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인공지능(AI) 투자가 매섭다. 중동 최대 규모의 기술 행사 가운데 하나인 ‘2026 리프(LEAP)’가 리야드에서 열린 가운데, 행사 첫날 발표된 투자·파트너십 규모만 150억달러를 넘어섰다. 현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개막식에 등장한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의 모습조차 수많은 인파 속에서 까치발을 들어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당초 올해 LEAP 행사는 4월 중순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미·이란 전쟁의 여파로 행사가 연기되면서 올해 행사 개최 자체가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LEAP 행사에 대한 사우디의 의지는 확고했고, 9월 초로 연기된 행사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LEAP 행사의 주인공은 단연 휴메인(HUMAIN)이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AMD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참여한 행사였지만, 이들 기업의 상당수가 휴메인과의 협업 소식을 발표했다. 어느 부스를 가든 휴메인 코너를 만나볼 수 있었다. 2025년 5월 설립된 휴메인은 사우디 국부펀드(PIF) 산하 자회사로, 이사회 의장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맡고 있다. 최고경영자는 전 아람코 디지털 CEO인 타렉 아민으로, 휴메인은 ‘비전 2030’에 따른 경제 다각화를 위해 사우디의 국가 AI 역량을 통합하고자 설립됐다.
설립 직후부터 휴메인은 엄청난 투자 규모로 주목받았다. 엔비디아, AMD, AWS, 퀄컴 등 글로벌 기업들과 체결한 계약과 파트너십 규모만 약 230억달러에 달했다. 자체 기술로는 아랍어에 특화된 AI 모델 ‘알람(ALLAM) 34B’와 이를 기반으로 한 ‘휴메인 챗(Chat)’을 공개했고, 이후 기업 업무에 AI를 접목하는 ‘휴메인 원(ONE)’도 선보였다.
다만 아직 휴메인의 자체 AI 모델과 서비스가 오픈AI나 구글, 앤스로픽 등 글로벌 선두 기업의 범용 AI 서비스와 대등한 수준의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시장에서 얼마나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지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이번 LEAP 행사를 통해 확인한 휴메인의 전략은 이제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사우디의 목적은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데 있지 않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AI 생태계의 허브가 되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1.9GW 규모의 데이터센터 용량을 확보하고, 클라우드 리전을 구축하는 한편 개방형 개발자 육성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번 LEAP에서 가장 화제가 된 발표 역시 휴메인에서 나왔다. 어플라이드 인튜이션(Applied Intuition)과의 협업을 통해 자율주행 트럭을 도입하고, 2030년까지 수천 대를 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사우디의 물류 산업을 바꾸고 항만, 광업, 로보택시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전통적인 에너지 강국인 사우디가 이제는 그 강력한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사우디는 풍부한 천연가스와 태양광 자원, 넓은 부지와 막대한 투자 여력을 갖춘 데다 발전과 송전망, 데이터센터를 국가 전략 아래 함께 추진할 수 있다.
사우디가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세계 3대 AI 강국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중동의 AI 허브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 속에서 사우디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에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고자 하는지 생각해 볼 때다.
장성원 코트라 리야드 무역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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