 나서면서다. 미국에서도 명품 소비가 줄어들고 있어 글로벌 명품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역외 신탁을 통해 자산을 관리해온 부유층을 대상으로 세금 신고와 납부를 강화하고 있다. 해당 부유층은 오는 22일까지 과거 수년간의 미납 세금을 신고하고 납부해야 한다.
문제가 되는 세율은 20%다. 중국 부자들이 그동안 해외 신탁에 자산을 맡겨 세금 부담을 줄여왔다면, 이제는 과거 소득에 대한 세금까지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글로벌 명품업계에 또 다른 악재로 떠올랐다. 중국 소비자들이 전 세계 명품 구매의 약 2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소비 확대는 글로벌 명품시장의 핵심 성장 동력이었다.
특히 이번 세금 추징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을 유지해온 초고액 자산가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의 중산층은 이미 장기간 이어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소비를 줄여왔다. 반면 초부유층은 상대적으로 명품 구매를 이어왔지만,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이들의 소비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명품 컨설팅업체 트리니티아시아의 알렉시스 봉옴 대표는 “세금 납부 기한까지 일부 사람들은 유동성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다시 명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 명품시장은 이미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투자은행 번스타인의 분석에 따르면 올여름 중국 본토 쇼핑몰의 매출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했다.
로이터가 취재한 업계 관계자 2명도 올해 3분기 중국 쇼핑몰의 전반적인 영업 상황이 부진했다고 전했다. 다만 브랜드별로는 차이가 나타났다.
로고를 크게 드러내지 않는 이른바 ‘조용한 명품’(Quiet Luxury) 브랜드들은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고급 캐시미어로 유명한 브루넬로 쿠치넬리와 로로피아나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루이비통과 구찌처럼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전통적인 명품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의 한 부유층 소비자는 세금 추징이 명품 구매 자체보다 소비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에서 건축용 세라믹 부품을 수출하는 51세 덩치는 올해 명품 구매 지출을 예년보다 20%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해외 신탁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하는 부자들이 몇만위안이 부족해서 명품 구매를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진짜 문제는 이런 조치가 모든 사람의 신뢰를 약화시킨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시선이 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명품업계의 고민은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명품시장인 미국에서도 소비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씨티은행의 신용카드 결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미국의 명품 구매액은 전년 동월 대비 6% 감소했다. 7월과 8월에도 각각 4% 줄어 3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AI) 관련 주식 상승으로 부를 축적한 고소득층이 명품 소비를 떠받쳐왔지만, 최근에는 이들 시장에서도 소비심리가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과 미국의 동반 부진은 명품업체들의 주가에도 반영됐다. 로이터가 지난 9일 집계한 올해 주가 하락률은 루이비통과 디올 등을 보유한 프랑스 LVMH와 에르메스가 각각 약 40%, 구찌의 모기업 케링이 29%에 달했다.
로이터가 분석한 유럽 주요 명품기업 10곳의 시가총액은 올해 들어 약 3500억달러(약 500조원) 감소했다. 글로벌 명품시장의 회복 기대가 약해지면서 투자자들이 관련 주식을 대거 팔아치운 결과다.
실적에서도 부진이 확인됐다. LVMH가 발표한 올해 3분기 실적에서 핵심 사업인 패션·가죽제품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시장에서 예상했던 1.8% 감소보다 낙폭이 컸다.
다만 모든 명품이 외면받는 것은 아니다. 고가 보석과 귀금속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까르띠에 등을 보유한 리치몬트는 금과 귀금속의 자산 가치를 중시하는 부유층 소비자들의 수요에 힘입어 다른 명품업체보다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가방과 의류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금과 보석처럼 자산 가치가 남는 상품으로 소비가 이동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부유층을 겨냥한 세금 추징과 미국의 소비 둔화가 겹치면서 명품업계는 올해 남은 기간에도 어려운 경영 환경에 직면하게 됐다. 오는 22일 구찌의 모기업 케링과 에르메스가 발표할 실적은 명품시장 침체의 깊이를 가늠할 추가 지표가 될 전망이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