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서 작심 발언 이어간 조희대 대법원장
청와대도 기존 입장 고수…공백 사태 길어질듯
지난해 대법관 1명당 4084건 처리…부담 가중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대법관 공백 장기화 사태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청와대가 대법관 재제청 문제에 대한 기존의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 대법원장은 이례적으로 국정감사장에서 적극 발언하며 자신의 제청으로 대법원장의 헌법상 권한과 의무는 끝났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청와대 역시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거듭 밝혀 양측이 접점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대법원장은 전날(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대법관 제청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국감 시작 후 삼권분립을 언급하며 제청 관련 증언을 거부한다고 했지만, 질의가 본격화되고 관련 질의를 받자 작심한 듯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 자리에서 헌법 104조를 언급하며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 절차, 대통령의 임명 절차에 전혀 관여할 수 없듯이, 국회와 대통령도 대법원장의 제청에 전혀 관여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장은 제청으로서 모든 헌법상의 권한과 동시에 의무가 다 끝났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장과 대통령 사이에 대법관 후보자를 사전 협의해 온 관행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헌법을 언급하며 반박했다. 조 대법원장은 그동안의 협의는 대법관의 신속하고 원활한 임명을 위해 이뤄진 것일 뿐이라며 “협의를 안 해도 헌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요구하는 재제청 절차에 응할 수 없고, 제청 과정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청와대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앞서 조 대법원장이 8월 18일 손봉기 후보자(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서면으로 제청하자, 청와대는 같은 달 28일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인 서면 제청”이라며 재제청을 요구했다. 조 대법원장이 이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뒤에도 청와대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은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신속한 재제청을 거듭 촉구했다. 전날 조 대법원장의 국감 발언 이후에도 청와대는 입장 변화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청와대는 별도 입장이 없고 기존에 이미 대법관 제청 및 임명에 관해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했다.
양측이 제청권과 임명권이라는 헌법상 권한을 각각 내세우며 맞서는 만큼,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조 대법원장이 자신의 제청으로 헌법상 권한과 의무가 이미 끝났다고 못 박으면서 재제청을 통한 타협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대법관 공백이 길어질수록 대법원의 사건 처리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대법관 공백의 장기화는 이미 대법원 업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6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5년 대법원이 처리한 총 본안사건 수는 4만9009건이었다. 전원합의체 선고에만 참여하는 대법원장 및 재판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1인당 연간 약 4084건의 사건을 처리한 셈이다.
대법원은 대부분의 상고심 사건을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3개의 소부에서 처리한다. 김성수 대법관 취임 이후 지난달 19일 기준 대법원 소부는 1부와 2부에 각각 4명씩 대법관이 구성됐지만 3부의 경우 오석준·엄상필·이숙연 대법관 3명으로만 구성됐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부(部)에서 사건을 심리할 수 있지만 대법관 공백만큼 다른 대법관이 처리해야 할 사건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모두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심리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은 현재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혐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심리하고 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혐의 사건도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상태다. 전원합의체의 경우 합의 과정에서 만장일치거나 압도적으로 표결이 되지 않으면 공석을 두고 결론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표결을 자제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조 대법원장도 대법관 공백 장기화에 대한 책임은 인정했다. 그는 국감에서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이 온전한 구성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공백을 해소할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실제 법사위 의원들이 향후 공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물었지만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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