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자급률 22.2%…밀 1.1%·옥수수 0.8% 불과
KREI 승준호 부연구위원 “물량 조달 실패까지 대비해야”
일본은 지난해 식량공급곤란사태대책법 시행
[헤럴드경제=김선국 기자] 세계 식량 위기가 발생하면 돈이 있어도 밀이나 옥수수 같은 곡물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전쟁이나 수출 제한으로 곡물 수입이 끊길 위험이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대책은 여전히 가격 상승에 대비하는 데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곡물 수입이 장기간 중단되는 상황까지 고려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식량안보 위기 시나리오와 대응 체계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식량 위기는 수요 증가나 기상이변으로 재고가 줄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는 형태가 주를 이뤘다. 가격 상승분을 부담하면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작동했다. 이번 연구는 승준호 KREI 부연구위원이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제분쟁과 각국의 수출 제한, 공급망 교란이 겹치면서 가격을 감당할 능력이 있어도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위험이 커지고 있다. 승 부연구위원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려면 가격 상승뿐 아니라 실제 물량 조달이 불가능해지는 상황까지 위기 관리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공급 차질에 특히 취약하다. 2023 양곡연도 기준 국내 곡물자급률은 22.2%에 그쳤다. 콩은 9.3%, 밀은 1.1%, 옥수수는 0.8%에 불과했다. 밀과 옥수수는 국내 소비 물량의 대부분을 해외 공급에 의존하는 구조다.
수입 규모도 상당하다. 2023년 밀·옥수수·콩 수입액은 8조8579억원으로 전체 농업생산액의 14.9%에 달했다. 국제 곡물 공급이 장기간 중단되면 가격 상승을 넘어 국내 식량 공급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국내 식량 위기 대응체계는 국제 곡물 가격을 중심으로 위험을 진단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정부는 국제 곡물 조기경보시스템과 위기 대응 매뉴얼을 운영하고 있지만 승 부연구위원은 물량 조달 실패를 동반한 장기 위기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생산기반 확충과 비축, 해외농업자원개발 등 관련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다만 실제 위기 발생 시 개별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장기간 공급 차질에 대응할 통합 시스템과 매뉴얼은 충분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해외에서는 식량 위기를 공급 물량 중심으로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4월 ‘식량공급곤란사태대책법’을 시행해 공급 차질 징후부터 심각한 식량 부족까지 단계별 대응체계를 마련했다.
일본은 심각한 식량 부족 상황에서 국민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급 열량을 고려한 국내 생산 확대와 제한된 식량의 배분·배급, 가격 안정 조치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식량의 가격뿐 아니라 실제 국민에게 공급할 수 있는 양을 위기 대응의 핵심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승 부연구위원은 한국도 식량 위기의 판단 기준을 국제 곡물 가격에서 실제 공급량과 공급 가능한 열량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장기간 수입이 중단되는 상황을 가정해 생산과 비축, 해외 조달, 국내 배분을 연계하는 범정부 대응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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