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 시행할 예정이던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2029년으로 2년 더 미루기로 했다. 2020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과세 근거를 마련한 이후 벌써 네 번째 유예다. 당초 2022년 시행하기로 했던 과세가 무려 7년이나 늦춰지게 됐다. 제도를 정비할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시행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또다시 물러선 것이다. 조세 원칙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5일 브리핑에서 해외 가상자산 거래정보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유예 이유로 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에 따라 한국과 일본, 영국, 독일 등은 2027년부터 거래정보를 교환하지만 미국은 2029년에야 참여한다는 것이다. 미국 거래소를 이용하는 투자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과세를 시행하면 국내 거래소 이용자에게 세 부담이 집중돼 국내 시장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정보교환 시점은 이미 예고돼 있던 사안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를 이제 와서 과세 유예의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궁색하다.
과세 준비가 미흡하다는 정부의 해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에 연간 250만원을 공제하고 22%의 세율을 적용하는 기본 과세 체계는 이미 마련돼 있다. 물론 투자 손실을 이후 3년간 이월해 공제하는 제도 등 보완할 부분은 있다. 현행 과세안은 같은 해 발생한 이익과 손실만 합산할 수 있어 첫 해 1000만원을 잃고 이듬해 1000만원을 벌더라도 전체 손익이 0원인 투자자가 165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런 불합리한 점은 이미 지적돼 왔다. 법 개정 등을 통해 보완하면 될 일이지 시행 자체를 미룰 이유는 없다.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청년층의 반발 가능성이 과세 유예의 근거로 제시됐다고 한다. 청년층의 자산 형성 부담을 고려한다는 취지지만, 청년층의 표심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일이 번번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시행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도 한 차례 유예된 뒤 2024년 12월 폐지됐다. 최근 부동산 세제 개편에서는 실거주 원칙과 불로소득 과세를 강조하며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축소하려다 시장의 반발에 부딪혀 한 달 만에 기존 방침으로 되돌렸다.
조세정책은 국민의 경제활동과 자산 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중요하다. 충분한 숙의를 거쳐 정책을 마련하고 전문가 의견을 들어 보완해야지, 여론의 향배를 보고 뒤집기를 반복하는 게 실용주의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사회적 혼란만 가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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