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당국자 “러 정유시설 공격 중단 6차례 요구”
“젤렌스키, 상황 잘못 읽고 美와 관계 훼손”
젤렌스키 “러 경유 거래, 푸틴에 부당한 선물”
美 국무장관 “종전 협상 교착 땐 확전 위험”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경유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배경에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수차례 받아들이지 않자 러시아와 직접 거래에 나섰다는 것이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한 당국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측에 러시아 정유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멈춰달라고 최소 6차례 요구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젤렌스키가 상황을 잘못 읽고 있다”며 “정유시설 공격을 계속하면서 지난 6개월간 트럼프와 쌓아온 호의적 관계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 차이는 에너지 시설 공격을 중단하기 위한 조건에서 비롯됐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자국 발전소와 전력망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타격도 멈출 수 있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력시설 공격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동일한 문제로 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당국자는 우크라이나의 공습이 러시아의 연료 생산에 차질을 빚게 하면서 미국 내 에너지 가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크라이나는 최근 수개월간 러시아 정유시설을 집중 공격하며 러시아의 석유제품 생산 능력에 타격을 줬다. 러시아가 경유 수출을 제한하면서 이란 전쟁으로 공급 불안이 커진 국제 에너지 시장에도 부담이 가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고 러시아산 경유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계획에 따르면 러시아는 경유 30만톤 이상을 우선 공급하고 오는 11월 50만톤, 이후 100만톤을 추가 공급한다. 정유시설 가동 여건에 따라 300만톤을 더 공급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계획대로 이행될 경우 전체 공급 규모는 480만톤 이상에 달한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산 경유의 거래를 허용하기 위한 제재 완화 조치도 시행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러시아산 경유 거래를 허용하는 임시 일반면허를 발급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란 전쟁 여파로 경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물가 관리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종전 합의는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거래가 “공정하지도 정직하지도 않다”며 푸틴 대통령에게 부당한 선물을 안겨준 것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종전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으로부터 러시아산 경유 거래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는 스티브 윗코프 미국 대통령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와 유럽 주요국 관계자들이 종전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약 8시간 동안 진행된 협상에서는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안전보장과 영토 문제, 전후 복구 및 재건 지원 방안 등이 폭넓게 다뤄졌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 절차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관계 설정 등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측 관계자는 미국 협상단이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중단하지 않으면 정보 지원이 끊길 수 있다는 취지로 경고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미국 당국자는 이 같은 위협이 있었다는 의혹을 부인하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가 미국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번 경유 거래와 별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윗코프 특사와 쿠슈너는 다음 주 러시아 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잇달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단기간 내 협상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체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영토 양도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종전 협상의 교착이 지속되면 자칫 전쟁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교착 상태가 끝나는 또 다른 방식은 확전”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접한 나토 회원국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루비오 장관은 “우리는 이 분쟁에 군사적 해결책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며 외교적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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