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헌법적 근거 없다”…靑 “헌법 위배 인식”

200일 넘긴 노태악 후임 공백…상고심 차질 우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5부 요인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5부 요인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면서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사법부와 여권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구에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인 반면, 청와대는 재제청 거부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 헌법을 거론하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노태악 전 대법관의 지난 3월 퇴임 이후 2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대법관 공백 사태도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대법원장은 전날 대법원 공지를 통해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8일 청와대가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신 다른 후보자를 제청해 달라고 요구한 지 25일 만이다.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써 한다”며 “이번 재제청 요청 관련 문서로는 2026. 8. 28. 자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이 있을 뿐인데, 거기에는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달리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그러므로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했다.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 직후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대통령의 제청 반려에도 불구하고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대법관 후보자를 재제청하지 않겠다는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후 일각에선 청와대가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권한쟁의심판은 헌법상 국가기관 간에 권한의 존재 여부 또는 범위에 관한 다툼이 발생한 경우 헌재가 유권적으로 심판하는 제도다.

그간 법조계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요구대로 기존 추천 후보군에서 손 부장판사를 제외한 다른 후보자를 제청하거나, 추천위를 새롭게 구성해 인선 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밟는 방안 중 선택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 요구 자체에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두 방안 모두 당장 추진될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노 전 대법관 후임 자리가 공석인 상황은 더욱 길어질 전망이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제청·임명 절차를 둘러싼 헌법 해석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만큼 갈등이 조 대법원장의 퇴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조 대법원장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대법관 공백의 장기화는 이미 대법원 업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발간된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4년 대법원이 처리한 총 본안사건 수는 5만4951건이었다. 전원합의체 선고에만 참여하는 대법원장 및 재판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1인당 연간 4579건씩 처리한 셈이다.

대법원은 대부분의 상고심 사건을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3개의 소부에서 처리한다. 김성수 대법관 취임 이후 지난 19일 기준 대법원 소부는 1부와 2부에 각각 4명씩 대법관이 구성됐지만 3부의 경우 오석준·엄상필·이숙연 대법관 3명으로만 구성됐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부(部)에서 사건을 심리할 수 있지만 대법관 공백만큼 다른 대법관이 처리해야 할 사건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대법원장 및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들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도 굵직한 사건들이 쌓이고 있다. 대법원은 현재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혐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심리하고 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혐의 사건도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상태다. 전원합의체의 경우 합의 과정에서 만장일치거나 압도적으로 표결이 되지 않으면 공석을 두고 결론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표결을 자제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y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