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부부나 연인이 서로의 소비 습관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공동 생활비를 함께 부담하면서도 개인 계좌를 따로 관리하는 커플들에게 일주일간 지출 내역을 기록하게 한 결과, 예상하지 못했던 소비와 돈에 대한 가치관 차이가 드러났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영국과 스페인에 사는 커플 5쌍에게 일주일 동안 각자 사용한 돈을 기록한 뒤 상대방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대부분 공동 생활비를 별도로 마련하면서 개인 소득과 소비는 각자 관리하는 커플이었다.
지출 내역을 확인한 뒤 갈등을 만든 것은 단순한 소비 금액만이 아니었다. 함께 돈을 모으기로 한 목표가 있는데 고가 물품을 구입하거나, 상대방에게 말하지 않은 소비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서로의 돈에 대한 기준 차이가 나타났다.
입양 준비하면서 5800파운드 시계 구입…“돈보다 의미가 문제”
가장 큰 갈등을 겪은 커플은 런던에 거주하는 제이크와 라이언이었다.
두 사람은 주택담보대출과 생활비를 절반씩 부담하고 매달 각각 800파운드를 공동계좌에 넣고 있었다. 향후 아이를 입양하기 위한 자금도 모으고 있었다.
평소 고급 시계를 좋아했던 제이크는 지출 기록 기간 중 5800파운드짜리 오메가 시계를 무이자 할부로 구입했다. 최근 3년 동안 시계 컬렉션에 쓴 돈만 1만5000파운드가 넘었다.
라이언은 시계 구입 사실을 확인한 뒤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문제는 시계 자체보다 두 사람이 합의한 장기 목표와 맞지 않는 소비라는 점이었다. 제이크는 주택비와 저축을 정상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만큼 개인 소득으로 원하는 물건을 사는 것까지 제한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두 사람의 차이는 성장 환경에서도 나타났다. 라이언은 소비에 신중한 가정에서 자란 반면 제이크는 부모에게 투자와 자산 관리 교육을 받았고 주택 구입 때도 가족의 지원을 받았다.
같은 소득을 벌고 같은 집에 살더라도 ‘얼마까지 개인 돈으로 자유롭게 써도 되는가’를 두고 기준이 달랐던 셈이다.
미용비 675파운드 vs 몰래 피운 담배…작은 지출까지 공개하자 충돌
노샘프턴에 사는 레이첼과 코조는 소비 규모보다 서로 몰랐던 지출이 문제로 떠올랐다.
레이첼은 일주일 동안 1260파운드 이상을 사용했다. 하루에는 피부 시술과 보톡스, 필러 등에 675파운드를 지출했다. 체중 감량 약과 미용 관련 소비 등으로 쌓인 개인 카드 빚도 약 2500파운드라고 밝혔다.
코조는 미용에 이렇게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 몰랐다며 해당 돈을 주택 개선 등에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레이첼에게도 처음 알게 된 지출이 있었다. 코조가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담배를 피우면서 일주일에 약 25파운드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첼은 외모 관리비는 자신을 위해 필요한 소비라고 설명하면서 담배와 건강 관련 기기에 동시에 돈을 쓰는 코조의 소비를 지적했다.
브라이턴에 사는 60·70대 커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다. 마사는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250파운드짜리 명품 가방을 충동적으로 구입했고, 게리는 미뤄둔 과속 벌금이 250파운드까지 늘어난 사실을 공개했다.
평소 상대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았던 쇼핑과 벌금, 전자담배, 커피 같은 소비도 일주일치 금액으로 모아 놓자 서로 예상했던 수준과 차이가 났다.
소득 많아도 소비 기준 달라…“돈보다 가치관이 문제”
소득 격차가 소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사례도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라라와 맥스는 두 사람 모두 비교적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었지만 라라의 수입이 훨씬 많았다. 자동차 구입 등에서도 라라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했다.
라라는 마사지와 미용 관리, 의류와 집 꾸미기 등에 적극적으로 돈을 썼다. 맥스는 일부 소비를 과하다고 봤다. 라라는 공동생활에 필요한 가구 등을 구입한 맥스 역시 적지 않은 돈을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이 느끼는 차이는 지불 능력보다 소비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한쪽은 충분히 벌고 저축하고 있다면 원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봤고, 다른 한쪽은 경제적 여유가 있더라도 과시적으로 보이는 소비에 부담을 느꼈다.
돈 문제로 갈등하는 커플에게 소비 금액보다 그 소비에 담긴 가치관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가디언과 인터뷰한 심리치료사 로라 듀스터는 한쪽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출을 다른 쪽이 반복할 경우 행동 자체보다 그 밑에 있는 가치관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지출 공개에 참여한 커플들도 대부분 공동계좌와 개인계좌를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생활비와 주거비, 여행비처럼 큰 항목은 합의하면서도 개인 계좌에서 나가는 취미·쇼핑·미용비까지는 자세히 공유하지 않았다.
일주일치 소비를 공개하자 고가 시계처럼 큰 지출뿐 아니라 담배와 커피, 옷처럼 반복되는 작은 지출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상대의 소비액을 확인하는 과정은 결국 두 사람이 돈을 어디에 쓰고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는지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가디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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