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한국인·창작자의 성장기

장애·비장애 구분에 뼈아픈 질문

“장애는 고유한 정체성이자 문화”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우리의 일상은 평범했다. 집은 언제나 돌아갈 곳이었고, 마를 틈이 없는 이야기의 원천이었으며, 내가 세상을 배운 첫 번째 장소였다. 그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인식한 것은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그제야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우리 부모가 다른 부모와 다르게 소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감독 겸 작가인 이길보라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CODA)’이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인 그는 수어와 음성 언어를 함께 배우며 ‘온전한’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작가와 동생을 “불쌍하다”고 단정 지어 말했고,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경험으로 쌓여 갔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본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 안과 밖으로 선을 긋고, 경계 너머의 삶을 쉽게 타자화한다. 하지만 저자의 신작 ‘경계에서 자란다’는 그러한 경계가 배제의 장벽이 아니라, 여러 세계가 만나 확장하는 공간임을 일깨운다.

저자는 일본인과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또 다른 경계를 마주하게 된다. 임신하면서부터 우려를 들어야 했고, 기형아 검사를 통해 장애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면 임신을 중지해야 한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장애인의 출산권을 박탈한 일본의 ‘구 우생보호법’ 재판 취재와 한국 ‘모자보건법’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장애인의 재생산권 제한 조항은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장애인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장애에 대한 불의와 차별은 장애인이 자신과 공동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면화하도록 만든다. 수어보다 음성 언어가 우월하고, 들리지 않는 것보다 들리는 것이 훨씬 낫다는 ‘오디즘(Audism, 청능주의)’이 농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문화적·언어적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상은 저자를 더 깊은 사회적 고찰로 이끈다. 아이가 눈빛과 손짓, 말소리를 동시에 받아들이며 세상을 익혀 나가는 순간은 언어나 소통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이와 함께 외출하고 보육 시설을 찾으면서 그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불편을 발견하고 돌봄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책이 펼쳐 보이는 세밀한 일상은 우리 사회의 ‘정상성’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드러낸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저자가 탐험하는 ‘경계’는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동적인 선이다. 장애를 극복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고유한 정체성이자 문화로 여기는 그는 겹겹의 경계 위에서 다층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며 영역을 넓힌다. 예리하지만 온기 있는 사유는 독자로 하여금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들리지 않음, 농(聾)은 사회에서는 장애이자 없어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구성원들에게는 자긍심과 문화입니다. 영화는 ‘어떤 문화 속에서 아이를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을 축으로 감독이자 주인공인 저, 이길보라가 전 세계 코다와 농인을 만나는 여정을 담아냅니다.”

저자는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아워 보디스’를 이렇게 소개했다. 소수자를 배척하기보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연대하며 함께 살아갈 환경을 모색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경계에서 자란다/이길보라 지음/문학동네


p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