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 ‘가능한 사랑’은 노동자계급의 부부와 최상류층 부부로 이루어진 40대 남녀 4명의 이야기다. 호석(설경구 분)은 대기업 해고노동자 출신이며 아내 미옥(전도연)은 파업·구속의 후유증을 깊게 앓는 남편과 어린 아들을 뒷바라지 하며 살고 있다. 예지(조여정)는 여성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막대한 유산상속자이자 투자펀드 전문가인 상우(조인성)를 남편으로 두고 있다. 두 부부는 호석의 전 직장동료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다. 예지가 파업 해고노동자들을 다룬 다큐를 촬영하기 위해 빈소를 찾아 카메라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큐 영화를 계기로 만난 두 부부는 촬영 뿐 아니라 부부 동반 식사와 여행 등 개인적인 친분을 이어가며 심리와 관계에서의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하 영화의 결말 및 주요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가능한 사랑’은 올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다. 이 감독은 지난 9월 13일 베네치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작품은 지난 9월 23일 일부 극장에서 개봉했으며 오는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된다. 약 20년간 단 7편의 장편영화만 내놓은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능한 사랑’은 관객에 따라 ‘최고작’은 아닐 수 있지만, 단연코 한국영화의 최고작 반열엔 들만한 영화다. 또 약 3시간에 육박하는 상영시간이 말하듯, 언제나 동시대에 대한 성찰과 발화(發話)로서 이 감독 영화 세계의 ‘종합’이자 ‘최신판’으로도 손색이 없다할 것이다.
‘가능한 사랑’은 계급의 문제를 매우 내밀한 개인적 관계와 심리에 투영함으로써 양극화 시대를 섬세하고 문학적인 정경으로 영상화한다. 훨씬 극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현대 자본주의를 풍자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나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와는 사뭇 다른 결이다. ‘기생충’이나 ‘어쩔 수가 없다’가 “약육강식의 무한경쟁터인 우리 세계엔 과연 비상구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가능한 사랑’은 “더욱 달라지고 멀어져만 가는 우리가 과연 서로를, 서로의 삶을, 서로의 욕망을, 서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묻는다.
이 감독의 영화에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카메라는 조심스럽고 어색하며 수줍어서 때로 감춰져야 한다. 또 세상의 빠른 속도에 발맞춰 가지 못한다는 ‘자의식’이 깃들었다. 이는 봉 감독이나 박 감독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거침없이 기록하고 상상하는 카메라의 위풍당당한 기세와는 다르다. ‘가능한 사랑’에서 관객에게 보이는 카메라는 예지의 다큐 카메라이며, 보이지 않는 카메라는 이 영화 자체, 바로 극영화 ‘가능한 사랑’을 찍은 카메라다. 이 감독 영화에서 카메라는 ‘가능한 사랑’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지켜보는 호석의 어린 아들, 조금 늦된 소년의 눈과 닮았다. 호석의 아들 ‘철’은 두 부부의 모임에서 늘 주변에 어색하게 자리를 차지하거나 우연히 상황을 목격하거나 아무도 모르게 눈 앞의 문을 닫는다. ‘영화는 이 세계를 진실하게 담아낼 수 있는가, 우리는 영화를 믿을 수 있는가, 우리는 영화로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 장면들에 담겼다.
‘가능한 노동’
4명은 일을 하고 영화는 그 장면을 계속 담는다. 호석은 자신의 일을 사랑해 아들의 이름을 ‘철’이라고까지 지은 용접공이다. 해고된 전 직장(SP중공업)에서도 용접을 했고, 재취업한 공장에서도 용접을 한다. 미옥은 결혼 전에는 봉제공이었고, 지금은(아마도 남편 실직 이후 취업했을) 마스크 제조공장에서 일한다. 코로나19 유행이 끝난 후부터는 공장에 사람이 줄었다. 집안이 할아버지 대부터 대단한 부자였던 상우는 국제적 기업 인수·합병 투자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늘 영어로 전화 통화를 하고, 휴대폰과 노트북에서 눈과 손을 떼지 않는다. 사모펀드에 의해 인수·합병되는 기업의 노동자 생사여탈은 바로 상우의 휴대폰과 노트북에서 결정된다. 간단히.
미옥이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는 장면은 예지가 국가 지원 심사를 위해 자신의 다큐 영화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신의 바로 다음에 나온다. 예지는 ‘사라지는 노동자, 노동은 곧 삶’이라는 주제로 다큐 영화 제작을 제안한다. 관객은 바로 다음 신에서 미옥의 일, 퇴근길에서마저 공장의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 노동의 구체성을 목격한다. 이후 예지는 미옥에게 다큐영화 출연을 제안하고, 남편 호석의 인터뷰도 부탁한다.
4명의 노동이 얽혀들어간다. 예지의 다큐 카메라 앞에 선 SP중공업 해고자가 회사를 인수해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사모펀드를 비난하는 대목에서 마침 상우가 아내를 찾아 촬영 현장을 방문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호석의 일, 기업을 싸게 사서 인원을 감축한 후 비싸게 되파는 것은 상우의 일이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해고노동자의 몫이고, 그것을 찍어 관객에게 ‘전시’하는 것은 다큐 영화감독의 숙명이다. 비평가 수잔 손택은 때로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통해 피사체(의 이미지)를 착취할 수 있다고 봤으니 상우-호석이 자본-노동의 ‘착취 관계’를 은유한다면, 예지-미옥은 촬영자-피사체의 ‘착취 관계’를 상징한다 할 것이다.
수잔 손택은 사진작가가 아무리 누추하고 비참하며 잔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해도 사진 속의 오브제는 늘 매혹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살한 동료의 장례식장에서 카메라를 켠 예지를 보고 호석이 “이게 재밌느냐, 재밌어 보이느냐”고 시비를 건다. 예지는 미옥이 공장에서 일하는 장면을 촬영하며 “더 재미있는 게 없느냐”고 묻는다. 미옥은 “재밌는 게 있다”며 안내한다. 인터뷰와 심리치료를 거부하던 호석이 마침내 카메라 앞에서, 더 할 수 없이 극적이고 폭발적인 모습으로, 자책과 울분을 토해낼 때 영화감독으로서 예지는 아마도 전율했을 것이다.
가능한 사랑, 가능한 이해
미옥은 상우를 처음 마주치는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결혼 반지를 떨어뜨리고, 상우가 자기 차를 뒤로 빼내 찾아준다. 미옥과 예지가 서로의 속마음과 결혼과정을 털어놓으며 친하게 되는 과정에서, 예지는 “상우가 젊은 시절 푼수같은 여자를 좋아했는데, 왜 나하고 결혼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미옥은 부부동반 첫 저녁식사 겸 술자리에서 상우를 보며 “스티브 잡스 같다, 나는 스티브 잡스를 참 좋아했다”고 너스레를 떤다. 반지를 떨어뜨린 미옥과 주워준 상우. 푼수같은 여자 미옥과 스티브 잡스같은 남자 상우. 이 감독은 이 계기를 차례로 보여주며 미옥과 상우 사이에 ‘성적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예지는 미옥을 거쳐 마침내 호석의 침묵을 깨뜨리고, 감정의 문을 연다. 호석은 인터뷰에 응하기로 하고, 상우-예지 부부의 별장 초대 여행에 응한다. 파업과 해고의 트라우마를 가진 상우와, 해고노동자에 대한 연민과 자아실현의 영화적 욕망에 경계없이 사로잡힌 예지, 아내에 대한 후원과 미옥에 대한 묘한 이끌림에 자기의 별장을 내주기로 한 상우, 남편에 대한 걱정과 상류층의 삶에 대한 동경이 혼재된 미옥, 이렇게 4명이 한 집에서 하루를 지내게 된다.
서로 다른 계급과 서로 다른 성(性), 서로 다른 노동, 서로 다른 욕망의 이들 4명은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고, 숲길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고,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아침을 함께 맞으며 과연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용납할 수 있을까. 이 관계는 지속가능하고, 다큐 영화는 완성 가능할까. ‘가능한 사랑’ ‘가능한 세계’는 우리 곁에 있을까. 이창동 감독은 의문문의 형식으로 관객에게 자신의 답을 보여준다.
여름 새벽 풋사과와 가을저녁의 달
이 감독은 호석과 미옥의 과거를 굳이 회상 장면으로 화면화한다. 상우와 예지의 과거는 오로지 대사로만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화는 호석과 미옥의 어리고 젊은 시절을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정경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그들의 참혹한 현실에 대한 보상 혹은 위로일지도 모른다.
미옥과 호석은 열 몇 살 때쯤 처음 만났다. 대기업 공장이 들어서기 전의 시골 마을의 여름날. 벌써 사내티가 물씬한 소년은 아직 채 익지도 않은 풋사과를 손으로 빡빡 닦아 소녀에게 내민다. 다음날 새벽 눈을 뜬 소녀에게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여름날의 풋사랑. 몇 년 후 일하러 서울 봉제공장에 취직한 미옥은 휴가 나온 군인 호석의 손에 이끌려 월미도를 간다. 앳된 두 청춘남녀는 말도 없이 가을밤 월미도에 뜬 달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렇게 사랑했고 그렇게 결혼했다.
별장에서 돌아온 호석과 미옥은 마당에 앉아 달을 바라보며 소주를 한잔 나눈다. 그 달은 별장에 있는, 별세계를 사는 상우-예지 부부에게도 뜰 것이다. 이십년전 청년 호석과 미옥은 월미도에서, 미국 유학생 상우-예지는 시카고에서 본 달처럼. 그들은 과연 같은 시간을 살아가며 같은 달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이창동 감독은 ‘밀양’에서는 마당에 내려 앉는 볕으로, ‘가능한 사랑’에선 마당에 뜬 달로 영화를 끝낸다.
이창동, 시대를 근심하는 영화
‘가능한 사랑’은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당시 사측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발해 노조가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였다. 옥쇄(玉碎)는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목숨을 건 투쟁을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도 ‘옥쇄파업’이라는 용어가 계속 등장한다. ‘초록물고기’에선 신도시 재개발의 문제, ‘박하사탕’에선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상흔을 다뤘던 이 감독은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를 빌어 지금, 우리의 시대를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 사건의 기록이나 역사의 후일담도, 노동과 자본 간 대립의 형상화가 아니다. 모두 하나의 달을 보고 있다고 믿었던 시대를 지나 누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시대, ‘전선’의 같은 편에서 연대하고 있었다고 믿었던 집단의 시대를 지나 서로 다른 감정과 욕망으로 분자화된 개인의 시대, 우리는 연결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가능한 사랑’은 ‘밀양’과 ‘시’로 구현됐던 ‘용서’라는 주제의 또 다른 변주다. ‘타자’에 대한 용서에서 끝내 ‘자기 용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대인의 욕망을 탐구하려는 노력으로는 ‘버닝’의 혼돈으로부터 한 걸음 전진이다. 예술이 현실을 재현하고 개인 사이의 이해를 매개하며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느냐라는 물음은 한번은 ‘시’에서의 시로, ‘가능한 사랑’에서 (다큐)영화로 거듭된다.
조인성과 조여정은 극중 설정으로는 설경구-전도연과 몇 살 차이의 같은 40대 또래이자 상반된 계급이지만, 관객의 느낌으로는 더 젊은 세대의 욕망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감독의 캐스팅도 그런 효과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둘 모두 캐릭터에 찰떡같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힘은 이 감독 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전도연과 설경구의 ‘명연’에 기댄다.
‘밀양’에서 유괴· 살해로 아이를 잃은 엄마로서 범인에 대한 분노와 종교적 용서 사이에서 절망을 연기했던 전도연은 ‘가능한 사랑’에선 해고노동자의 고된 현실에 대한 긍정과 상류층의 삶에 대한 욕망 사이에 선 인물을 ‘역할’이 아닌 ‘실존’으로 보여준다. ‘박하사탕’에서는 5·18 진압군의 폭력 가해자였던 설경구는 이번 작품에선 피해자가 된다. 한 번은 가해자로, 한 번은 피해자로 설경구는 자기 부정의 사선(死線)에 이른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국가와 집단의 폭력이 일으키는 공포, 그것이 일그러뜨리는 개인의 내면을 설득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가능한 사랑’에서 설경구와 전도연의 빛나는 풋사랑과 젊은 연애 시절은 아마도 ‘오아시스’에서 설경구와 문소리가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세상으로부터 끝내 이해받지 못했던, 평범하고 순수한 사랑일 것이다.
su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