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시인·번역가…어원 연구·재해석
문학장르·예술형식 넘나들며 작품 활동
“고전과 대화…현대문학 새 형식 창조”
수상 발표 후 국내 도서판매 204배 급증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예는 캐나다의 시인 앤 카슨에게 돌아갔다. 국내 서점가에서는 앤 카슨의 작품 판매량이 204배 급증하며 폭발적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는 ‘2026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앤 카슨을 선정하며 “그의 대담하고 창의적인 작품 세계는 고전 전통과 유쾌하게 대화하며 현대 문학에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5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앤 카슨은 1981년 고전학 박사 학위 논문인 ‘나는 증오하고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Odi et Amo Ergo Sum)’을 출간한 뒤 시 창작과 번역, 대학 강의 활동 등을 꾸준히 병행해 왔다. 그의 문학 작품은 대부분 언어학자의 단어에 대한 집착과 시인의 새로운 의미에 대한 열망이 교차하는 지점에 초점을 맞춘다. 카슨은 단어의 어원을 연구하는 것을 자신의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카슨은 1986년 장편 산문 ‘에로스, 달콤씁쓸한(Eros the Bittersweet)’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에로스가 시의 본질이자 원동력이라는 점을 탁월하게 고찰한 이 산문은 에로스를 고통과 달콤함이 결합된 감정으로 정의한 사포의 복합 형용사에서 중요한 영감을 얻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사이의 간극, 바로 그 거리가 에로스에 힘을 부여하고 시를 움직이게 한다.
카슨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끊임없이 등장시키고 충돌하게 함으로써 긴장을 구현하기도 한다. 예컨대 에세이 ‘잃어버리지 않은 것의 경제학’(1999)에서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와 현대 독일어권 시인 파울 첼란을 나란히 놓고, ‘쉬는 시간의 사람들’(2000)에선 역사가 투키디데스와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비교한다. 그는 예상치 못한 문학적 조합을 통해 서술적 자아에 얽매인 서정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현대 문학을 개척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고전시와 현대시 사이뿐 아니라 다양한 문학 장르와 예술 형식을 넘나드는, 유희적이고 아이러니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특히 1990년대에 나온 그의 작품은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중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1995)에 수록된 ‘유리 에세이’는 장르의 경계가 모호한 장편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1인칭 화자인 남편에게 버림받은 한 여성은 황량한 황무지에 있는 외로운 어머니를 찾아가는데,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에 등장하는 황무지와 등장인물의 내면 세계가 작품 속에서 정교하게 얽혀 있다. 작품은 운문 형식으로 쓰였지만, 슬픔과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장편 소설같은 느낌을 준다.
같은 시기에 발표된 ‘빨강의 자서전: 운문 소설(Autobiography of Red: A Novel in Verse)’(1998)은 고전 문학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인 스테시코로스가 쓴 날개 달린 붉은 괴물 게리온에 관한 시 구절을 출발점으로 삼아 현대적인 감각과 시대적 분위기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한때 권태를 자신의 최대의 적이라고 표현한 카슨은 과감한 유머와 재치로 권태에 대항한다. 2001년 출간된 ‘남편의 아름다움: 29개의 탱고로 이루어진 허구 에세이’는 기만적인 남편과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다툼을 그렸다. 또 다른 대표작 ‘녹스(Nox)’(2010)는 2000년 덴마크에서 사망한 오빠 마이클을 추모하며 쓴 글로, 로마 시인 카툴루스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형을 그리며 쓴 애가 ‘101’를 인용해 깊이를 더했다.
한편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국내 서점가에선 카슨의 관심이 높아지며 작품 판매량이 급증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수상자가 발표된 이달 8일 오후 8시부터 11일 오전 9시까지 앤 카슨 도서 판매량은 수상 직전보다 203.9배 늘었다. 특히 운문 소설 ‘빨강의 자서전’이 가장 많이 팔렸고, 이어 ‘녹스’, 여성 최초 T. S. 엘리엇 상을 수상한 ‘남편의 아름다움’ 등이 뒤를 이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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