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전국 17.7%·분당 최고 20.2%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컨퍼런스홀에선 전공의 사직서 제출을 가르는 투표가 한창이다. 같은 시각 수술대 위엔 여덟 살 소아 환자 이현아(이채유 분)가 누워 있다. 혈관과 여러 장기로 번진 희귀 종양을 떼어내려면 장기 여섯 개를 몸 밖으로 꺼내 하나하나 손본 뒤 되돌려 넣어야 한다. 집도의 계수정(김지원 분)이 동료들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였지만, 나서는 의사는 없었다. 계수정을 아니꼽게 대하던 ‘교수님’들은 조금 늦었지만 ‘의사의 무게’를 절감한다. 투표장에서 “지금 이 병원에선 가장 거대한 수술실에 가장 작은 아이가 수술받고 있다”며 “진짜 의사라면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부승권(손현주 분) 병원장이 이 말을 남기고 떠나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가 의료 파업 서사의 큰 고비를 넘겼다. 8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7일 방송된 10회 시청률은 전국 가구 기준 17.7%, 분당 최고 20.2%를 기록했다. 직전 9회(15.3%)보다 2.4%포인트 오른 수치다. 20~49세 시청률은 평균 7.2%로, 5주 연속 한 주간 방송된 전 채널 프로그램 가운데 1위를 지켰다.
‘닥터X’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 파업을 극 한복판에 들인 건 지난달 31일 방송된 8회부터다. 7회 말미 정부의 증원 결정 뉴스로 운을 뗀 드라마는 8회에서 구서대병원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 의국이 텅 비는 상황을 그렸다. 2024년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수련병원을 떠났던 의정 갈등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의사면 수술에 붙어”…한 사람의 수술실
지난달 31일 방송된 8회의 수술실은 계수정 한 사람의 무대였다. 의국이 비자 계수정은 계약서에 넣어둔 ‘하고 싶은 수술을 하게 해준다’는 조항을 꺼내 들고, 보조 없이 홀로 집도하는 ‘솔로 서저리’를 선언했다. 항암 치료를 여덟 차례나 받은 열 살 소아암 환자 유가을(기소유 분)을 살리기 위한 12시간 연속 수술이었다. “우리도 의사야!”라고 외치는 배흥곤(이성욱 분)에게 돌아온 대답은 짧고 차가웠다. “의사면 붙어. 의사면 수술에 붙으라고.”
드라마는 파업에 나선 쪽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았다. 의국에 남은 의사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가 먼저라고 맞서자, 파업에 동참한 전공의들은 자신들이 쌓아온 노력을 폄훼하지 말라고 받아쳤다. 배흥곤은 “나는 파업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면서도 파업에 나선 후배가 이 수술을 지켜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저울은 한쪽으로 기운다. 파업을 택한 전공의들의 사정은 대사 몇 줄로 스쳐 가고, 카메라는 수술실에 남은 이들의 땀과 결단을 오래 붙든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며 손가락질하는 동기들을 향해 박태경(김우석 분)은 “밥그릇 뺏기기 싫어서 그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 살리겠다고 병원에 남은 사람들을 배신자로 몰아?”라고 소리쳤다. 계수정과 수술을 치른 도윤식(김영민 분)은 “파업 같은 거 갑자기 초라해지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현실의 의정 갈등 한가운데 있던 ‘병원에 남은 이들을 향한 낙인’을 정면으로 건드린 대목이다.
투표장을 나온 여덟 명…‘혼자’에서 ‘함께’로
9·10회에 이르러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옮겨 간다. 9회의 계수정은 이현아의 수술을 앞두고 고개를 숙여 수술팀을 청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병원장 부승권(손현주 분)은 윤리위원회 승인이 먼저라며 버텼다. 전공의 사직서 결의 투표가 열리던 시각, 도윤식이 회의장을 빠져나와 일손이 모자란 수술실로 향했다. 환자의 혈압이 곤두박질친 순간엔 장희숙(이정은 분)이 수술복 차림으로 들어섰다. 의사 용역 소개소 소장으로만 알려졌던 장희숙이 스스로를 외과의라 밝혔고, 계수정은 장희숙을 스승이라 불렀다.
10회에선 부승권과 배흥곤마저 회의장 대신 수술실을 택했다. “이것이 제 선택입니다.” 병원장의 한마디와 함께 계수정, 장희숙, 부승권, 박태경, 조원진(이진희 분), 도윤식, 배흥곤, 김성진(허준석 분)까지 병원장부터 인턴에 이르는 여덟 명이 한 수술대를 에워쌌다. 장기를 몸 밖으로 꺼내 종양을 떼어내고 다시 이식하는 초고난도 수술 끝에 도윤식이 터뜨린 외침은 “현아야, 너는 살았어!”였다.
1~8회가 ‘실패하지 않는’ 계수정 한 사람의 실력으로 부조리를 베어내는 이야기였다면, 10회는 실패를 두려워하던 의사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결단하는 이야기였다. 파업이라는 집단의 선택 앞에 드라마가 내놓은 답 역시 또 다른 집단, 수술대를 둘러싼 ‘원팀’이었다.
승리는 길지 않았다. 목련회는 수술의 위험성과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승인 여부, 병원이 허락하지 않은 외부 의료 인력의 참여를 문제 삼아 구서대병원 의료진을 징계하고 계수정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징계는 이현아의 어머니와 장희숙이 법적 대응에 나선 뒤에야 보류됐다.
15%대로 내려앉았다 반등…숫자로 본 파업 회차
파업 회차 동안 시청률은 크게 출렁였다. 첫 회 11.4%로 출발한 ‘닥터X’는 4회 18.5%,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의 사연을 다룬 6회 19.5%로 가파르게 올랐다. 이후 7회 16.5%, 8회 15.6%, 9회 15.3%로 세 회 연속 내려앉았다. 자체 최고치에서 4.2%포인트가 빠진 구간이 고스란히 파업 회차와 겹친다.
요일별 흐름에서도 변화가 읽힌다. 금·토 연속 편성인 ‘닥터X’는 그간 토요일 방송분이 금요일보다 꾸준히 높았다. 2회(14.9%)는 1회보다 3.5%포인트, 4회(18.5%)는 3회보다 3.4%포인트, 6회(19.5%)는 5회보다 2.0%포인트 높았다. 이 공식이 처음 깨진 것이 파업이 시작된 8회다. 토요일 방송인데도 금요일 7회보다 0.9%포인트 낮았다. 공식은 8인의 수술이 마무리된 10회에서 되살아났다.
하락의 원인을 하나로 짚기는 어렵다. 5·18 회차를 둘러싼 방영 중단 청원 논란과 의정 갈등이라는 민감한 소재가 잇달아 겹친 시기였다. 다만 파업 서사의 절정인 10회에서 분당 최고 시청률이 20%를 넘어선 만큼, 논쟁적인 소재가 시청자를 밀어냈다는 해석만으로는 이 곡선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의료계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김대중 아주의대 교수(내과)는 SNS에 올린 ‘닥터X에 바라는 다섯 가지’에서 전공의 블랙리스트 문제를 감출 필요는 없지만, 전공의들이 왜 수련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는지, 일방적인 정책 추진과 수련 환경에 대한 절박함도 함께 비춰야 한다고 짚었다. 악역 의사보다 수가와 소송 위험, 인력 공백 같은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 달라는 주문이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8일 페이스북에 “아무리 표현의 자유라지만 의사 집단을 저렇게 매도해서 남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적었다.
종영까지는 두 회가 남았다. 10회 말미, 박태경이 잠든 김승효(전국환 분)의 얼굴을 베개로 짓누르는 충격적인 장면이 이어졌고, 해외 의료봉사단 ‘하얀 날개’를 이끄는 김승효는 계수정을 “닥터X”라고 부르며 감춰진 과거의 문을 열었다. 남은 이야기가 답해야 할 질문은 그 이름의 정체다. 9회에서 장희숙은 그 이름을 이렇게 정의했다. “환자의 생명과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맡은 수술에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닥터X라면 계수정은 닥터X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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