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이농·관행적 임대차 농지은행 위탁하면 처분 유예

신고·허가 안 받은 시설도 부담금 내고 사후 추인…농지법도 전면 재검토

투기·농업진흥지역 중대 불법전용은 처분명령·원상회복

송미령(왼쪽에서 두번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지 전수조사 추진방향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송미령(왼쪽에서 두번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지 전수조사 추진방향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김선국 기자] 허가 없이 다른 용도로 사용해 온 농지라도 투기나 중대한 위반이 아니라면 합법화할 수 있는 길이 38년 만에 열린다. 관행적으로 빌려주거나 농사를 짓지 않고 있는 농지도 곧바로 처분하지 않고 정상화할 기회를 준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올해 안에 특별조치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1일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농지 전수조사 추진상황 및 향후 조치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농지 전수조사에서 확인되는 위반을 일률적으로 처분하지 않고 투기·중대 위반과 농촌 현장에서 발생한 관행적·경미한 위반을 구분해 처리하기로 했다.

농지 전수조사는 전국 농지의 소유·이용 실태를 파악하고 농촌 현실에 맞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 처음 실시됐다. 행정정보와 항공사진을 활용한 기본조사는 지난 5~7월 마쳤고, 8월부터 조사원이 현장을 확인하는 심층조사가 진행 중이다. 아직 조사 결과나 위반 여부가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 위반 여부 확정이나 처분의무 통지 등 사후 절차는 2027년 이후 가능하다.

정부가 엄정하게 대응하기로 한 대상은 투기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거짓 영농계획서를 제출해 농지를 취득한 뒤 무단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한 경우, 농업법인이 농지를 취득한 뒤 부동산업을 한 경우, 경매 등을 통해 농지 공유지분을 취득한 뒤 무단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를 야적장이나 야영장 등 비농업용 시설로 불법 전용한 행위도 중대한 위반으로 본다. 투기로 확인되면 처분명령을 내리고, 농업진흥지역 내 중대한 불법 전용에는 원상회복명령 등을 부과할 방침이다.

윤원습 농식품부 농업정책관은 “거짓·부정 취득인지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각종 정황을 종합해 행정처분을 내리고 이후 지방정부의 청문 절차에서 당사자가 소명하면 그 내용을 토대로 판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투기가 아닌 농촌의 관행적 위반에는 정상화할 기회를 준다. 상속·이농으로 보유하게 된 농지가 소유 한도인 1헥타르(ha)를 초과한 경우나 농업인끼리 편의상 서로 농지를 바꿔 경작하는 경우, 한 사람이 마을의 여러 농지를 모아 경작하는 경우 등이 대상이다. 농지은행에 임대 위탁하면 기존 실경작자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우선 임대하고 처분을 유예할 방침이다.

윤 정책관은 “기존 임대차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농지은행을 통해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임대차 관계로 전환해 주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등기 상속 등으로 소유자가 불분명한 농지는 대리경작자를 지정하거나 재산세 납부자 등이 대표로 농지은행에 위탁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휴경 농지도 곧바로 처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고령 농업인이나 상속·이농자가 휴경 중인 농지, 직접 경작하기 어렵지만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방치된 농지 등은 먼저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자진 정비 기회를 준다. 직접 정비하기 어렵다면 농지은행에 관리권을 맡겨 처분을 유예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맹지나 경사지 등 경작이 어려운 농지는 농지은행이 필요한 경우 복구해 임대하거나 다른 활용 방안을 찾는다.

임차농이 갑자기 농지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임대차 특별 정비기간도 오는 11월 15일까지 연장한다. 3년 이상 소유한 농지는 이 기간 농지은행에 임대 위탁을 신청하면 보완조사에서 제외하고 임대차를 적법하게 처리한다.

농지 전수조사 이후 위반 유형별 조치 방향

불법 전용 농지에는 38년 만에 양성화 기회를 준다.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 훼손 등 중대한 위반이 아니라면 전용 신고나 허가를 받지 않아 불법 상태로 남은 농업용·공공·기타 시설에 사후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농지보전부담금을 부과한 뒤 요건을 충족하면 사후 전용을 승인해 합법적인 상태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양성화 대상은 농지 전수조사가 시작된 지난 5월 18일 이전 완공됐고 농지법과 다른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시설로 검토되고 있다. 다만 비닐하우스나 버섯재배사 등으로 위장해 실제로는 식당을 운영하거나 태양광발전에만 사용하는 등 법 위반 의도가 명백한 경우에는 본래 용도로 돌려놓도록 자진 정비기간을 준다.

지목은 전·답이지만 오랫동안 나무가 자라 사실상 임야가 됐고 농지로 복구할 실익도 낮은 토지는 실제 상태에 맞게 지목을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윤 정책관은 “지목변경이 곧바로 개발행위 허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 같은 처분 유예와 불법 전용 사후 승인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특별조치법을 제정한다. 올해 말까지 제정안을 마련해 국회 의결을 추진하고 2027년 1분기 시행한다는 목표다. 이어 내년 2분기에는 농지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윤 정책관은 “현행 농지법에는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위반사항에 대해 처분을 경감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특별조치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1996년 제정된 농지법으로는 현재 상황을 충분히 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며 “제정 이후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농지법 전반을 재검토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농지은행의 역할도 확대한다. 고령 농업인이 농사짓기 어려운 농지를 매입하거나 위탁받아 청년농과 전업농에 공급한다. 소규모로 흩어진 농지는 공공 매입과 교환·분합 등을 통해 집적·규모화한다. 정부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맞춤형 농지지원 예산을 올해 1조8077억원에서 내년 2조2617억원으로, 농지연금 예산은 2766억원에서 3444억원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한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지 전수조사는 우리 농지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농지제도를 현실에 맞게 바꾸어 농업·농촌을 활성화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선의의 농업인·국민들에게는 불이익·불편이 없도록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말고 조사원들에게 적극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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