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 확인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독자적 기본권”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김상환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소원 선고를 앞두고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김상환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소원 선고를 앞두고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헌법재판소가 외국인에 대한 출생등록 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국회의 입법부작위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선고했다.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도 국적이나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대한민국법에 따라 출생등록될 권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헌재는 27일 재판관 9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외국인의 국내법상 출생등록에 관해 규정하지 않은 입법부작위가 위헌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헌재가 국회의 ‘진정입법부작위’를 위헌으로 판단한 것은 헌재 설립 이후 두 번째이자 약 30년 만이다. 진정입법부작위란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는 사항에 관해 전혀 입법을 하지 않아 입법행위의 흠결이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날 선고된 헌법소원 사건은 베트남 국적의 미등록 외국인 남성 A씨와 국내에서 태어난 A씨의 자녀 B가 청구했다. A씨 및 A씨의 아내이자 B의 어머니인 C씨는 각각 비전문취업(E-9) 체류자격으로 국내에 입국했지만 체류기간을 넘겨 미등록 상태가 됐다고 한다. B는 2019년 4월 국내에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법에 따른 출생등록을 하지 못했고, 이듬해 베트남법에 따라 출생등록됐다. 이들은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의 출생신고 제도를 두지 않은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지난 2022년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는 ‘출생 후 아동이 보호를 받을 수 있을 최대한 빠른 시점’에 아동의 출생과 관련된 기본적 정보를 국가가 관리할 수 있도록 등록할 권리”라며 “아동이 사람으로서 인격을 자유로이 발현하고 부모와 가족 등의 보호 하에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독자적 기본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일반적 인격권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로, 해당 아동이 내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여부에 따라 그 보장 여부를 달리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또한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동이 어떠한 이유로든 출생등록으로부터 배제돼 우리나라에서 서류상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 상대적으로 학대당하거나 유기되기 쉽고, 다른 범죄에 노출되더라도 그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적을 떠나 모든 아동은 그 자체로 소중한 생명이자 독자적인 인격체”라고도 했다.

아울러 “아동은 자신이 태어나는 장소나 나라,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으므로 아동이 태어난 즉시 출생지 관할 국가가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기록해 주는 것은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헌재는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에 대해서도 국적이나 체류자격, 본국에서의 출생등록 여부와 관계 없이 국내법에 따라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할 입법의무가 국회에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앞서 지난 2023년에도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독자적인 기본권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번에는 더 나아가 출생자가 대한민국 국민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에게도 해당 기본권이 보장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번 결정은 국회가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음에도 법률을 만들지 않은 ‘진정입법부작위’를 헌재가 위헌으로 확인한 두 번째 사례다. 첫 사례는 1994년 사설철도회사 재산 수용에 따른 보상에 대한 입법을 장기간 마련하지 않은 사건으로, 이번 결정은 약 30년 만에 나온 진정입법부작위 위헌 결정이다.


y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