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티스트 조성현·바수니스트 조광현 형제
5kg 바순 안겨준 형, 묵묵히 스며든 동생
치열했던 베를린 원룸에서 든든한 음악 동료
악보 너머 묶인 형제의 시간, 끝나지 않는 변주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게 왜 안 돼?”
동생이 바순을 붙들고 있으면 형은 어김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와, 제 악기로 동생이 막힌 대목을 불었다. 악기는 달랐지만, 거짓말처럼 음표는 음악이 됐다. “그땐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어요. 그러곤 또 기가 막히게 연주를 하더라고요.” (조광현) ‘레슨 아닌 레슨’이 끝날 무렵, 마무리는 언제나 ‘동생의 눈물’이었다. 동생이 악기를 시작한 이후 내내 이어온 ‘형제의 풍경’이다.
플루티스트 조성현(36·연세대 교수)과 바수니스트 조광현(29). 일곱 살 터울의 두 사람은 클래식 음악계의 보기 드문 ‘관악 형제’다. 얼굴, 목소리는 물론 말투까지 빼닮아 동료들조차 전화 통화 때마다 헷갈릴 정도다. 관계를 숨겨오던 둘의 사이가 드러난 것은 올여름이었다. 지난 8월 더하우스콘서트의 줄라이 페스티벌에서다. 형제는 이 축제를 통해 처음으로 실내악 무대에 나란히 섰다.
객석과의 거리가 고작 1m인 무대. 풀랑 ‘육중주’ 연주에 나란히 선 둘은 순한 눈과 미소가 숨길 수 없는 ‘형제미’를 뿜어냈다. 멤버를 꾸린 건 형이었지만, 주최 측조차 그때서야 형제라는 걸 알았다. 조광현은 한 해 전 같은 축제에 이미 출연했는데도, ‘조성현의 동생’이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따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어차피 다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광현) 동생의 이야기를 듣던 형은 난데없이 ‘자수’부터 한다. “데리고 살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줘서요. (웃음)” (조성현)
한자리에 앉은 형제의 이야기는 ‘고발’부터 시작됐다. 형 조성현이 “예전엔 제가 피드백을 하면 굉장히 방어적이었다”고 하자, 동생 조광현은 “마음이 좀 닫혀 있었나 보다”며 멋쩍게 웃는다. 동생을 향한 감정은 여러모로 ‘부모’와 ‘스승’의 마음이다. 진심 90%에 농담 10%를 담아 조성현은 “제 이 친구를 키웠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말하자, 동생이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다. “맨날 키웠다고 해요. (웃음)”
“바주카포처럼 멋있었어요”…형이 골라준 악기
음악은 늘 함께했지만, 음악가 집안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온 집안에서 유일한 프로 음악가였다. 음악 DNA가 자라난 것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공연장을 데려간 어머니 덕분이었다. 오페라와 뮤지컬, 이름도 모르는 연주자의 귀국 독주회까지, 어린 조성현은 늘 어머니 손을 잡고 예술의전당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날’이 찾아왔다. 1998년 ‘어머니 따라’, “랜덤하게 갔던 공연”이 그의 아이돌인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의 첫 내한 무대였다.
“초등학교 2학년인 제가 그때 음악이 좋았다고 말하는 건 솔직히 거짓말일 수도 있어요. 정말 영화배우같이 멋진 사람이 금색 악기를 들고 걸어 나왔는데, 콘서트홀 1·2·3층이 플루트 한 대의 소리로 꽉 차는 거예요. 그 장면이 너무 놀라웠어요.” (조성현)
그날의 첫 곡이 풀랑의 ‘플루트 소나타’였다. 소년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저 악기를 해보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고백했다. 어머니의 추진력이 상당했다. 아들이 소망을 꺼내놓자, 그주에 바로 동네 학원에 등록했다. 그날 받아 온 포스터는 한동안 소년의 ‘부적’이었다. 형의 말을 듣던 동생이 “코팅까지 해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슬쩍 귀띔한다.
비브라토도 할 줄 몰랐던 소년 조성현은 신문에 난 공고를 보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오디션에 나갔다. “안단테의 짧은 곡에도 허우적대는데 선생님이 가능성만 보고 뽑아주셨어요.” (조성현) 동경하던 파위는 훗날 조성현의 스승이 됐다. 28년 뒤인 올여름, 조성현은 줄라이 페스티벌에서 스승을 통해 처음 들었던 풀랑 소나타를 연주하며 긴 서사를 완성했다.
동생에게 악기를 권한 건 형이었다. 8살에 플루트를 시작한 조성현에게 “중학생이 아직도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게 너무 이해가 안 됐다”며 웃었다.
동생의 악기는 형이 골랐다. 2010년, 조광현이 중학교 1학년이 됐을 때, 조성현의 취향이 100% 반영돼 결정했다. 그는 “어떤 악기가 잘 맞을까 고민했는데 제가 바순 소리를 좋아한다”며 웃었다. 바순과 플루트는 양극단의 음역이지만, 조성현은 “플루트에서도 편안하고 따뜻한 저음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플루트와 잘 어울리는 바순이 동생에게 ‘잘 맞는 음악 친구’가 되리라 확신했다고 한다.
형의 이야기를 듣던 조광현은 “악기에 대한 선택권이 제겐 없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도 싫지 않았다. “형이 하는 악기였다면 부모님도 압박하셨을 텐데, 아예 모르는 선생님을 찾아가 새로 배웠어요. 어릴 땐 크고 신기하고, 바주카포처럼 멋있어 보였어요.” (조광현)
5㎏이 넘는 묵직한 악기와 친해지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한 번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귀동냥’한 형의 음악을 교과서 삼아 “천천히,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독일 원룸에서의 동거…잔소리가 법이 된 시간
형이 세운 동생의 ‘인생 조련’은 맹렬하고 주도면밀했다. 중학교 3학년, 혼자 유학길에 올랐던 조성현은 2013년 카라얀 아카데미에 합격해 하노버에서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긴 조성현은 막 서울예고 1학년이 된 동생을 독일로 불렀다.
“부모님께만 말씀드리고, 광현이한테는 ‘악기 들고 놀러 오라’고 했어요. 도착한 날, 연습하고 있으라 하고선 ‘너 내일 오디션’이라고 통보했죠.”
형이 있는 독일에 ‘놀러 간’ 동생은 도착 다음 날 한스 아이슬러 음대 예비학교 오디션을 봤다. 독일어는 한마디 못 했지만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줬다. 합격 통지서까지 받아 들고, 결국 학사와 석사까지 베를린에서 마쳤다. 조성현은 “지금 돌아보면 너무 미안한데, 그땐 광현이한테 반항할 권리가 없었다”며 웃었다. 둥글둥글하고 무던한 성격의 동생은 불평불만 한번 드러내지도 않고 형의 잔소리를 금과옥조처럼 들었다. 형은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착한 사람이 광현이”라며 먹먹한 한숨을 내쉬었다.
조광현은 “워낙 나이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제가 초등학교에 오갈 때 형은 이미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어요. 자주 보지도 못하니 더 어름 같았어요. 그리고 사실 한 번 반항했다가 혼난 적도 있어요.”
형제는 베를린의 좁은 원룸에서 5년 가까이 살을 부대끼며 살았다. 우울한 독일 날씨 속에서도 햄버거와 케밥을 사 먹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음악가로의 꿈을 키웠다. “저희는 주어진 대로 살아요. 라면도 한 달 내내 먹을 수 있어요. 제일 좋아하는 게 만두인데, 두 달 동안 먹은 적도 있어요.”(조성현) 형이 쾰른에 자리를 잡으며 두 사람은 비로소 떨어져 살게 됐다. 베를린 집은 동생에게 물려줬다. 조광현은 독일 아헨 심포니를 거쳐 2023년부터 오스나브뤼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수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직장생활도 알아서 척척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여요” (조성현)
“이게 왜 안 돼?”…엄격한 스승에서 든든한 동료로
얼떨결에 시작된 동거는 혹독한 기숙학원을 방불케 했다. 연습 중 거슬리는 테크닉의 결함이 들려오면 형은 불쑥불쑥 동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착한 동생에게 형은 엄격한 호랑이 선생이었다.
형의 귀에 동생의 바순은 “문제만 보였다”고 한다. “연습하고 있으면 필요하지도 않은데 그냥 들어가요. 들리는 게 있으니까요. (웃음)”
한국 목관계의 ‘표준’이자 완성형 연주자로 정점을 향해가고 있던 조성현은 동생이 향하는 길 앞에 놓인 커다랗고 벅찬 벽이었다. 형은 그 시절을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조성현은 “용기를 북돋는 위로의 말보다 테크닉적인 문제점만 계속 얘기했다”며 “너무 미안하다”고 돌아본다.
“그땐 제 연주에 대한 객관화가 덜 돼 괜히 트집 잡는 것 같았고, 자존심도 상했어요. ‘아니 왜 플루트가 바순을?‘ 이런 마음도 있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 가르쳐줬어요. 예전에 형이 했던 이야기가 다 맞다는 걸 이제 알겠더라고요. 잘하긴 잘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웃음)” (조광현)
10대 꼬마였던 동생이 어엿한 프로 연주자로 자립해 독일의 오케스트라에 취업하며, 형제의 관계도 전환점을 맞았다.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종신 수석을 거쳐 연세대학교 목관 전공 교수로 옮겨온 형 조성현은 동생을 가르치려 했던 채찍을 내려놓았다. “사람마다 취향도, 추구하는 음악도 다르니 강요할 수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둘은 어느덧 나란히 걷는 ‘동료의 모습’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전에는 강압적이었다면, 이제는 ‘이게 좋은데…’ 하는 식으로 말투부터 달라졌어요.” (조광현) 무대를 마치면 형은 동생에게 자신의 연주가 어땠는지를 묻는다. 동생은 “마음이 열리자, 형도 존중으로 답해주고 순수하게 음악가 대 음악가로 이야기하게 됐다”고 했다.
상반된 뉘앙스, 100% 일치하는 음악적 귀
두 사람의 소리는 닮은 듯 다르다. 조성현이 연주할 때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좌표로 삼는 건 ‘힘을 빼는 것’이다. 가인위적이지 않게, 풀어내는 연주다. 그가 보는 동생의 강점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과 “단단한 밀도”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형은 한때 동생에게 “힘 빼”라며 잔소리를 했다. 동생은 “요즘엔 저도 빼려고 노력 중”이라며 웃었다.
동생의 눈에 비친 형은 낭만주의자다. 조광현은 “악기 규칙상 안 맞는 것 같은데, 형이 연주하면 좋게 들린다”며 “그걸 보면서 그저 ‘잘하면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틀에 갇히지 않고 연주하는 것을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형의 음악을 들어온 그에게 조성현의 무대는 불안도 염려도 없다. 그는 “형이 무대에 설 때 단 한 번도 걱정된 적이 없다. 형의 안정감, 흔들리지 않는 여유를 저도 갖고 싶다”고 했다.
닮은 건 얼굴과 목소리만이 아니다. 혈액형은 둘 다 A형, MBTI는 나란히 ISFJ다. 조용하고 성실하며 주변을 먼저 챙긴다는 유형이다. 좋아하는 연주자를 꼽으면 언제나 같은 이름을 말하고, 함께 연주하는 오보에가 플루트·바순과 잘 섞이는지를 가려듣는 귀도 닮았다.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을 할 때도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단 어우러지고 섞이는 것을 더 중요한 가치”로 둔다.
‘레슨 아닌 레슨’으로 동생의 음악 길잡이를 자처했던 조성현은 이제 새로운 목관 세대 육성을 위해 매진한다. 조성현은 제자들에게도 ‘자기의 선생’이 되는 법과 설득력 있는 연주를 스스로 깨치도록 지도한다. 조성현의 수업 방식은 문답법이다. 답을 기다리는 학생에게 떠먹여 주는 답을 내주지 않는다. “‘너의 음악이 맞다고 나를 설득해 보라’고 해요. 요즘은 그 어떤 때보다 생각을 하지 않는 시대잖아요.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레슨을 하려고 해요.” 동생을 가르칠 때처럼 “강압적으로 하지 않으려는”며 마음도 크다.
제자들을 향한 가르침의 방향은 그에게도 적용된다.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리사이틀(6일, 예술의전당)로 관객과 만나는 조성현은 “바흐는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질문이 생기는 음악”이라며 “어떤 답을 찾아도 그 답이 영원히 정답으로 남지 않는다”고 했다. 조광현 역시 더 많은 것을 흡수하기 위해 독일 무대와 최고 연주자 과정 학업을 병행하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 “갈 길이 먼 음악가로서 더 많은 것을 스펀지처럼 유연하게 흡수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동생의 이야기에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성현은 “음악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삶의 건강한 밸런스를 맞추며 오래도록 연주하고 싶다”면서도 “연습하는 게 제일 좋아 밖에 나와 있으면 연습하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노력(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많은 것을 이루고도 쉼 없이 악기와 씨름한다. 두 형제의 음악적 갈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늘 호기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두 사람의 다음 꿈은 한 무대다. ‘서로의 색’을 받쳐주는 플루트와 바순의 묵직하고 따뜻한 동행을 꿈꾼다. 어느덧 둘의 음악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지난여름의 앙상블이 형에겐 확신을 줬다. 조성현은 망설임없이 “이제 잘 맞는다”라고 했다. 일곱 살 아래 동생의 답은 반 박자 늦게 돌아왔다.
“맞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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