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미 무역합의 안정적 이행 방침
웨스팅하우스, 75억弗 기자재 구매 예상
이형일 “증시 지나친 반응않게 선제조치”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한미 전략적 투자 프로젝트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원전 건설 사업의 인허가와 추진 여건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는 연말까지 최대 100억달러 규모의 원전 투자 선급금을 이전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사업의 구체적인 조건과 수익성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액의 자금을 먼저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6일 정부에 따르면 관계 부처는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와 관련 특별법에 따라 미국 원전 사업에 필요한 선급금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9월 22일 양국이 발표한 전략투자 프로젝트 추진 계획에는 상업적 합리성 검토와 국회 보고 등 국내법상 요건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올해 말까지 최대 100억달러를 먼저 지급해 장주기 기자재를 확보하는 내용이 담겼다.
선급금은 원전 건설에 필요한 주요 기자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한 자금이다. 원자로 용기(54개월), 증기발생기(57개월), 원자로 냉각재 펌프와 모터(65개월) 등 주요 설비는 발주부터 제작·납품까지 수년이 요구된다. 원전 건설 일정에 맞춰 장주기 품목을 선제적으로 발주해야 하는 만큼 선급금 지급이 사업 추진의 초기 단계로 꼽힌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관련 기자재의 기술과 제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 검토와 국회 보고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선급금을 이전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미국의 관세보복이 커질 수 밖에 없는 현실속에서 한미 합의의 안정적 이행을 위해 당초 계획대로 선급금 이전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측이 이미 선급금 지급 시한을 올해 말로 제시한 데다, 양국 간 전략적 투자 합의의 이행 여부가 통상 현안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선급금의 사용처 윤곽이 일부 드러났다. 웨스팅하우스 지분 49%를 보유한 캐나다 원전업체 카메코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3·4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100억달러의 선급금이 이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약 75억달러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전에 필요한 장주기 기자재 구매에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나머지 약 25억달러의 구체적인 사용처는 보고서에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카메코가 이번에 제시한 75억달러는 AP1000 원전용 기자재 구매 예상액으로, 실제 공급업체나 국가별 발주 규모까지 공개한 것은 아니다.
미국 측은 원전 사업의 규모와 선급금 지급 계획을 이미 공개한 바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지난 9월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대형 원전 사업을 세 가지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사업으로 소개했다. 그는 “1000억달러와 200억달러의 예비비를 합쳐 총 1200억달러 규모로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형 원전이 들어설 지역으로 오하이오·테네시·사우스캐롤라이나·켄터키를 꼽았다. 이 중 오하이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미 상무부는 당시 한국이 올해 말까지 100억달러 규모의 선급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며, 한국 기업들이 웨스팅하우스의 ‘상당한’ 소수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원전 사업의 구체적인 투자 조건과 지분 인수 방안은 향후 협상을 통해 확정해야 하는 단계다.
그러나 미국 중간선거 결과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원전 건설 인허가와 규제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경우 원전프레임워크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있다. 사업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거액의 투자금부터 보내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하면서 원전 투자 여건에 변화가 예상된다”며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에 따른 100억 달러 규모의 선지급을 보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의 대미 투자 사업에서도 미국 내 인허가와 법적 분쟁이 사업 추진의 변수로 작용한 사례가 있다. 일본의 대미 투자 1차 프로젝트 중 하나인 텍사스주 원유 수출항 건설 사업은 미국 법원이 사업 승인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미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8월 12일 미 해사청의 사업 승인 과정에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업은 일본이 약 5500억달러(약 764조원) 규모로 추진하는 대미 투자 패키지의 일부로, 사업비는 약 21억달러(약 2조9000억원)로 추산된다. 미 해사청은 지난해 2월 사업을 승인했지만, 현지 환경보호단체가 항만 건설이 허용되지 않는 구역에 사업이 중복 추진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판단으로 승인 절차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대미 투자 프로젝트도 미국 내 규제와 사법적 판단에 따라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편 미국 중간선거 이후 금융시장 불안도 커지고 있다. 국내 증시가 급락하자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6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우리 증시가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도록 관계기관이 필요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강구하고 적기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3일(현지시간)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가 글로벌 경제의 중요한 분기점이라면서 “AI 산업 규제 강화에 대한 우려로 어제 미 증시가 큰 폭 하락했고, 글로벌 증시에 대한 파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그는 관세·수출 통제 등 미국 행정부의 통상 조치와 의회의 입법·예산 심의가 필요한 산업 지원 정책의 변화를 살피고,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을 선제적으로 점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관계 부처의 긴밀한 협력으로 기존 한미 무역 합의를 안정적으로 이행할 것이며 미국 행정부·의회·주정부와 소통도 강화해 안정적인 수출·투자를 뒷받침하고 조선·에너지 등 전략산업 기회를 넓혀가겠다고 덧붙였다.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이어 이날 오전 이 부총리는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긴급 시장상황 점검회의(F4)를 열고 시장 변동성에 대한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배문숙 기자
oskymoo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