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손가락 욕’ 넣어 저격 글 올라오자
작성 의심자 상대 1600만원 청구·형사 고소
1·2심서 모두 패소…형사고소도 무혐의 종결
“빈 옆좌석에 가방이나 짐 올려놓고 선점하지 않기!!! 좀 지켜라 빌런들아
통근 벌레들 박멸될 그날까지!! 벌레들 전시··”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지난 2024년 7월, 직장인 익명 플랫폼 블라인드에 이른바 ‘저격 글’이 올라왔다. 사진도 있었다. 통근버스 옆 좌석에 가방을 놓아둔 사람의 모습이었다. 얼굴엔 ‘손가락 욕’을 넣어 가렸다.
자신이 저격을 당한 것을 알아챈 A씨는 분노했다. 몇 달 전, 자신과 이 문제로 통근버스에서 실랑이를 했던 B씨를 의심했다. A씨는 B씨를 상대로 1600만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형사 고소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과거부터 자리 문제로 갈등…글 올린 다음 날 항의
A씨와 B씨는 2023년 10월부터 갈등을 겪어왔다.
당시 A씨는 창측 좌석을 비워둔 채 복도 측 좌석에 앉았다. A씨는 “B씨가 매너 좀 지켜’라며 시비를 걸었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다툼이 있었다. A씨가 복도 측 좌석에 짐을 두며 두 자리를 차지하자 B씨는 “에티켓을 지켜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A씨가 고성을 지르며 위협했다는 게 B씨의 기억이다.
저격 글이 올라온 다음 날, A씨는 B씨에게 항의했다. 아침 통근버스에서 내린 직후 B씨를 쫓아갔다. A씨는 B씨에게 “불법 도촬한 사진을 지우지도 않을 것이냐”며 “사태의 심각성이 파악이 안 되나 보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B씨는 “지웠어요. 지웠다고. 미안하다”고 말한 뒤 자리를 벗어났다.
A씨는 B씨가 저격 글을 올린 게 맞다고 확신했다.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A씨, B씨 상대 1600만원 청구·형사 고소도
A씨는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약 1600만원을 청구했다. 이 사건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10살 어린 가해자(B씨)에게 조롱·욕설·협박을 당한 정신적 피해라고 주장했다. 또 더 이상 통근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교통비 지출, 출퇴근시간이 증가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이 부분을 B씨가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B씨가 자신을 동의 없이 촬영했다”며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과 함께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함으로써 초상권 및 사생활의 비밀,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B씨가 해당 블라인드 저격 글을 작성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가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2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민사 5-3부(부장 최지영)도 지난 8월 말 A씨 패소로 판결했다. 소송 비용도 A씨가 부담하도록 했다.
법원 “B씨가 게시물 올렸다는 사실 인정 부족”
2심 재판부는 “A씨의 신고로 B씨가 사내 윤리사무국, 정도경영팀에서 4회 조사를 받았다”며 “그 결과 ‘윤리규범 위반 없음’으로 조사가 종결됐다”고 짚었다.
이어 “블라인드에 해당 게시글을 올린 계정이 영구 정지된 상태였는데 회사 담당자 입회 하에 B씨가 자신의 계정에 로그인함으로써 해당 게시글을 올린 계정이 B씨의 계정이 아닌 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A씨는 “항의했을 때 B씨가 ‘지웠다’라고 말했다”며 작성자가 B씨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B씨는 ‘당시 A씨가 팔을 잡아당기고 계속 따라오며 길을 막는 행위를 반복해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사과했다’고 말했다”며 “이러한 B씨의 주장이 수긍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B씨가 A씨를 밀치고 위협하거나 2차 가해를 시도했다고 인정하는 것도 부족하다”며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서로 시비가 붙으면서 할 말일 뿐 B씨가 A씨를 일방적으로 모욕·협박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했을 때 재판부는 “B씨가 A씨를 몰래 촬영해 해당 게시물을 올리고 모욕·협박했음을 전제로 한 A씨의 손해배상 청구는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 판결은 지난 12일 확정됐다. 2심 판결에 대해 A씨가 불복하지 않았다.
형사 고소도 무혐의 종결
한편 A씨가 B씨를 고소한 사건도 무혐의로 종결됐다. 일산서부경찰서는 지난해 1월, B씨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했다. A씨가 이의 신청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도 지난해 2월, 불기소 처분했다. A씨가 재정신청을 했지만 이 역시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서울고법에서 기각됐다.
notstro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